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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서리 Jan 05. 2023

무던한 사람#1

자신 앞에 놓인 불행에 무던한 사람이 있었다. 불행의 비웃음을 들으면서도 그 사람은 그저 자신이 힘겹게 호흡하고 있음을 깨달을 뿐이었다.


그 사람은 호흡기에 문제를 가지고 태어났다. 1997년 11월 기이할 정도로 이르게 내린 눈에 진통에 괴로워하는 그 사람의 어머니를 태운 구급차는 도로에서 길게 미끄러졌다. 급히 다시 이송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은 이미 세상의 빛을 봐 버렸고, 선천적으로 폐에 이상이 있던 그 사람은 즉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호흡을 유도하기 위한 응급처치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이 사람은 약하게 울기 시작했고 그것은 큰 불행의 시작이었으나 그 사람은 그것을 몰랐다. 그래서 애석해하지도,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기억이 처음 시작되는 지점부터 가지고 있던 고통은 그것이 고통인지도 모르게 삶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금방 숨이 차고는 했다. 한쪽 폐가 제대로 펴지지 않아 다른 사람들 보다 기능이 떨어졌다. 그래서 걷다가도, 말을 하다가도 숨이 차서 종종 쉬어 주어야 했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 세상은 그리 관대하거나 여유롭지 못했다. 이 사람을 기다려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부모는 숨이 차 헐떡이는 이 사람을 꽤나 성가셔했고 충분히 기다려 주지 않았다. 별다른 치료도 없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미처 호흡이 진정되기도 전에 다시 무거운 걸음을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서러움이라는 것을 몰랐다. 이 사람에게 부모는, 세상과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 가엾게 여겨진 적 없는 아이는 스스로를 안타까워하는 법도 몰랐다. 


호흡기의 문제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지도, 즐거워하지도 못했던 그 사람은 어떻게 그들과 어울릴 수 있는지 몰랐다. 어울려야 하는지, 어울리고 싶은지도 잘 몰랐다. 그 때문에 혼자였다. 아이들은 일부러 그 사람을 멀리하지는 않았으나, 지루해했다. 가끔 누군가 다가와 놀이를 함께 하자고 했으나 이 사람은 어떻게 노는지를 몰랐다. 설명을 들어도 잘 따라 움직이지 못했고 반응도 영 느렸다. 그러면 아이들은 이내 인내심이 바닥나 그 사람에게 짜증을 내고는 했다. 이는 그 사람에게도 어색한 상황이어서 그 사람은 스스로 더 혼자가 되었다. 외로움은 더 어릴 적부터 함께여서 오히려 낯설지 않았다. 


그 사람의 어머니는 늘 바빴다. 아버지는 따로 살았다. 그래서 할머니와 함께 지냈다. 할머니께서는 아이에게 별 관심이 없으셨고 무뚝뚝하셨다. 식사 시간과 유치원 등∙하교 시간 외에 할머니와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대화는 더 없었다. 집에는 사람 간의 말소리보다는 혼자서 신나게 떠드는 라디오 소리가 더 많이 들렸고, 이 사람은 반도 알아듣지 못할 라디오 DJ의 빠른 말소리를 들으며 잠들곤 했다. 하지만 이 생활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곧 할머니께서는 병으로 앓기 시작하셨고, 병원에 입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의 손을 잡으셨다. 이 사람은 바쁘게 움직이는 어른들 사이에서 어리둥절했다. 더 이상 할머니를 뵐 수 없다는 한 마디 외에 이 사람에게 다른 설명을 해 주는 이가 없었기에 이 사람은 아직 낯선 죽음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할 겨를이 없었다. 그다지 교류가 없었던 할머니와의 이별을 슬프게 받아들일 만큼 이 사람은 섬세하지 못했고 장례식은 그렇게 지나갔다. 


할머니께서 떠나신 이후 그 사람은 자주 혼자 있었고, 가끔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을 포함한 여러 가지가 결여되고는 했으나 어쨌든 살아남았다. 예컨대, 가끔 식사를 챙기지 못하거나, 세탁된 옷이 없거나, 가정통신문에 보호자의 서명을 받지 못해 선생님께 주의를 듣고는 했다. 저녁을 걸러 배가 너무 고플 때는 학교에 일찍 등교해 점심시간을 기다렸고, 깨끗한 옷이 없어 얼룩이 남은 옷을 입고 가야 할 때는 얼룩에 대해 묻는 짓궂은 아이들의 놀림을 들어야 했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가끔 이 사람의 자리를 빙 둘러싸고 섰다. 그리고는 이 사람의 옷차림에 대해 물었다. 옷에 얼룩은 왜 있는지, 옷 뒷부분에 난 구멍은 무엇인지와 같은 질문을 하고는 저들끼리 키득거렸다. 이 사람은 무어라 답해야 할지를 몰라 곧잘 침묵하고는 했다. 종종 대답을 강요하는 아이들이 있었으나 그들도 끝내 이 사람의 입에서 뭔가 답을 듣지는 못했다. 몇 번 그런 일이 있고 그들은 별 반응이 없는 이 사람에게 흥미가 떨어졌는지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집에 들어오셨음에도 가정통신문을 보여드리지 못했을 때는 학교에 지각을 했다. 어머니께서는 집에 들어와 씻고는 이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머니를 마주할 시간이 없었다. 보호자의 서명을 받았는지에 대해 묻는 선생님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서 최대한 뒤로 미루고 싶어 학교에 늦게 갔다. 이 사람이 학교에 종종 늦었음에도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보호자에게 연락조차 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연락을 받은 보호자들이 이 사람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그 누구도 그다지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어쨌거나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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