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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숙 Jan 08. 2023

네 눈엔 예쁜 별이

 1994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내가 도교육청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  “선생님 전화 받아 보세요. 제자라는데요.”

  내 이름을 대며 수화기를 무심히 받아 쥔 나는 처음엔 의아했다. 선생님만 한 번 부른 채 한참동안 저쪽에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연거푸 재촉하는 내 앞에 가늘고 예쁜 아가씨의 음성이 들려왔다.

  “저, 강혜숙이예요.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

  순간 내 뇌리를 스치는 기억 하나.

  “강혜숙? 그럼 혹시 그 달래나물.....”

  내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왈칵 큰 소리로 선생님을 외치더니 또 한참 사이를 띄었다가 저쪽에서는 이내 울먹이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선생님 저 잠시 후에 다시 걸게요.”

  전화기 끊겼다. 채 오 분도 되지 않은 그 사이에 나는 이십 오륙 년 전의 옛날 기억으로 치달았다.

  그 무렵, 학교는 도 학력고사로 온통 난리였다. 도교육청에서 출제한 시험지를 전 도내의 초등학교에서 학년별로 일제히 치르고 그 성적을 모두 평균 내고 표준편차 내고 그것을 또 학교별 학년별로 보고했다. 그야말로 학력위주, 시험 지상주의, 한 줄로 세우기의 교육풍토가 교육현장을 지배하고 있을 때였다.

  나도 다른 교사들처럼 날마다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들을 교실에 늦도록 남겨놓고 나머지 공부를 시켰다. 그리고 4학년이던 혜숙이는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단골이었다.

  전화는 곧 다시 이어졌다.

  “선생님, 막상 선생님 목소릴 듣자 뜻밖에 눈물이 나서 말을 이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잠시 전화를 끊었다가 다시 한 거예요.”

  “그랬니? 정말  반갑다. 그런데 어떻게 전화를 다 했니? 이렇게 세월이 갔는데....”

  “선생님, 얼마나 뵙고 싶었다구요. 늘 잊지 않고 선생님 생각을 했어요. 마음으론.”

  이렇게 시작한 전화로 우리는 두 주일 후 서울의 어느 커피숍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날 당장 찾아오겠다는 걸 내가 서울에 출장 가는 날짜와 맞추었던 것이다.

  날마다 나머지 공부를 해도 별로 나아지는 게 없던 혜숙이었다.

  “그 날, 지겨운 나머지 공부 시간에 저에게 개별 지도를 해 주실 때였어요.”

  혜숙이는 지금껏 전혀 내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내가 자기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혜숙이 눈엔 정말 예쁜 별이 들어있구나.”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저 맑은 눈 좀 봐. 예쁜 생각, 예쁜 마음이 다 들었겠네. 그 예쁜 눈을 보면 누가 나머지 공부 한다고 믿을까?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말을 함께 들었다고 혜숙이는 자랑했다.

  “지금도 그 때의 선생님 표정을 기억해요.”

  “그랬니?”

  “그날 집에 가서 숙제를 다 해놓고 저는 생전 처음으로 예습을 했어요. 공주가 된 기분이었지요. 그때까지는 공부 못하는 저를 아무도 예쁘다고 말해주진 않았거든요.”

  그랬어? 난 그런 기억이 안 나는데....“

  내 기억은 달랐다. 그 애가 달래 나물을 가지고 왔던 일만 생각난다.

  “넌 그 때 아주 부끄러워하면서 달아났었지.”

  “선생님 저도 알아요. 저는 그 날 이후 선생님이 너무 좋아져서 뭔가 드리고 싶었어요. 일요일에 하루 종일  냇둑에서 달래 나물을 캤어요. 그런데 막상 선생님께 그걸 드리려니까 어찌나 부끄러운지 그만 선생님 앞에 던져놓고 도망을 갔었지요.”

  “그래, 난 사실 그 때 감동했었어. 저녁 시장에 들려 몇 푼 주면 살 수 있는 달래 나물이지만 나를 주려고 도랑 가 냇둑을 하루 종일 내달았을 네 모습에 눈물이 다 날 뻔 했단다. 네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난 그 때 그 이야기를 수필로 써 두었지. 잊지 않으려고.”

  “그러셨어요? 선생님이 저를 기억이나 해 주실까 초조했는데 제 이름 듣는 순간 달래 나물을 잊지 않으신 걸 보고 저는 그만 목이 메었던 거예요. 선생님.”

  그 오랜 세월 후에 만난 우리는 서로의 눈에 어리는 눈물을 바라보며 새로운 감동과 새로운 사랑에 젖어들었다.


  혜숙이는 유능한 헤어디자이너가 되어 서울의 고급 미용실에서 선생님이라 불리우며 대단한 파워를 갖고 있었다. 또 머지않아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외국으로 나갈 거라고 포부를 말하기도 했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선생님이 내 눈엔 별이 있다고 하신 말씀을 떠올렸어요.”

  그까짓 지나간 한 마디가 무어 그리 큰 대수라고 그 애는 그 말에 그토록 큰 의미를 걸었을까? 

  “저는 늘 선생님을 생각했어요. 공부 못해서 푸대접만 받는 제 눈에서 예쁜 별을 찾으신 건 선생님이 저를 사랑하신 증거였어요. 그 자긍심 때문에 제가 얼마나 살아가는데 용기를 얻었는지 아세요?”

  혜숙이의 그 말에 오히려 죄책감을 느낀 건 나였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교직이란 이 길에서, 눈앞의 일에 매달려 살아가느라고, 새로운 만남을 엮어가는 동안 나는 솔직히 강혜숙이란 이름을 그동안 거의 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혜숙이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알 수 없는 무엇으로 목이 메었다..

  ‘별 것도 아닌 말 한 마디에 용기를 갖고 희망을 걸고 이렇듯 잘 자라 준 나의 제자야, 정말 고맙다. 이젠 늙고 지치고 힘겨운 내 생에 너희들이 오히려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는구나. 자랑스런 나의 아이들아.’

  그 후 몇 번인가 나는 혜숙이를 통해 다른 제자들의 소식도 듣고 또 몇 명을 가까운 곳에서 만나볼 수도 있었다.

  스승이 되는 일. 그리고 가르치는 일,

  미처 자신마저도 깨닫지 못한 한 마디의 말일망정 그것이 사랑으로 승화되었다면 열정을 다해 가르친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위대한 힘을 지닌다. 

 -교실 문을 열기 전에 네 얼굴에 웃음을 가득 채워라-

  어느 위대한 교육자의 말씀이 다시 가슴에 닿는다. 사랑이 있는 곳에 이미 교육의 씨앗은 뿌려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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