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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엠지MZ대리 Oct 21. 2023

선 지우기

영성일기



처음엔 나의 교만을 다루시려는 줄 알았다. 여기서 말하는 교만이란 건, 나의 능력으로 원하는 결과를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나의 능력으로'만' 원하는 결과를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스스로에게 무리를 준다. 얻을 수 있는 것들의 주체자가 '나' 자신이라고 믿기 때문에 반대로 '나'의 게으름이나 부재로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삶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는 주인의식이나 책임의식과는 다르다. 내가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반대로 권한이나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수 없다는 불신의 반증이며, 다른 사람이 기꺼이 나를 도울 수 있다는 믿음의 결여를 뜻한다. 그래서 처음엔 교만을 다루시려는 줄 알았다. 나 혼자 모든 것을 떠맡고 다 하려는 교만을 내려놓고 기꺼이 기댈 줄 알고 도움을 청하며 협력할 줄 아는 자세를 배양시키려는 줄 알았다. 이는 맞기도 하지만 큰 틀에서는 틀렸다.



사실은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는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하는 나의 욕구를 다루시는 중이었다. 여러 직장을 다녔고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항상 '일잘러'로 인정을 받아왔던 나는 일 못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업무에 대한 몰입도와 책임감이 있다면 결코 일을 못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전직한 직장에서 초기 수개월 동안 사소하고 큰 실수를 끊임없이 저지르는 나를 보며, 처음엔 '그럴 수 있지'라고 다독이던 마음이 '이번에도 또?'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갉아 먹었고 종국에 가서는 '그래. 일 못하는 사람이면 뭐 어때'하며 자포자기까지 하기에 이르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동안 직장생활 중에 만났던 일 못하는(정확히는 일을 못한다고 여겼던) 사람들이 떠오르며 죄책감이 들었다. 일 못하는 사람들을 나도 모르게 '나쁘다'라는 범주에 집어넣고 구분 했는데, 본인의 의도와 상관 없이 정말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못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인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제는 Q가 대화 중에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을 통틀어서 너만큼 열심히 산 사람은 없어." 그 말을 듣고 나는 조금 울컥했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는 반대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20대 때는, 그 말이 맞을 지도 몰랐다. 그땐 정말 열심히 살았다. 새벽 4시에 하루를 시작했고 자정에 하루가 끝났다. 깨어있는 20시간 동안 자격증을 공부했고, 일했고, 학원에 다녔고, 책을 읽었다. 직장이나 학원 근처 가까이 살 수 있는 집이 없었고, 체력을 보전해줄 자가용도 없었다. 나는 매일매일 무거운 책과 노트북을 들고 수십키로를 두 다리로 오가며 일하고 공부했다. 젊음과 건강이라는 담보를 이용해 매일 나의 에너지를 바닥까지 끌어썼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이룬 것이 있었지만 반면 번아웃이 크게 왔다. 서른을 기점으로 나의 체질은 완전히 변했다. 나는 쉽게 아팠고 금방 지쳤다. 이로 인해 건강을 더 잘 살피게 되었고, 식품위생학과 체력단련 등 다른 부분에서 지혜가 더해졌지만 아무튼 나는 몸을 사리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무언가 시작하고자 할때, 덜컥 겁이  났다. 적당히 타협해서 결과를 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마지막까지 온 에너지를 동원해서 원하는 바를 성취했기에 그 중간에서 적당히 가는 방법을 몰랐다. 무엇보다도 그런 식으로 '적당히' 해서는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없다고 믿었다. 이는 사실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나는 뭔가를 이루고자 할 때 치뤄야할 대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매력적으로 보이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하게 되었다. 대가가 두려워서. 속으로 애써 외면하던 마음이었는데, 압력이 꽉 차 있던 솥뚜껑의 뚜껑이 열리듯 Q의 한마디에 눌러져 있던 감정이 올라왔다.



Q가 덧붙였다. "어쩌면 네가 그동안 한심하다고 여겼던, 직장생활에서 적당히 안주하고 지내는 듯 보이는 기성세대들도 젊은 시절엔 열심히 살아봤던 사람들 아닐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속에 천둥이 일었다. 일 못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맥락으로 나는 회사에서 안주하는 선배들을 혐오했다. 자신을 고용해주고 월급을 준 회사에 감사함 따위는 잊고 어떻게든 시간을 축내고 업무 태도는 태만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 모두가 아닐 수는 있어도 어쩌면, 아주 어쩌면, 그들도 한때는 잘 해보려 했던 사람들일 수 있었다. 어느 쪽이든 나에게 그들을 평가하고 딱지를 붙일 권리는 없었다. 그렇게 사람을 구분지었던 또 다른 선이 사라졌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사랑하지도 않았다. 내 상식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거기서 어긋나면 '나쁘다' '부족하다' '잘못했다' 라는 딱지를 붙여 구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토록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나는 다른 사람에게 무척이나 인정받고 싶어했다. 약간의 인정으론 부족했다. 나를 조금도 미워하지 않길 바랐다. 나를 원하길 바랐고 나에게 감탄하길 바랐다. 이 생각이 얼마나 교만한지 생각해보지도 못할 정도로 나의 관점에서만 살았다.



나의 관점에서 임의로 긋고 구분지었던 선들이 하나씩 하나씩 지워져갔다. 그리고 서서히 깨닫게 된다. 이 길고 긴 광야의 의미를. 나는 선을 지우는 중이었다. 나이와 성별을 넘어 성향에 따른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는 훈련을 하는 중이었다. 몇달 전 기도 중에 나를 축복의 통로로 쓰시겠다는 메시지가 와닿아서 기쁨과 동시에 화들짝 놀랐던 적이 있다. 축복의 통로라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과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나는 '특정한' 사람, 그러니까 내가 구분지은 선 안쪽에 들어온 사람에겐 한없이 다정할 수 있지만 그 밖을 넘어가는 사람은 인류애의 대상에서 삭제하기 때문이다. 이토록 냉혈한 내가 축복의 통로라니. 기쁘게 받아들이다가도 거부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이땅에 계획하실 때부터 한치의 오차도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기억해낸다면, 거부해도 내 사명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내 안에는 아직도 지워야 할 선이 수십 개는 되지만, 계속해서 지워나간다. 마침내 깨끗하고 완전하게 활짝 열린 축복의 '통로'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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