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로 굴릴 수 있는 최대한의 외래어가 속출하고 현란한 몸동작들이 매트 무대 위로 펼쳐진다. 맹렬하게 검술을 휘두르며 상대를 찌르는 듯 보이지만 보송한 볼에 젖살이 빠지기 시작한 귀여운 남자 아이들의 칼싸움. 그들이 찌르고 있는 건 허세다.
각종 만화에서 짜깁기 한 대사를 듣는 누나는 손발이 오그라붙으며 '쟤들 왜 저래?'의 냉소를 뿜는 중이고 엄마는 저러다 또 누구 한 사람 다쳐서 울며 끝이 날까 봐 불안한 마음으로 훈수를 외쳐대고 있다.
"아니, 아니야, 몸 가까이 대지 않아요!"
"야! 엄마가 얼굴로는 갖다 대지 말라고 했잖아!"
거실매트 위의 전투가 치열해지는 가운데, 그들의 맹렬함을 좌불안석으로 지켜보는 청중과는 달리 콜로세움의 귀빈석에 오신 건지 흐뭇하게 관람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 광선검을 매우 저렴하게 구입했다는 둥 배송비도 안 들었다는 둥, 가성비가 훌륭하다는 건지 그걸 구매한 본인이 훌륭하다는 건지. 남편은 그리 신이 나서 아들들에게 칼을 하나씩 쥐여주고 끝내 이 니전투구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딸애가 큰 아이지만 분홍색 장난감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중장비와 공과 레일이 국민 장난감 상자에 그득했다. 아들이라고 험하게 키우지 않았다. 때로는 누나의 마루타가 되어 손톱에 매니큐어를 깔별로 칠하고 알알이 달록한 구슬 목걸이를 휘감아야 할 때도 있었다. 더군다나 누나 있는 남자애들은 어릴 적엔 핑크 내복이 국룰 아닌가?
그럼에도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갔다. 분명 시작은 뽀로로였으나 딸아이는 시크릿 쥬쥬와 치링치링 마법을 부렸고 아들들은 헬로 카봇의 대원이 되었다. 헬로 카봇에서 터닝메카드로, 터닝메카드에서 베이블레이드로, 베이블레이드에서 포켓몬스터로 흐르는 테스토스테론의 역사 속에서 태권도가 등장하게 되고 남편은 또 이 때다 싶어 발차기와 펀치 수련용 미트를 주문한다.
여동생과 단 둘이 자매로 자란 나는 이 위험천만하고 공격적인 장난과 놀이들이 탐탁지 않다. 집안에 고무공이 날아다닐 뿐인데 식탁으로 날아오고 꽃병을 엎고 형광등을 깨부술까 봐 좌불안석이 된다. 체육시간에 피구라도 하는 날이면 역적을 처단하는 장수처럼 덤벼들어 공을 날리던 남자애들이 떠올라 당장 이 잔인한 놀이를 그만두라고 외치고 싶다. 살살 던지라고 잔소리를 하면 애 아빠라는 사람은 일부러 엄마 맞히기 놀이로 교묘히 룰을 바꾼다. 아들들은 신이 난다. 숙제하라고 잔소리를 하던 엄마의 엉덩이를 맞힐 때마다 카타르시스가 춤을 추며 올라온다.
펀치용 미트로 연습하던 날은 기어이 불상사가 발생하고 말았다. 아빠의 펀치를 받아내던 아들이 생각보다 센 힘에 완전히 밀려 날아갔다. 남편의 주먹에서 시작된 물리적 힘이 아들 근처에 있던 내 얼굴에 그대로 전달되어 꽂혔다. 와, 이 ㅆ@%&$#@를 할....육두문자! 아프다. 눈물이 쑤욱 뽑힐 만큼. 위로랍시고 괜찮냐고 묻고 내 볼을 문지르는 남편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장난꾸러기 미소를 감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 미소에서 남편의 어린 시절이 절로 눈앞에 그려진다. 당신 장난꾸러기였지? 말썽 많이 피웠지? 무슨 소리야, 내가 얼마나 모범생이었는데. 계속 추궁을 해도 오리발을 내미는 남편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솔직히 말해 봐, 남의 집 대문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는 짓, 했어 안 했어?"
"에이, 그건 약하지, 나는 문방구에서 파는 미니 폭죽 있잖아, 그걸 사다가 딩동 누른 다음에 사람이 나올 때쯤 되면 그때! 딱! 불 붙여서 도망갔지!"
듣고 있던 삼 남매, 아니 두 형제의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깔깔 넘어간다. 다시 들려 달라고 자세히 말하라고 조른다. 80년대 어린이라 가능했을 무용담인데 40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따라 했다간 그대로 철컹철컹 아니냐고.
우리 집 화성인들을 전투장으로 이끄는 테스토스테론을 삶으로 받아들이기 전까지, 금성인은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매로 자라 여중과 여고를 나오고, 여초인 인문대에 발을 살짝 담갔다가 역시 여초초인 간호대를 졸업했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오빠들과 남사친, 썸친과도 봄날 환상곡의 연주만 즐겼으니 전투와 사냥의 세계를 어찌 알았겠는가. 운전 중 똥매너의 운전자에게 바짝 붙어 창문을 내리고 노려본다든지, 다소 무례한 언사로 대응하는 업무담당자에게 따진다든지, 음식에서 돌멩이가 나왔으나 사과를 제대로 안 하는 식당직원에게 언성을 높인다든지 할 때는 혹여나 큰 싸움으로 번질까 가슴이 두근두근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제발 좀 그냥 좋게 좋게 넘어갈 수는 없어? 라며 말리고 화내고 싶지만 필히 저런 순간엔 2차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서 이를 악 물고 살살 달래게 된다.
결혼하고 5년까지는 남성다움의 한 부분이란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런 모습이 보기 싫어서 미움의 이유로 삼게 되니 그 시기 즈음, 권태도 왔던 걸로 기억한다. 미울 구실이었던 호전성이 어느 날 갑자기 계속 살아갈 이유로 둔갑한 것은 우습게도 해외 출장, 그의 부재였다. 처음으로 남편 없는 집에 아이들과 남는다는 것이 어딘가 불안했다. 안전한 동네에 아파트 꼭대기 층인데 무엇이 무서웠던 건지, 괜스레 떠나야 하는 그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리워졌다. 연애 시절, 이브닝 근무를 끝내고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퇴근해야 할 때는 꼬박꼬박 병원으로 찾아와 어두운 원룸촌을 함께 걸어주던 그가. 서울에 있는 나를 바래다주고 경기도로 다시 귀가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던 듬직한 오빠가. 무슨 일이든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나의 안전을 지켜주던 그가 믿음직하여 결심한 결혼이 아니었던가. 장모가 된 친정엄마는 첫째 사위를 그리 듬직히 여기며 곧잘 하시는 말씀이 있다. O서방은 그래도 자기 가족은 어떻게든 지킬 사람이야.
어쩌면 평균 남성들보다 초과치의 테스토스테론을 보유한 남편이지만 그 덕에 우리 가족은 울타리 안에서 기대며 살아가는 중일 것이다. 그리고 아빠의 유전자를 살뜰히 물려받은 아들들도 언젠가는 어느 아리따운 처자의 손을 꼭 잡고 별들만 엿보는 캄캄한 골목을 걷고 있겠지.
그리하여, 아들은 아빠가 놀아주고 가르침이 옳다 여기며 오늘도 허세 가득한 광선검 전투를 허하는 것이다. 먼 훗날, 허세는 기세가 될 것이라고. 꼬마 전투사들의 미래를 바라보는 황제 옆에 서서 다정한 미소에 텔레파시를 담아 그에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