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의식의 방엔
가족들로부터 도주하고픈 내가 있다.
내겐 두 명의 언니가 있다. 어릴 때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큰 언니는 갓난아기 때, 밤낮으로 너무너무 많이 울어댔단다. 그래서 가난한 셋방살이 신혼부부였던 엄마 아빠는 주인들의 눈칫밥을 많이 먹었고 덕분에 이사도 많이 다녔다고 한다.
어느 날은 그날도 밤새 울어대는 아기를 들쳐업고 엄마는 마을의 빈 공터로 갔었는데 징글 징글하게 울어대는 언니를 내려놓고 포대기로 돌돌 말아서 팽개쳐 버렸단다. 한동안 울던 아기가 울음을 뚝 그치고 울지 않자 덜컥 겁이난 엄마는 아기가 죽었나 싶어 놀라서 안아 올리니 또 으앙 하고 기운차게 울었고 엄마도 알 수 없는 울분에 그만 같이 울어 버렸다한다.
내가 열 살 때쯤 당시 처음으로 동네에 분식점이란 게 생겼다. 꽈배기, 찐빵, 같은 걸 팔았는데 언니는 그 맛이 궁금했었나 보다. 그래서 꽈배기를 한 봉지 사 왔다. 하얀 봉다리에 그걸 사 오는 언니를 보자마자 엄마는 이게 뭐냐 용돈 줬더니 쓸데없는 이런 걸 왜 샀냐며 그걸 바닥에 내동댕이 쳐 버리고 언니의 뺨을 세게 때렸다. 그때에 시간은 사건마다 느리게도 빠르게도 흐른다는 걸 처음 알았다. 꽈배기가 땅에 뒹구는 그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나는 지금도 그날 언니의 눈빛과 엄마의 매서운 손 끝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되도록 그들이 있는 그곳의 공기를 흡입하지 않아도 되는 먼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있는 곳으로.
언니는 커 가면서 몹시 폐쇄적인 성격이 되었다. 말이 별로 없었는데 공부는 매우 잘했고 혼자 이것저것 파고들기를 즐겼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언니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그래서 2년을 다니고 3학년이 되기 전에 휴학을 했다. 집의 뒤편에 작은 쪽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오래된 담요를 뒤집어쓰고 거의 먹지도 않은 채 누워만 있었다. 나는 언니가 무서웠다. 혼자 누워서 혼잣말을 하고 가끔 웃기도 했다. 그 무렵 환상특급이라는 티브이 시리즈가 있었는데 그중 한 에피소드에서 나이 많은 할머니가 누워만 있다가 안부를 물으러 오는 손주를 순식간에 잡아먹는 괴물로 변하는 장면이 있었다. 너무 충격적이었는데 나는 언니가 그런 괴물이 되는 게 아닐까 했다. 말은 안 했지만 온 가족이 가시방석 같은 시간을 보냈다.
이듬해 언니가 다시 복학하기 전 엄마는 언니 몰래 학교를 찾아가 담당 교수님을 만났다. 아이가 상황이 이러니 자주 예쁘다 보기 좋다 칭찬 많이 해 주시라고. 그리고 같은 과 친구들에게도 가서 언니에게 오버해서 말 좀 걸어주고 관심을 가져 달라고... 나는 꽤나 충격을 받았다. 과연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내 피부를 간지럽혔다.
그 덕분인지 언니는 복학한 후 성격이 백팔십도로 바뀌었다. 학교 생활이 재밌다며 우울증 약도 끊고 옷도 자주 사면서 활기찬 사람이 되었다.
지금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 세계를 여행하며 여유롭고 신나는 삶을 누리며 산다. 부산에서 제일 좋은 아파트들을 여럿 소유한 채.
엄마가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언니는 다 싫다며 우리들도 잘 만나지 않는다. 자기를 감정 쓰레기통 취급을 했다고 원망하면서. 나도 언니와 그 기억들에게로 다가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엄마의 고민과 언니를 위해 했던 노력을 말해주고 싶은데 그냥 두기로 했다. 내가 언니와 엄마의 비밀을 알고 있듯이 다른 가족들도 내가 모르는 나를 알고 있지는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다시 다가갈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