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는 소리
어슴프레한 빛이 창문으로 들어온다. 오른편에 이불 밖으로 양팔을 내놓고 자는 언니가 보인다. 베개에 고불고불한 머리카락이 헝크러져 있다.
팔을 머리 위로 올린 할머니가 허리까지 오는 재색 머리카락을 쓸어올려 오른쪽으로 비틀어 꼬고 있다. 머리통에 또아리를 튼 자두만한 머리칼에 은비녀가 꽂힌다. 모든 것들의 실루엣이 반쯤 보이고 반쯤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의 이부자리는 세로로 한 번 가로로 세 번 각이 맞춰 접혔다. 흰 속바지 위로 꽃무늬 치마를 입고, 조용히 방문을 닫는다. 나는 실눈을 감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집을 나간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와 할머니가 그릇을 씻고 아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광목천이 마당에서 손짓을 했다. 너울너울 흰 파도처럼 흔들렸다. 빳빳하게 마른 광목천이 마루 위에 펼쳐졌다. 그 위로 목화솜이 올려졌다. 다시 그 위로 꽃이 수 놓인 빨간 비단천이 올려졌다. 할머니와 엄마는 이불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않아 검지만한 바늘에 무명실을 꿰었다. 반짇고리에는 색색깔의 실이 실타래에 감겨 나란히 누워있었다.
바늘이 광목천과 목화솜 비단천을 차례차례 통과한다. 굵은 무명실이 쑥 뽑아져 올라온다. 흰 실타래에서 에서 무명실이 풀린다. 한 뼘 간격으로 꿰매지는 이불의 비명소리가 무 써는 소리처럼 서걱하고 들린다. 짧은 쪽을 꿰매고 엄마와 할머니는 모서리를 돌아앉는다. 이불의 긴 쪽을 꿰매던 할머니가 달라붙는 언니를 어깨로 밀친다.
저리 가.
바느질 통을 헤집던 나는 움찔한다. 가을 볕이 현관 샷시를 통과해 들어온다. 이불의 긴 그림자가 북쪽 창문으로 손을 뻗는다. 우리의 그림자가 마룻바닥에 길게 늘어서 햇볕을 이불처럼 빨아들인다. 겨울이 언니보다 먼저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