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은 짧고 여름 해처럼 길었다
고무줄이 발목, 무릎으로 점점 올라갔다. 그때 동네 남자애들이 모퉁이에서 뛰어나와 면도칼로 고무줄을 그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이 튕겨 올라 허벅지를 때렸다. 우리는 새된 소리를 지르며 남자애들을 쫓았다. 남자애들은 멀리멀리 달아났다. 골목 끝에 다다라서야 우리는 가쁜 숨을 내쉬며 멈춰 섰다. 우리는 고무줄을 이어 매듭을 만들었다. 꽃봉오리가 고무줄에 달랑거렸다.
동네 남자애들은 방학 내내 개봉천 뚝방으로 곤충채집을 다녔다. 방학 숙제는 핑계일 뿐이었다. 남자애들의 채집망에는 곤충들이 뒤엉켜 있었다. 우리도 방학 숙제를 위해 뚝방으로 나갔다. 또 어디선가 잠자리채를 들고 남자애들이 나타났다. 잠자리채를 한번 휘두를 때마다 나비와 잠자리, 여치, 사마귀가 잡혔다. 우리는 헛손질을 하기 일쑤였다. 나비를 잡은 남자애들이 나비날개를 접어 검지와 중지에 사이에 끼고 여자애들에게 건네줬다. 나비를 잡았던 손가락 사이에는 마법의 가루처럼 날개의 미늘이 반짝거렸다.
뚝방에는 꽃이 천지였다. 제비꽃, 개망초, 망촛대, 소국, 잔디줄기, 메꽃들이 흐드러져 있었다. 개천 가까이에는 무와 배추가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져 있었다. 배추흰나비가 단연 많았다. 나리꽃에 앉아 꿀을 빠는 호랑나비를 발견하면 잠자리채 서너 개가 동시에 나비를 덮쳤다. 갈길이 겹겹으로 막힌 호랑나비의 찬란한 날개는 잠자리채에 찢겨져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날개가 망가진 나비는 필요 없었다. 풀 기둥을 붙잡고 날아오르려는 호랑나비를 두고 다른 나비를 찾아 아이들은 내달렸다. 부전나비는 주황색 점박이 날개를 파닥이다 채집통으로 들어갔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풀숲으로 나비가 숨는 시간, 플라스틱 채집통을 채운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채집통 안에서 온갖 곤충들이 뒤엉켜 베란다의 밤이슬을 맞았다. 나비는 채집통 안에서 날개 끝이 찢기거나 바스러지도록 펄럭였다.
개학식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베란다를 뒤져 채집통을 찾았다. 부서진 날개를 털어 스티로폼 판넬에 붙이고 곤충의 이름을 그 아래 또박또박 적었다. 노랑나비, 부전나비, 배추흰나비, 또 한 번의 여름이 나비날개에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파닥파닥 고물줄을 넘는 여자아이들 등 뒤로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