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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브런 Mar 30. 2024

아이스크림 하나에 그렇게 감탄해?

하루 두 번 아내 아내의 마음을 얻다

부부가 오래 함께 살아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 못 할 때가 많다. 아니 평생 그걸 알지 못하고 지내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남자는 여자가 되어보기 전에는 아내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만큼 부부생활이 어렵다는 것이다.


     


내 경우 은퇴 이후 특히 아내의 마음을 사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고 아내에게 핀잔만 듣고 산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어제는 제철이라는 '임연수어'를 사러 노량진 수산시장을 들렀다. 장보기 전에 메모한 리스트는 늘 그렇듯 아무 소용이 없다. 1층 생물 좌판에서 임연수어를 고르고 물 좋은 생대구를 샀다.


     


자리를 옮겨 싱싱한 아귀도 한 바구니 사고 말았다. 가게 주인이 먹기 좋게 손질하는 아귀를 지켜보면서 시원한 아귀찌개 생각에 군침이 돌았다.


     


2층 젓갈 매장에도 잠시 들렀다. 입맛이 떨어질 때마다 기웃하는 곳인데 여기선 갈치젓갈을 조금 구입했다.


       


 

장을 모두 마치고 이동하는데 튀김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앞에는 새우튀김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우리 튀김 한번 먹어볼까"하고 말을 걸었다. 내 제안이 뜻밖이라는 듯 아내는 눈을 크게 떴다.


     


아내 표정이 놀랄만도 했다. 수산시장에 올 때 이곳을 거쳐가지만 나는 지금까지 튀김을 사 먹자는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내는 튀김코너의 튀김을 진작에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실 나도 새우튀김 맛이 오래전부터 궁금했었다.


     


나는 다양한 튀김새우들이 들어가는 박스를 한 개 주문했다. 바삭하게 구워진 새우는 유달리 노랗게 보였다. 우리는 간이 탁자에 걸터앉았다.


     


갓 튀겨서 그런지 따끈한 튀김의 식감이 바삭하고 부드러웠다. 아내와 나 둘 다 기름에 튀긴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튀김의 유혹과 매력을 맘껏 음미했다.


      


많이 먹지 못하고 튀김을 남겼지만 우리는 튀김 맛보다 더 중요한 호기심을 체험한 것이 신기했다. 새우튀김을 먹고 싶다는 감정을 아내에게 솔직히 드러낸 것도 잘한 일이었다.


     


시식 후 아내의 일성, "당신이 이렇게 사서 먹자는 말에 놀랐는데 당신을 다시 보게 됐다"라고 말했다. 아내가 내 진면목을 비로소 알았다는 극찬의 표현이었다.


     


사실 아내에게 튀김을 먹자고 제안한 이유를 아직도 모르지만 우리 부부가 시장 골목에서 음식을 사 먹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는 장을 보다 먹고 싶으면 포장해서 집에 와 먹는 스타일이다. 이런 습관은 대물림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때 어머니 따라 시장을 많이 다녔지만 엄마나 나나 시장에서 군것질을 한 기억이 없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길가에서 음식을 먹는 걸 멀리하는 성격이다. 이는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수되었다.


       


저녁에는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데 아내가 편의점 아이스크림(월드콘)이 먹고 싶다는 것이다. 운동으로 당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이것저것 가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수산시장 튀김코너에서의 기지를 발휘해 나는 무조건 아이스크림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갔다. 그리고 아내에게 건넸다.


     


아내는 내게 한입 먼저 먹어보라고 한다. 한 입 물었다. 맛이 달콤했다. 나머지 아이스크림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 아내는 "아이스크림 맛을 당분간 잊을 수 없다"라고 했다.


     


아내의 아이스크림 이야기는 과거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냥 지나가는 말로 알았다. 그리고 나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는다. 찬 것을 먹으면 배가 끊어질 듯 아프기도 하다.


     


아내는 운동하고 나면 배가 고프다고도 자주 말한다. 아내의 시장기는 일반적인 허기와는 조금 다른 것이다. 알고 보니 그것은 음식이 아니라 마음이 허하다는 뜻이었다.


     


음식은 분위기로 먹는다고 한다. 아내가 새우튀김과 아이스크림을 반긴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어쨌든 하루 두 번이나 아내가 나에게 감탄하다니 감흥이 특별했다.


     


가만 생각해 보면 평생 내 생각만 고집하면서 살았다. 아내 입장과 마음을 헤아리는 데 인색했다. 공감능력도 부족했다.


      


"남에게 착하다는 말을 들으려고 그렇게 애쓰면서 자기한테 배려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아내의 푸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아내에게 미안하고 감사할 뿐이다.


     


봄이다. 벚꽃들이 치장에 바쁘다는데 주말에는 꽃과 대화하기 좋아하는 아내에게 벚꽃 구경을 제안해볼까 한다. 그리고 기회를 봐 아이스크림도 권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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