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추억을 간직하며
한 차례 비가 쏟아졌다. 젖은 꽃잎과 낙엽이 뒤엉킨 잔디, 그 위로 흙 내음이 짙게 퍼진다. 바야흐로 완연한 가을. 더위가 빨리 가셨다고 느껴지는 건 무더위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작년 여름의 기억 때문일까. 미국에서 맞는 두 번째이자, 마지막 가을이다. 가뜩이나 ‘가을’이라는 계절감에 쓸쓸함이 고조되는데, ‘마지막’이라는 수식어까지 더하니 어쩐지 아쉬움이 몰려왔다. 신랑과 “날씨 너무 좋다”, “이렇게 파란 하늘을 또 볼 수 있을까?” 등등의 소회를 나누던 중, 지금 해야 할 일을 깨달은 우리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나가야 한다. 이 하늘과 이 온도와 이 운치를, 당장 즐겨야 한다.
이왕이면 안 가본 곳에 가고 싶었다. 이곳에 사는 기간이 한정되어 있는데, 갔던 곳에 또 가는 것은 왜인지 아깝게 느껴져서다. 넓고 넓은 미국 땅에서 이 동네만 해도 갈 곳이 많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주말마다 새로운 장소를 찾아 나서곤 했다. 하지만 그날은 비가 올 거란 예보에 아무 계획도 세우지 못한 상태였다. 갑작스러운 외출이라 미처 검색할 시간도 없었다. 무작정 차에 올라타 망설이고 있는데, 큰아이가 먼저 제안을 해왔다. “작년에 갔던 농장, 거기 갈까요?” 신랑은 주저 없이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찾아 입력했다. 그렇게 우리가 향한 곳은 한 시간 정도 거리의 근교 호박 농장이다.
흔히 펌킨 패치(Pumpkin Patch)라고 불리는 미국의 호박 농장에 가면 다양한 종류의 호박들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은 호박으로 핼러윈 장식을 하거나 잭 오 랜턴을 만들기도 하고, 호박 수프, 호박 쿠키, 호박 파이 등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미국에 오기 전, 아이들과 영어 그림책을 볼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펌킨 패치’ 에피소드를 기억한다. 호박 담을 커다란 수레를 픽업트럭에 싣고, 농장에서 인형 뽑기, 신발 던지기 게임, 트랙터 타기 체험을 하던 귀여운 주인공들. 당시의 나와 아이들은 ‘농장에서 왜 이런 걸 하지?’ 하고 신기해하며 웃어넘기곤 했다.
그 모든 의아함이 풀린 건 작년 가을, 첫 펌킨 패치 체험을 하고 나서였다. 농장이 그저 호박을 사고파는 마켓의 개념이 아니라, 유원지처럼 각종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처음 농장에 도착했을 때, 그 기분 좋은 소란함을 잊을 수 없다. 너른 주차장을 지나, 들판 가운데 선택받기를 기다리듯 어여쁘게 놓여 있던 호박들. 신데렐라 마차의 늙은 호박에서부터 표면에 울퉁불퉁 돌기가 솟은 너클 헤드 펌킨, 조롱박 모양의 작은 호박까지. 사람들은 수레를 끌고 와 크기별로 호박을 담아 갔다. 호박들 틈에서 멋지게 포즈를 취하며 기념사진을 찍는 가족들도 보였다. 아이와 노부부, 연인들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농장을 즐겼다. 파란 하늘과 주황의 열매. 그 선명한 대비에 시선을 빼앗긴 나 역시 분주하게 카메라 버튼을 눌러댔다. 그 사이, 무언가에 흥분한 아이들이 내 바짓가랑이를 흔들어 댔다. “엄마, 저 바운스 탈래요. 저기 페인팅하는 곳도 있어요.”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아이들의 첫 관심사는 바운스였다. 티켓을 끊고 초대형 바운스 앞에 늘어진 줄 뒤로 걸음을 옮겼다. 큰아이는 8세 이상 표지판이 세워진 왼쪽 줄로, 작은아이는 오른쪽 줄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다 마침내 신발을 벗고 성큼성큼 오르는 아이들의 모습에 제법 비장함이 느껴졌다. 작년에는 막상 바운스 앞에 가니 무섭다며 안 하겠다던 작은아이가 올해는 동영상까지 찍어 달라며 씩씩하게 발을 굴렀다. 그 모습에 또 한 뼘 성장한 것 같아 흐뭇해졌다. 힘주어 무릎을 구부렸다가 용수철처럼 솟아오르며 웃음을 뿌리는 아이들. 파란 하늘 위로 검정, 주황, 노랑의 머리칼이 뻗어 오를 때마다 허공에 까르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켜보는 모든 엄마아빠의 얼굴에도 같은 미소가 번져나갔다.
“나 어릴 때 생각 나. 시장에 가끔씩 오던 작은 바이킹이 있었는데, 그거 올 때마다 태워달라고 엄마한테 졸랐었거든.” 내 말에 신랑이 맞장구를 쳤다. “나도 동네에 트램펄린 아저씨 있었는데. 그거 진짜 재밌었어. 근데 우리 이 얘기 작년에도 했던 것 같아.” 그 말끝에 푸핫 웃음이 터진 우리는 물끄러미 아이들의 환한 얼굴을 눈에 담았다. 통통 튀어 오르는 놀이기구 하나만으로 세상 모든 즐거움을 다 가진 것 같은 얼굴. 침묵 속에서 신랑과 나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아마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 아이들에게 아득한 추억으로 남겠지.
열정적으로 바운스를 타고난 후, 우리는 ‘페인팅 하우스’ 표시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작은 호박 하나를 골라 그림을 그려 꾸미는 활동이다. 물감과 붓이 구비된 테이블에는 지난 손님들의 흔적이 얼룩덜룩 남아 있었다. 깔끔쟁이 작은아이가 주춤하는 사이, 휙휙 거침없이 붓질을 시작하는 큰아이. 그런 오빠의 속도에 지고 싶지 않았는지 이내 작은아이도 털썩 앉아 칠을 시작했다. 눈매가 올라간 무서운 얼굴을 호박에 그려 넣고, 좋아하는 색으로 뒷면을 장식하면 아이만의 스푸키 호박 완성. “물감아, 잘 말라라.” 조심스럽게 호박 꼬투리를 들고 햇볕에 가지런히 올려두는 손길에서 애정이 느껴졌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옥수수 밭에 텍사스 주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커다란 미로였다. 작년에는 시간이 모자라 돌아서야 했기에 내내 아쉬웠더랬다. 우리는 벽에 갇힌 듯 미로 속에서 길을 찾으며 모처럼 넷이서 한마음이 되었다. 중간에 다른 가족들을 만나 힌트를 나누고 응원을 건넨 후 한 걸음씩 내딛던 순간들. “여기 아까 왔던 것 같은데?”, “다시 저리로 가볼까?” 그렇게 우왕좌왕 더듬어 발을 맞추다 마침내 빠져나왔을 때의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 “우리 못 나가고 갇히면 어떡해요?” 하며 불안해하던 아이들의 얼굴에도 안도감이 찾아왔다. “아빠 믿으라 했지? 우리 넷이서는 뭐든 할 수 있어.” 상기된 얼굴로 신랑이 답했다. 이 미션을 듬직하게 완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난 표정이랄까.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물감이 바짝 마른 호박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곤히 잠든 작은아이 옆에서 큰아이가 속삭였다. “엄마 아빠, 오늘 좋았죠?”, “응, 오늘 좋았지.” 거의 동시에 답한 신랑과 나. 아이가 아니었으면 이곳에 또 올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펌킨 패치를 가더라도 작년과는 다른 곳으로 가야지, 계획하고 있던 터였다. 미션을 깨듯, 하지 못한 경험들을 찾아 해내는 것에만 집중해 왔던 나였다. 어쩌면 나는 추억할 수 있는 장소들을 개수로 세어, 많고 많은 스팟들을 저장하는 데에 급급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야 이곳에서의 시간을 알차게 쓰는 거라 여겨왔던 것이다.
그날, 집에 돌아오며 생각했다. 추억이란, 개수로 세어 많고 적음을 따질 것이 아니라, 정도와 깊이로 가늠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닐까. 새로운 기억의 장소를 늘려나가느라, 한 장소에서 깊어질 추억의 기회를 놓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아끼는 책을 여러 번 읽고 밑줄 쳐둔 부분을 다시 찾아보듯, 좋았던 곳에 한 번 더 가보고, 맛있었던 음식을 또 먹을 때, 더 깊이, 더 진하게 각인되는 순간들이 있다. 어리석게도 나는 이런 소소한 사실들을 자주 잊고는 한다.
모두 잠든 밤, 홀로 앉아 수첩을 꺼냈다. 사진첩을 열어 지나온 장소들을 더듬었다. ‘여긴 산책로가 참 예뻤는데 ', '이곳에서 만난 거위를 큰아이가 참 좋아했었지 ', '여기서 작은아이가 처음 집라인에 성공하기도 했어' 그렇게 다시 가보고픈 곳들을 메모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한 장소에서 익숙함과 새로움을 번갈아 느끼는 즐거움. 그런 기쁨에 대해 알게 되어서일 것이다. 설령, 다시 갔을 때 예전보다 재미가 덜할지라도 후회 없이 그곳을 누렸다는 시원함에 미련 없이 추억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안 가본 곳이 있지 않을까 초조해하던 마음에도 여유가 찾아온다.
세 번, 네 번 가도 좋은 곳. 여러 번 해도 좋은 일. 그런 데에 아낌없이 시간을 쏟고 싶다. 다 아는 것이라고 대충 훑지 않고 더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다. 서먹하게 그냥 아는 사이에서 깊은 친구 관계가 되듯. 그런 정성스러운 순간들이 모여 의미 있는 추억으로 빛나리라 믿는다. 훗날 한국에 돌아가서 아쉬움 없이 ‘그 시절 참 좋았지’ 웃으며 회상할 수 있기를, 애틋하게 이곳을 간직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