돌밥, 코로나, 그리고 스물네 평의 5인

by 쓰니애

삼시 세끼인지 삼시 새끼인지.

맞춤법을 모르진 않으나 은근슬쩍 모른 체 이 말을 써버리고 싶었던 2020년. COVID를 다시금 가져와 언급하기엔 너무 식상한 3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ESTJ 주부의 살림살이를 한 번쯤 독자에게 주절대고 싶어졌다. 글을 읽고 감상의 평은 독자의 몫인 줄 알면서도 '나 이렇게 힘든 그 시절을 유난 떨며 바지런히 살았소'라고 한 마디 듣고 싶은, 숨길 수 없는 속내를 미리 흘리고 시작해 본다.


2020년은 결혼 10년 차를 맞이하는 우리 부부에게 역사적인 한 해였다. 그때까지 부부싸움을 한 번도 하지 않았었다면 사람들은 믿어 줄까? 결혼을 하고 아이가 없는 신혼일 때, 언성을 높여 싸우는 행동은 지혜롭지 못한 처사라 여겼다. 어지간히 화가 나도 참고 삭였다가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문제와 사람을 분리시키는 화법을 부드러운 어조로 건넸다.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기의 말간 얼굴을 보며 절대 자녀 앞에서 싸우는 부모가 되지 않겠노라 다짐했었고 아이가 셋이 태어나 자라는 동안에도 그 약속은 매우 잘 지켜져 왔었다.

9년 차 까지는.


결혼 10년 차, 팬데믹의 공포와 함께 터진 우리 가족의 위기는 다음의 문장으로 설명이 되겠다.

- 5인 가족

- 삼시 세끼

- 24평 아파트에서 뛰어다니는 삼 남매

- 1년간 전면 비대면 강의로 대체된 대학원생 남편

젠장, 3년이 지난 이미 과거의 일인데도 잇새로 소심히 욕지기가 나온다. 집합금지 명령 시대의 극 외향성 5인가족이 꼬박 일 년을 한 공간에서 뒤엉켜 지냈다.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분명 감사했던 24평의 아담한 아파트가 하루아침에 자연관찰용 개미집으로 전락해 버렸다. 일개미로 분한 나는 왕개미와 아기개미들을 위해 이 방 저 방 왔다 갔다, 발이 여섯 개가 되도록 노동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밥시간이 울리면 식량 창고방으로 후다닥 건너가 주방개미로 재빨리 변신 완성.


"오늘 점심은 또 뭘 차려내지?"

끼니때마다 다른 메뉴가 올라오길 기대하는 까탈러들을 만족시켜야만 하느니. 역사적인 사명감을 지고 냉장고 양문을 활짝 열어젖혀 레이더로 상하좌우를 스캔해 본다. 돌아오는 적군의 화살을 피하기 어렵겠다는 예상이 들면 적중률은 95% 이상. 특히 풀떼기와 식물성 단백질의 조합인 날이면 참패를 각오하는 비장한 마음으로 식탁을 차림 했다.


"아잉~또 채소야?"

"라면 없어?"


라면 없어?

'네가 딴에는 이것저것 차리느라 고생했겠지만 대충 훑어보니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은 없구나, 이것들을 억지로라도 삼키려면 극약처방이 필요하니 어서 물을 올리거라'는 긴 문장도 단 네 글자로 함축 가능한 아름다운 우리말. 힘들어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려 애쓰던 평정심을 와장창 깨뜨리는 멘트의 주범은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당시 남편은 회사파견 수학이라는 명분으로 MBA 과정 2년 차의 대학원생이었다. 차라리 똑같이 집에 있더라도 재택근무 중인 회사원이라면 고마웠을 텐데. 어른의 반찬이 반드시 필요한 나이 많은 대학원생이라니. 조금 늙은 이 학생은 1년 중 5개월은 방학이었고 수강신청의 꾀부림을 아는 자라 일주일 중 3일만 수업을 몰아넣었다. 수강이 있는 요일엔 학교 점심시간에 딱 맞춰 낮것상을 진상해 올려드려야 후환이 없었고, 수강이 없는 날은 분야 외 다른 공부를 해보겠다며 회계사 시험을 준비로 본인의 동굴에 칩거하였다. 마지막으로 입맛은 어떠했냐 하면 대한민국 흔하디 흔한 '파스타집만 갔다 하면 제육 당기는' 고기파의 사나이 되시겠다.


라면 없어? 라면 없어? 식사를 마치고 그릇을 치우는데도 자꾸 귀에서 맴도는 것이다. 조물주는 말로 세상을 지으셨다지. 늙은 학생은 말로 화염을 응축시키는 달란트가 있다. 관찰상자 개미집에서 삼시 세끼에 쏟는 시간은 전후 합쳐 평균 6시간. 그 외에도 5인 빨래, 애들 학업, 막둥이 기저귀, 치우면 제 자리로 돌아오는 마법의 장난감들 때문에 일개미 허리가(물리적인 의미는 아니다) 두 동강 날 지경인데 차려놓은 밥상을 눈앞에 두고 라면을 찾는 용감한 남자여. 자신은 학생이라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하니 없는 셈 쳐달라는 요구를 국물 한 방울 없이 바닥난 라면 냄비와 함께 뒤집어엎어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응축되다가 팽창할 때로 팽창되어 버린 화염이 터지기 일보직전. 쓰레기 버리기 같은 사소한 문제였을 테지, 결국엔 9년간 잘 참아오던 화가 어느 날 빵 터지고 말았다. 삼 남매는 처음 보는 부모님의 화염방사 격전에 놀라 오그라 붙었고 남편은 언성 높인 적 없던 온유한 아내의 돌변에 놀라워하기보다는 어이없어했다. 더 이상은 못 참아, 온유와 절제와 현숙함과 그 따위 코로나에 걸려버려라. 8시가 되면 카페들도 문을 닫던 시절, 저녁 상만 치우고 나면 미친년처럼 밖으로 도망쳐 밤길을 정처 없이 헤매며 걸었다. 한참을 배회하다 들어와도 상쾌한 기분이 돌아오지 않았다. 내일이면 또 나는 일개미, 주방개미가 되어야 하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집합금지 명령, 어차피 1년은 기다려야 하는 남편의 졸업, 예정된 큰 집으로의 이사 날짜도 1년 남짓. 그때까지 계속 이 굴레가 씌워진 채로 견뎌야 하는 것인가? ESTJ에게 수정할 전략이란 건 있어도 감정의 늪은 존재하지 않지. 내 짐을 덜어줄 수 있는 돌파구가 있지 않을까? 계획대로,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라도 있으면 숨을 돌릴 수 있겠어. 남편은 또 싸우기 싫으니까 패스, 애들은 반쯤 귀가 먹었으니 패스, 결국엔 나의 일에서 찾아야 했다. 그 간 하루하루 지내온 시간들을 되짚으며 에너지를 허비한 포인트는 어디었을까 살펴보았다. 그래 이거였구나, 냉장고 문을 열고 레이더를 돌리며 매 끼니마다 빠지지 않았던 메뉴 선정의 고뇌! 계획형 인간의 효율적 삶을 실천할 순간이 왔다.


2020년 4월, 그렇게 나는 펜을 들고 주부대학 살림과 10학년의 리포트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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