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나무뿌리에는 대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현관 계단 양옆으로 화분이 놓여있었다. 할머니는 꽃나무를 심고 가을에 씨를 받아 봄에 다시 심었다. 사시사철 마당에는 꽃이 피었다. 아름드리 라일락나무뿌리에 굴을 파고 사는 생쥐들은 아침마다 집 앞에 사체로 놓여있었다. 마당에 사는 진돗개 독고가 주는 선물이었다. 엄마는 빗자루로 생쥐를 쓸어 담으며 진저리를 쳤다. 매일 아침 끝이 바랜 라일락 이파리가 마당으로 떨어지고 하루에 한 마리씩 생쥐는 죽어 있었다.
하트모양 라일락 이파리가 무성한 여름이 되면, 골목에는 비가 자주 내렸다. 웅덩이마다 고여 있는 흙탕물에서 발을 구르는 기대를 하며, 언니와 나는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며, 집 안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소나기가 지나가고 동네 아이들이 골목으로 몰려들면 언니가 발을 구르는 세발자전거 뒤에 앉아 언덕을 올라갔다. 언덕 위에서 자전거 페달을 놓고 언덕 아래로 치달았다. 차가운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언덕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힘이 빠진 언니는 앞에서 자전거를 당기고 나는 뒤에서 자전거를 밀었다, 파란색 자전거는 웅덩이에 물길을 내며 시원하게 달렸다.
한여름에는 모기와 날벌레가 기승을 부렸다. 집 앞 가로등 밑에는 짝짓기를 하는 하루살이 수천 마리가 파닥거렸다. 하수구에는 장구벌레가 빨간 꼬리를 내놓고 둥둥 떠 있었다.
봉숭아꽃이 만개한 여름밤, 할머니는 봉숭아꽃을 따다가 백반을 섞어 짓이긴 다음 손가락 하나하나에 꽁꽁 동여매 주었다. 다음 날이면 손끝이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매해 여름, 골목 아이들의 손톱은 봉숭아 물로 물들었다. 봉숭아 물은 겨울이 올 때까지 손톱에 초승달 모양으로 남아 있었다.
라일락 이파리가 무성해지고 그늘이 짙어지면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여름밤을 보냈다. 풀을 먹인 이불 홑청이 까슬까슬하게 허벅지를 스치고, 모기향이 둥글게 타들어 가면서 밤하늘에 연기를 피워 올렸다. 할머니는 태극 모양 대나무 부채를 우리를 향해 살랑살랑 흔들었다. 언니는 자글자글한 할머니의 귓불을 만지면서 잠이 들었다. 나는 아빠를 기다리려고 애쓰다가 잠이 들었다. 여름밤의 공기는 서늘하고, 하늘의 별은 총총하고, 모기향은 매큼했다.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