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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서 Feb 08. 2024

강백호가 아니어도 괜찮아

주저앉지 않는 너는 이미 위너!

유난히 찌뿌둥한 아침이다.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오른팔, 손목까지. 자세를 바꿀 때마다 미세한 근육 통증들이 찌릿 기척을 낸다. 주말 내내 큰아이와 농구 연습을 한답시고 이리저리 몸을 휘저어가며 뛴 결과이다. 정작 많이 뛴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오랜만의 격한 움직임에 잠자던 근육들이 놀랐는지 나 홀로 통증에 시달리는 중이다.

     

만으로 열 살이 된 큰아이는 2주 전부터 농구 수업에 참석하고 있다. 운동에는 좀체 관심 없던 아이가 농구 수업을 듣겠다고 말을 꺼낸 건 한 달 전쯤이었다. “운동을 안 했으니까 농구해볼래요.” 미국 생활을 6개월 정도 남겨두고,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자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미국에서는 축구, 농구, 야구, 킥볼 등 종목별로 어린아이부터 참여할 수 있는 클럽들이 다양하게 운영된다. 주로 주중에 1, 2회 연습 수업을 하고 토요일에 팀별로 경기를 진행하는 식이다. 이론적인 스킬만 배우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주 실전 게임을 한다는 게 큰 메리트로 느껴져서, 나는 미국에 온 후로 줄곧 아이에게 운동을 권유해 왔다. 하지만 아이의 대답은 한결같이 ‘No.’ 주말엔 못 본 책도 읽고 가족들과 나들이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농구할게요.’ 한 마디에 분주해진 나는 서둘러 지인이 추천해 준 가까운 농구 교실에 원하는 요일과 시간대를 등록했다. 아이의 ‘할게요’, ‘하고 싶어요’라는 말은 내겐 그 어떤 사랑 고백보다 설레는 말이다. 내성적이고 조심성 많은 아이라 새로운 시도 앞에서 오래 망설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고민했을지, 그 과정에서 한 걸음 더 성장한 것 같아 왠지 뭉클한 마음마저 들었다.

      

드디어 첫 수업 날. 들뜬 마음으로 새로 산 농구공을 들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아이는 살짝 긴장했는지 표정이 얼어 있었지만 몸 풀기 운동을 하며 조금씩 적응해 가는 눈치였다. 불안해진 건 오히려 나였다. 같은 나이대 초급반인데도 아이들의 수준이 꽤 높았다. 슛 성공률은 낮았지만 전반적으로 아이들 모두 기본적인 드리블 실력들을 갖춘 상태였다. 이미 농구공과 충분히 친한 아이들이었다. 공을 받는 데 두려움이 없었고 자석처럼 손바닥에 공이 착착 붙었다. 그런 아이들 틈에서 드리블 연습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큰아이는 홀로 허둥대고 있었다. 공은 자꾸 옆으로 빠지고 패스를 건네도 빠른 공 속도에 움찔하며 제대로 받지 못했다. 코치 선생님께서 지도해 주시는데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드리블하는 모습을 곁눈질하며 의기소침해진 큰아이 얼굴을 보고 있자니 속이 타들어갔다. ‘더 어린아이들 반으로 들어가야 했나’, ‘이렇게 수업 듣다가 아이 마음만 상하는 거 아니야?’ 초조한 마음에 자꾸 시계로 눈이 갔다. 한 시간은 꽤 길었고, 나는 끝나면 어떤 말로 아이를 달래줘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엄마, 너무 재밌어요!” 수업이 끝나고 내게 달려온 큰아이의 첫마디였다. 혹시라도 아이가 안 하겠다고 하면 어쩌나 맘 졸이고 있던 터라, 의외의 말에 짐짓 놀란 것도 사실이다. 한시름 놓으며 “재밌지? 엄청 열심히 하더라. 고생했어.” 아이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 많이 뛰어서 운동도 되고 좋은 것 같아요.” 그 한 마디에 수업 시간 내내 고민하고 걱정했던 모든 것들이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공 다루는 게 좀 어렵지는 않아?” 아이가 답했다. “어렵긴 한데, 처음이잖아요. 연습하면 나아지겠죠. 괜찮아요.”

    

어떤 표정은 그 자체로 솔직한 언어가 되기도 한다. 아이의 심상하고 평안한 얼굴에서, 나는 어느새 더없이 단단해진 아이의 내면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 순간들이 있다. 세상 누구보다 잘 안다고 여겨왔던 내 아이가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찰나들. 이를테면 뽑기에서 원하는 장난감이 나오지 않아도 울지 않고,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지만 다 먹지 않고 동생 몫을 꼭 챙겨둘 때, 처음 해보는 일들도 단번에 거절하지 않고 두 번 세 번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묵묵히 통과하는 아이를 느낄 때면 철없는 엄마는 다시 코끝이 찡해지고 만다.

     

사실, 농구 수업 내내 누구보다 실망하고 기분이 가라앉아 있던 건 나였다. 아이가 기죽을까 걱정하면서도 잘하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턱없이 뒤처지는 실력이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그동안 공을 가지고 놀아본 경험이 많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음에도 당장 내 아이의 미숙한 모습을 보는 것이 그저 불편하기만 했다. 그런 내게, 아이는 보란 듯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고 대수롭지 않게 스스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애초에 출발선이 다른 타인과의 비교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나’의 비교 상대는 ‘어제의 나’, 혹은 더 나아질 ‘내일의 나’여야 한다는 것을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두 차례, 주말 팀 경기를 치렀다. 초급반 경기라 이쪽 골대에서 저쪽 골대로 우르르 왔다 갔다 하는 게 전부지만 아이들의 열정만큼은 프로 못지않게 뜨겁다. 큰아이는 한 골도 넣지 못했지만, 첫 경기에서는 깔끔하게 리바운드, 두 번째 경기에선 날카로운 어시스트로 박수를 받았다. 경기가 끝날 때마다 코치 선생님이 다가와 큰아이의 어깨를 토닥인다. “Good! So proud of you!”라고 진심을 담아 전하는 선생님의 말에 배시시 웃는 아이. 이기고 지는 것, 골을 넣고 못 넣고 보다 한 걸음씩 차근히 나아가면 된다는 걸 아이도 나도 함께 배우는 중이다.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며 일요일마다 농구장에 가자는 큰아이의 제안으로 2주째 네 식구 나란히 농구 코트로 나들이 중이다. “이러다 우리 다 강백호 되는 거 아니야?” 신랑의 우스갯소리에 아이들이 강백호가 뭐냐고 묻는다. 퉁! 퉁! 바닥을 치고 튀어 오른 농구공을 잡아 호기롭게 슛을 성공한 신랑이 아이들을 향해 답한다. “아주 열정적인 전설의 플레이어지!” 그 말에 큰아이가 “그럼 나도 강백호!” 하며 두 손을 뻗었다. ‘강백호가 아니면 어때. 주저앉지 않고 더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만으로 넌 이미 멋진 걸!’ 골대 뒤편으로 가지만 앙상한 겨울나무가 소리 없이 흔들린다. 나무에 새 잎이 돋아나고 여린 녹색 빛이 촘촘히 짙어질 즈음이면 아이의 키도 조금은 자라 있을 테다. 소리 없이 깊어지는 모든 존재들에 응원을 보낸다.


파이팅! 너의 노력을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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