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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니애 May 10. 2024

새벽에 우는 소가 있다고?

 꾸준함의 힘을 믿소, 언젠가는 반드시 건물주의 꿈을 해내리오.

 뉴요커 뺨치는 프로페셔널의 기운을 뿜으며 구글 미트를 여는 대장 소가 축사의 하루를 깨운다. 사실 그전부터 일어나 옆의 친구와 룰룰루 장난치고 있던 소들은 저마다의 오늘을 의미 있게 보낼 준비를 한다. 선하지만 욕망 가득한 그들의 눈은 늘 봄볕에서 뒹굴기 좋아하는 송아지의 것처럼 은은한 빛이 영글어 있다.

 브런치 동기 중에서도 새벽에 부지런히 깨는 그녀들이 있다. 노인네들처럼 새벽잠이 없는 이들은 어찌 그리 재깍재깍 눈을 뜨고 일어나는지. 묵묵히 밭을 가는 소처럼 그러한 자세로 글을 쓰라는 지령을 받들며 어둠을 물리치고 일어난다. 지난밤, 늦은 시간까지 분명 깨어 같이 떠들었었는데. 어쩌면 소가 아니라 닭인가 싶은 이들이 음메, 혹은 꼬끼오를 마치고 따뜻한 차 한 잔 우려 기지개를 켠 다음 글을 쓰는 자리로 몸을 내민다. 

 가족의 하루를 여는 어머니의 새벽은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움이지만 거기에 바지런을 짧게라도 보태는 나의 브런치 작가 동기들. 새벽의 정기라도 받으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서로를 깨우고 쓰는 소들의 움직임. 엄마로만 시작하여 끝낼 수 있는 하루의 여정 속에 글을 쓰고 있다는 행위는 나다운 고유함을 찾아가는 기지개이다.



 끝도 없이 내게로 닥치는 빨래의 밀물, 아기의 낮잠 시간에 눈치 보며 뜨는 밥 한 술, 다둥이들의 쉬지 않는 입, 전국을 종횡하여 왕복하는 워킹맘의 삶. 이런 우리에게 글을 쓴다는 고급스러운 취미생활이 가당키나 할까. 제발 글 좀 써주세요 하는 이도 없는데, 누구는 짬이 나면 브런치를 먹으러 갈 시간에 브런치 글을 쓰고 있는 우리 작가님들. 본인의 삶도 살아내기 힘겨우면서 무조건적인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 작가님들 덕분에 40개의 글이라도 있었다. 동기들이 아니었으면 여기까지도 당도하지 못했을 굼벵이여서 번쯤, 진지하게, 그동안의 시건방을 빼고 사랑고백을 꺼내기로 작정했다.

 

 아끼고 애정하는 새벽소 작가님들, 현생에 치여 절필하고 싶을 때가 많을 겁니다. 저도 그래요.

 글뿐이겠나. 사실 저마다가 현생도 털썩 내려놓고 싶은 분투의 삶이다. 나를 제치고 승진하는 어린 후배, 반려되는 기획안, 선의가 전달되지 않는 클라이언트, 제발 말이라도 통했으면 싶은 영아기, 5월의 행사가 앗아간 통장잔고, 아침도 거르고 나간 사춘기 녀석의 무례함. 어른이 되고 언젠가부터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복기할 겨를이 없다. 매일 밤마다 잠자리에 가는 여정이 제발, 제발, 조금만 더 힘을! 외치며 발을 질질 끌어당겨와 겨우 도착하는 모습이다.  허덕허덕 숨에서도 곧 사리가 나올 지경이지만 남들도 다 이렇게 살아, 위로하며. 가까스로 누운 이부자리에서 아직 손 놓지 못한 핸드폰으로 내일 울릴 알람을 체크한다. 오고 갔던 톡 대화상대의 목록을 주르륵 훑는다. 이 정도면 오늘 그리 나쁘진 않았지? 뻔하게 반복되는 일상일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지만 내일은 왠지 색다른 만남이 날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일말의 기대를 걸며 집집마다 불은 꺼진다. 활력소가 필요한 현대인, 핫식스며 카페인이며 당분에 의지해야만 일상들이 편만한다.


 그런 이들 중에 하나였던 나에게 그들이 스며들었다. 숏츠를 휙휙 넘기며 짧은 글이 아니면 활자를 읽지 않는 시대에 무려 글을 쓰겠다는 이들이. 요즘 누가 긴 글을 10초 이상 진득하게 집중해서 읽고 있어, 글은 AI가 더 잘 쓰는 거 아니냐고 남편마저 낮잡아보는 매니악한 이 취미에 기꺼이 동행하는 작가 동기들은 무척 강력하고 개운한 자양강장제가 틀림없다.

 

 우리의 동행이 왜 힘이 되는고 하면, 쓰기 시작하고 보니 글 잘 쓸러들은 하필 왜 이렇게 많은지, 고만고만한 내 수준의 글은 그만 빠져도 브런치는 아쉬울 게 없을 것 같아서다. 에디터의 당근에 쉽게 노예가 되어버린 탓이다. 쓰는 것이 이모저모 장점이 많은 건 알지만 숙제검사하는 이가 없이 스스로 채찍질하는 지난한 과정에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는 와중인데, 실의의 강에 빠져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을 땐 맑은 수경이 되어 내가 있는 곳을 바로 보게 해주기도 하고, 어려운 가정사로 주저앉아버리고 싶을 땐 다정한 말로 여유를 갖도록 어루만져 주는 이들이 있으니 언제라도 봄같이 따사로운 연대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영롱하니 그들이 낳은 글도 보배롭다. 

살아오며 가슴에만 묻어두었던 사연이 쏟아져 나올 때도 있고 바로 지난 주말, 시댁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이 나올 때도 있다. 꽃 한 송이 꽂아두고 어여삐 여기는 마음도, 아이의 성장에 가슴 시리게 아픈 눈물도 그저 일상이었던 시간과 공간으로 흘려보내지 않는다. 고스란히 글로 옮긴 사건 하나하나가 방울방울 반짝인다. 나쁜 글은 없다. 앞으로 나아가는 글만 있을 뿐이다.


 진화하는 우리. 브런치 합격만으로 모든 행운을 끌어안은 듯했던 그 초희! 첫사랑! 단 한 사람의 탈락 없이 끝까지 줄줄 엮이고 엉키고 설켜서 부지런히 글밭을 갈아 쓰자. 밭은 때로 엎어야 새로 쓸 수 있으니 퇴고를 두려워 말고 그냥 쓰시오, 새벽소들이여. 나 홀로 고독의 글을 쓰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그대들이 있어서 고단했던 피로도 굳은 어깨도 굽은 등도 하루의 끝엔 연화된다. 절필의 수렁과 현생의 덫에 걸릴 때마다 이끌어주는 천사 같은 동료들. 그대들의 쳐진 발걸음도 투스텝으로 바꿀 선율을 담은 지애의 찬미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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