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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브런 Mar 04. 2024

등산 잘 못해도... '시산제'에 참가합니다

동문산악회에서 아내와 함께 건강과 행복을 챙긴다

▲  지난해 청계산 시산제 장면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있지만 산은 봄채비를 하고 있다. 발맞춰 많은 사람이 산에 오를 것이다. 



오는 9일은 올해 시산제 개막을 알리는 '길일'이다. 졸업한 고등학교 동문산악회도 이날 북한산에서 시산제를 개최한다고 연락이 왔다. 



동문산악회는 매달 한번 정기산행을 주관하는데 '백두대간'을 탈 정도로 등산애호가들이 제법 많다. 시산제는 동문들이 가장 많이 참가하는 행사로 산악회 임원들은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소식이다. 



만 10년 전 허덕대는 저질 체력을 키워볼까 우연히 동문산악회를 접하고 동창 따라 산행을 나섰다. 그간 산보와 걷기운동만 주로 하다 산행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이날은 마침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산에 오르는데 숨이 턱에 자주 차 중도포기를 여러 번 고민하다 결국 청계산 정상 '매봉'에 올랐던 장면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의 희열은 나도 처음 산에 갈 수 있는 건강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산에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다는 연대감을 깨닫게 했다. 



그때 비로소 등산만 한 운동이 없다는 것에 공감했다. 골프와 테니스 등 여러 운동을 전전하던 친구들도 이제는 대부분 산행으로 돌아섰다.  



동문산악회에 가입한 후 매달 산행에 거의 빠짐없이 참가했다. 기억에 제주도 한라산을 제외하고 얼추 국내 유명한 산은 거의 다녀온 것 같다. 



산을 타면서 바닥난 건강을 되찾았다. 특히 선배는 후배를 배려하고 후배들은 선배를 존경하는 분위기가 왠지 끌렸다. 이러한 동문들의 정겨운 모습은 잊어버린 모교에 대한 '애교심'마저 되살렸다.  



▲  지난해 동문산악회 청계산 시산제 기념사진



동문산행을 나보다 더 기다리는 아내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아내와 함께 산행을 시작했다. 아내도 등산을 하면서 '바이털사인'이 좋아지고 등산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아내는 이내 산악회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얼굴을 가리는 성정과 달리 동문들과 잘 어울리는 것이 대견했다. 동기들은 아내와 함께 등산하는 나를 부러워했다. 덕분에 아내와 나는 '잉꼬부부'로 소문났다. 소문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지금은 '훈장'이 됐다.  



우리 부부 따라 산악회에 커플이 생기는 보람도 있었다. 산악회는 물론 나도 부부산행을 적극 권장하고 응원하는데 예상보다 늘지 않는 것은 '미스터리'다. 



언제부턴가 아내는 나보다 산행을 더 기다리는 '마니아'가 됐다. 아내는 매달 산행 일정을 챙기고 동료들의 간식까지 준비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그런데 몇 해 전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 산행이 어려워졌다. 공교롭게 나 또한 무릎 관절에 이상이 왔다. 정확히 4시간 정도 등산하면 무릎이 시리고 아프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산행 대신 가끔 고궁이나 둘레길을 찾기도 한다. 이제는 산 높이와 산행 시간을 따지니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런 사정을 내색하지 못하는 신세가 어떨 땐 답답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어언 50년이 넘어 고참 축에 끼는데 산악회에는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선배들이 수두룩하다. 이에 산악회는 남산이나 둘레길 등 체력이 덜 소모되는 코스를 가끔 선정하기도 한다. 



▲  지난해 5월 동문산악회가 베풀어준 7순 잔치



내가 '동문산악회 시산제'에 참가하는 이유



산행을 하면서 한 달에 한 번 동문 얼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이 들어 건강하다는 표정을 나누는 시간이 점차 소중해졌다. 사실 산행 아니면 얼굴 볼 기회도 드물다.  



이러한 생각은 동문(同門) 아닌 아내 또한 마찬가지다. 산행하는 동문들을 보면 자신도 이심전심 즐겁고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달 산행을 준비하는 후배들이 자랑스럽고 늘 고맙다. 산악회는 지난해 자식들한테도 받기 힘든 '7순 잔치상'도 베풀어주었다. 



올해부터는 시산제 장소를 변경해 북한산에서 지낸다고 한다. 이 또한 고령의 선배를 배려한 조치라는 후문이다. 올 시산제는 무작정 참가할 계획이다. 오랜만에 보게 될 동문들이 선하다. 



▲  북한산



한편 시산제를 앞두고 산악회 운영 후원금 모집이 한창이다. 많은 동문들이 십시일반 줄지어 성금을 기탁하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급해진다. 



분위기를 보며 내야 할 찬조금을 저울질하고 있는데 아내가 상황을 정리해 준다. '10만 원 찬조는 체면이 아니다'라며 나더러 더 내라고 등을 떠민다. 



아내 말에도 일리가 있어 능력도 안 되는 처지에서 거금(?) 20만 원을 산악회로 송금했다. 아내가 잘했다고 칭찬해 준다. 남편 산악회에 찬조금을 더 내라고 닦달하는 아내는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산행 뒤풀이를 마치고 동문들과 교가를 힘차게 부를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학교 다닐 때는 제대로 느끼지 못한 '카타르시스'다. 



무릎관절 때문에 예전같이 산을 잘 타지 못하지만 학창 시절 추억을 소환하는 시산제가 기다려진다. 시산제를 통해 올해도 동문산악회와 동문들의 안전하고 건강한 산행을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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