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안 보는 게 없는 1차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수의사로서, 여러 진료 영역 중에 참으로 편하면서도 불편한 진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치과 진료이다.
편한 이유는 (아이가 입을 볼 수 있게 해 줄 만큼 착하기만 하면) 입을 벌려 치아를 보는 것만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장 치아를 보는 것 말고 더 할 게 없다는 말이다.
추가로 더 하는 것이라곤 추후 수술(마취) 예약을 잡는 일이다. 치아를 방사선으로 제대로 평가하고 스케일링 또는 발치 등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마취를 해야 하므로 바로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치석이 많고 구취가 심하며 치은의 퇴축, 치아 동요도 증가, 치근 이개부 노출 등 치주질환의 증거들이 보이면 사실상 자세히 말할 필요도 없고,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방사선 촬영과 프루빙을 통해 눈으로 볼 수 없는 문제를 확인해야 하고 아무리 양치를 잘해도 치은연하 세정은 꼭 필요하므로 거의 무조건 날을 잡자고(?) 말한다.
이렇게 치과 진료는 곧 수술 예약을 설득하는 일로 귀결되기에 크게 할 게 없어 편하지만, 불편해지는 이유는 보호자 중 많은 분들이 전신 마취를 두려워해 피하거나 미루려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루 세 번 양치를 빡세게 해도 일 년에 한 번 스케일링을 하지 않느냐, 동물은 한 주에 세 번 양치하기도 어려운데 스케일링은 꼭 해줘야 합니다"
설득하고 또 설득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같다. "마취하다가 잘못될까 봐… 너무 걱정돼요" "가뜩이나 나이도 적지 않은데, 죽는 것보다는 이빨 아픈 게 낫잖아요"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아플 것이 뻔히 보이는데… 평생을 아픈 이빨을, 더군다나 한두 개도 아니고 몇 십 개나 달고 사는 친구들을 보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슬프다.
(실제 말은 못 하지만) 그런 보호자들에게는 만약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통증을 억지로 참으면서 사느니… 한 번의, 그것도 그리 높지 않은 확률의 위험을 감수할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다.
'앓던 이가 빠졌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치통은 고통스럽다. 순간의 아픔과 위험은 있을 수 있겠지만,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시원함을, 아프면 아프다 말도 못 하는 우리 가여운 친구들에게 누릴 수 있게 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