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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영 Dec 16. 2024

           과거가   현재를  살리는가?

                  80년  5월이  2024년 12월에게

  1980년 5월,   어린 나이였음에도 나는  온통 사람들  위에  무슨 무거운 납덩이같은 것이 공기와 뒤섞여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대부분의 친정 식구들이 광주 인근에 살고 있었으므로 매일 전화를 붙들었다.


  그 당시 나에겐 전라도라는 곳이 달나라만큼이나 머나멀게 느껴져서  내가 부산에 살고 있음에 안도했다.  그러나 들려오던 소문들은 실로  경악스러웠다. 아이들을 총으로 쐈다는 둥 아기를 가진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는 둥.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관련된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았지만 TV 만 틀면 전두환이 등장했다. 그의 번쩍거리는 대머리와 아내 이순자의 삐죽 튀어나온 턱이 암암리에 조롱거리가 되어 아이들이 요상한 노래를 불러 대었다.


  몇 년 후, 울산에 살던 사촌오빠가 집에 놀러 왔다. 당시 유행하던  잠자리 안경에  청청패션을 즐겨 입던 오빠는 소문난 패 잘 알이었다.  아들이 정말 귀하고 소중했던 외가 식구들은   큰 이모의  큰 아들이었던 그 오빠를 모두 신줏단지 모시듯 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오빠.  나는 친오빠가  없었으므로 그를 몹시도  따랐다.  오빠가  와서  좋았던 나는  오빠의  앞 머리를 내 고무줄로 묶으면서  함께 놀았다. 귀찮았을 만도 하건만 내 장난에 잘 맞춰 주었다. 오빠는  어린 동생들을 자주 못 봐서 갑자기 보고 싶어  왔다며 자기 이모인 엄마에게  이런저런 얘기들을 주절 주절했다.  엄마는  " 이제  학교에 다시 복학하지  그러니, 아직도 힘들어?" 하며 걱정하듯  물었지만  금세 어두워진 표정으로 대답이 없었다.


  그때가 오빠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었다.  우리 집에  있다가 돌아가서  얼마 후에 오빠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엄마와 이모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말할 수 없는 충격에 빠졌다.

난  길을 걷다가도 그 생각이 나면 울고 밥을 먹다가도 눈물이 쏟아졌지만 누가 볼세라 급히 닦기를 반복했다. 오빠가 사 주고 간 바비 인형은  책상 위에 앉아 여전히 생글거렸는데도..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는 오빠가 80년 5월 그곳 광주의 공수부대원이었음을 듣게 되었다. 그는 젊고 아름다운 청춘의 모습으로  영원히 박제되었다.  


  그런 오빠의 모습이 2024년 12월 3일 ,  국회 유리창을 부수고  들어가는 군인들의 모습과 오버랩되었다.  충격과 공포로  잠 못 들던 그 밤이  지나고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이번 사태에선 희생자가 없었다.  그해 5월의 시간 속에서 여러 모습으로 희생되었던 사람들의 그림자가 오늘의 우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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