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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choice Aug 15. 2023

저는 왜 방황하고 흔들릴까요

무언가 달라지기를 원하는 마음

여러분은 '방황'이라는 단어의 뜻을 눈으로 읽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걸 보고서야 제가 신나게 방황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엔 그저 지쳐서 힘들고, 번아웃이 왔다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봐요.


방황이란 헤맬 방 彷, 헤맬 황 徨 자를 써서 '이리저리 헤매어 돌아다님', '분명한 방향이나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헤매고, 또 헤매는 상태를 의미하는 거죠. 최근 몸도 마음도 한 곳에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저를 정확히 설명해주는 말입니다. 




'방황'이라는 제 상태를 어렴풋이 인지하게 된 건, 최근 지인분께 일일 서핑 강습을 받으면서였습니다. 지난 1년간 쌓아온 비루한 서핑 실력을 점검하고 고칠 점을 찾아내기 위함이었는데요. '애정을 담은 스파르타 훈련한다 생각하시고, 세게 말씀하셔도 괜찮아요'라는 저의 요청에 '정신 안 차려? 지금 그게 파도하고 보드가 수직 방향이 맞아? 머리는 뒀다 뭐 해? 생각이라는 걸 하면서 타라고!'라는 따뜻한 가르침으로 답해주셨습니다. 


조류가 심한 날 보드 방향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건 저의 고질적인 문제이긴 했는데, 그런 지적보다도 가슴에 확 와 닿은 것은 '머리는 뒀다 뭐 해? 생각이라는 걸 하면서 타라'는 말이었습니다. 확실히 저는 요즘 생각이라는 걸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았거든요. 어떤 결정이 괜찮은지 아닌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가 명확하게 보이질 않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넌 이게 좋아, 싫어? 어떻게 하고 싶은거야?'라고 스스로 물어봐도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입니다. 누군가 빨리 대답 좀 하라고 다그치면 오히려 입을 꾹 닫고 눈물만 뚝뚝 흘리게 된달까요. 이런 마음에도 분명히 이유가 있을텐데, 조용히 흔들리고만 있는 제가 답답합니다. 




그러다가 이종범 만화가의 에세이 <그래, 잠시만 도망가자>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슬럼프는 그저 지친 상태가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이유를 잃어버린 것'이라고요. 어떠한 일을 하는 이유가 그 일의 유통기한을 정해주기 때문이라나요. 


이종범 만화가는 '이유'라는 유통기한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만화를 좋아하는 고등학생들에게 지나가던 선생님이 '너희는 도대체 만화를 왜 그리니?'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어떤 학생들은 '재미있어서요!'라고 대답합니다. 만화를 그리는 이유로 '재미'를 장착하는거죠. 그러나 이 학생들은 마감이라는 재미없는 현실을 만나면 만화를 그만두게 됩니다. 만화를 그리는 것 = 재미있다라는 이유가 흐려지기 때문이죠. 이종범 만화가는 오히려 '돈 때문에 만화를 그린다'고 말하던 동료 작가가 더욱 오래 만화를 그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재미가 있든 없든, 만화를 그리게 되면 원고료는 꾸준히 들어오기 때문이죠. 그러나 원고료가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등의 사유로 '돈 때문에'라는 이유도 결국은 유통기한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처럼 어떤 일을 하는 이유가 다양한 것도, 이런 이유들의 유통기한이 만료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살다보면 좋아서 시작했지만 싫어지는 일도 있고, 장기적으로는 계속하고 싶지만 지금 당장은 하기 싫어지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 자체보다는, 여러 이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흔들리는 내 마음이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거죠. 


이종범 만화가는 그런 방황하는 마음이 들 때야말로 '왜'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하는 타이밍이라고 말합니다. 그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나에게 의미있었던 이유가 이제 유통기한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라고요. 그리고 '지금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해 봐야 하는 때라고요. 언젠가 방황을 하게 되는 이유는 '당신이 무언가 지금과는 달라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문장을 보았습니다. 아마 이종범 만화가와 비슷한 메시지를 전하려던 게 아닐까요. 


방황하는 마음이 든다는 건, 나 스스로가 과거의 나와는 무언가 다른 모습을 향해 나아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하는 일에 대한 새로운 이유를 찾아야 하는 타이밍이라는 뜻이다, 라는 메시지요.




어쩌면 저를 방황케 했던 수많은 마음들이 '넌 예전과는 달라졌어. 처음에 찾아뒀던 이유는 이제 유통기한이 끝났어.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고, 그 일을 계속해야 하는 새로운 이유가 있는지 찾아봐'라고 말하려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토록 좋아하던 서핑을 하면서도 공허함이 느껴졌던 순간, 재미있다고 생각했지만 계속 이어지지는 못했던 순간들에 대해서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과연 무엇 때문에 이걸 계속하고 싶나? 또는 이제 계속 하고 싶지 않아졌나? 왜 그럴까? 라는 질문을 조금씩 던져 봅니다. 그 질문들에 조금씩 답해나가다 보면, 이 방황도 끝이 나리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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