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trinsic thinker Apr 30. 2023

부동산의 파레르곤(parergon)

아파트 브랜드와 에르곤(ergon)

독일의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예술 작품을 본질인 에르곤(ergon)과 본질에서 떨어진 것을 의미한  Par + ergon 파레르곤(parergon)으로 구분했다.

미술작품에 있어서 에르곤을 내부적 의미인 그림으로, 파레르곤을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보조적 의미인 액자로 보았다. 파레르곤을 액자에 비유하면서 보조적으로 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부 에르곤만으로는 그 존재가 충분하지 않음을 얘기한 것이기도 하다.


자크 데리다(Jacque Derrida, 1930~2004)는 액자를 그림을 위한 것인지 벽을 위한 것인지 의문을 던지면서 파레르곤의 개념을 내부 본질에 상당히 영향을 주면서 주변부이기도 한 존재로 보았다. 에르곤과  파레르곤이 기능적으로 상호 의존적이라고 해석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 복잡하고 심오한 개념을 부동산과 연결해서 생각하게 된건 현란하게 지어진 아파트 이름들을 보면서 부터인것 같다. 물론 물리적으로 아파트 집안을 에르곤으로 보고 집밖의 공용부 커뮤니티 시설, 조경 등과 울타리까지를 파레르곤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보다는 날로 복잡해지고 어려워 지는 아파트 이름을 보면서 주거를 위한 모든 기능들을 본질인 에르곤으로, 아파트 이름을 본질에서 분리된 파레르곤으로 보고 이를 살펴 보기로 했다.  


과거 건설사의 이름을 따서 ㅇㅇ아파트 정도로만 불리던 아파트는 어느 순간 래미안, 힐스테이트, e편한세상, 자이, 푸르지오 고유의 브랜드명칭이 생기더니 건설사명은 사라지고 그자리에 필수가 되어 버린 브랜드명 앞뒤로 아파트의 특징을 표현한 단어가 덧붙여 졌다 그리고 그 후 고급진 느낌을 갖는 외래어를  브랜드 앞뒤에 덧붙이고, 또는 새로운 돋보이는 브랜드 명칭을 만들기도 하고 있다.


이제는 자크 데리다의 파레르곤 개념과 같이 아파트에 붙여지는 브랜드와 앞 뒤 수식어 또는 새로운 차별화를 위한 이름은 아파트 에르곤의 보조적인 기능을 하는 액자라기 보다 본질에 상당히 영향을 주고 있는 것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파트 분양상품을 공급하는 공급자인 건설사 입장에서는 1차적으로 분양상품의 이미지와 특징을 한단어로 표현하려는 마케팅적인 의도가 주요한 의미이겠지만 입주 이후의 주민에게 있어서는 그 이름 자체가 아이덴티티가 될 수 있고 자부심이 될수도 있다. 이렇듯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에게 아파트 이름은  의미를 갖는다.

또한 공급자, 수요자 두 주체 말고도 그 지역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돋보일만한 소위 랜드마크 단지로 지어진 아파트는 잘 지어진 이름과 함께 더 빛이 나는것 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지역 부동산 시장을 견인하는 대장주 역할과 나아가서 낙후된 지역을 더 좋아 보이게 하는 효과까지 있다.


서울 지역 최근 5년간 입주 아파트(주요건설사)


위의 표와 같이 6개 주요 건설사 최근 입주 90개 단지를 조사해 보았다. 2018년 이후 5년간 입주한 단지들인데 5년의 흐름에서도 대세적 흐름인 트렌드가 분명히 있어 보인다.


건설사별 특징도 보이고 재건축/재개발 등 조합이 추진하는 경우와 건설사나 시행사가 주도하는 경우에 따른 차이도 있고 강남권과 외곽 지역과 등 지역 차이도 보인다.


첫번째 특징적 트렌드는 프리미엄 브랜드이다.


래미안과 자이를 제외하고는 힐스테이트-디에이치, e편한세상-아크로, 푸르지오-써밋, 롯데캐슬-르웰과 같이 기본 브렌드 외에 프리미엄 브랜드를 만드는 점이다. 국내외 자동차사의 프리미엄 브랜드와 비슷한 느낌이다. 주로 강남권 재건축 단지 등의 이름에서 많이 나온다. 기존 브렌드도 계속 사용하고 있으므로 기존 브랜드의 상대적 평가절하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강남권 입지이든 비싼 분양가이든 기존 단지와 차별화 해야 하는 전략적 선택으로 생각된다.


두번째는 브랜드와 지역명의 조합이다.

 

'래미안 신반포리오센트', '개포자이 프리지던스', 'e편한세상광진그랜프파크' 등과 같이 지역이름과 특징을 나타내는 외래어의 조합이다. 여러 설명 없이 이름만으로 어디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 알수 있게 하는 경우이다. 첫번째 특징과 비교할 때 한마디로 특징을 설명해 주니 덜 파레르곤적인것 같기도 하다. 외래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는 하지만 ...


세번째 특징은 브렌드(또는 프리미엄브랜드)와 지역힌트 없는 외래어 조합이다.


'래미안라클래시', '아크로리버뷰'.'디에이치 아너힐스' 등이 그렇다.  주로 분양가가 비싼 강남권 단지에서 많이 나타난다. 뜻과 지역을 알수는 없지만 왠지 이름만으로 더 설명하지 않아도 자체로 프리미엄의 느낌을 주려한것 같다.


글의 처음 동기에서는 좀 벗어나지만 좀더 샘플을 늘리고 유형화하여 입주이후의 변화 등을 분석을 해보면 재미있는 분석 결과들이 많이 나올 것 같다. 물론 입주후 변화를 거래량과 가격 변화 외에 측정할 만한 것이 별로 없어서 집값으로 귀결되는 재미 없는 일일 수도 있겠다.

반대로 그런 이유로 주거시설 혹은 주거 가치에 대한 에르곤=본질에 대한 연구를 더 해봐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도  된다. 

아파트 단지 네이밍은  파레르곤이라는 시각에서 출발했지만 마케팅에 있어서는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는 존재인것 같다. 


이 네이밍의 트렌드는 앞으로 계속 변화해 갈 것이다. 주거의 에르곤은 아니지만 앞으로 네이밍 트렌드가 어떤 흐름으로 변천하게 될지를 보면서 공급자 관점에서의 상품 트렌드와 수요자 관점에서의 주거문화의 트렌드를 같이 볼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러한 트렌드 연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주택시장 돌아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