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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엠지MZ대리 Dec 26. 2023

럭셔리카를 포기하는 과정

자본주의 시대에 나의 욕구 일기 01



차량 구매에 엄청나게 혈안이 되어 있던 일주일을 보냈다. 적절(하다고 생각)한 타이밍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회에 테이블을 만들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감가 정도 파악을 위해 중고차 시세를 조사하고 딜러 마진과 버퍼금액을 알아보고 세금과 각종 비용을 따지고 1년 뒤 내 인생에 대한 계획과 그 이후의 계획까지 점철하느라 머리 아팠다. 그리고 결국, 차량을 구매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의미주의자인 N이어서 모든 일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단지 어떤 사건이 발생한 시점과 그 의미를 깨닫는 시점의 간극이 존재할 뿐이다. 차량 구매를 고민할 때는 그저 이 문제가 '구매하냐 하지 않냐'의 이분법적인 의사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적극적이고 치열한 고민 끝에 결국 결정을 내리고 뒤돌아 보니 이 과정은 나에게 여러 의미가 있었다.

첫째로 내가 차량 구매를 희망하고 충분히 매력적인 조건으로 이를 이행할 수 있는 환경임에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돈'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나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것이 미래에 대한 불안때문인지, 완전하게 저버리지 못한 과거에 대한 집착인지 알아보는 데에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했지만 어쨌든 나는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원래 알고 있었던 곤도마리에의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홀린듯 정리를, 정확히는 버리기를 시작했다. '지금보다 더 좋은 집으로 이사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지금 수준의 인프라를 갖춘 동네에 살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나를 짓눌렀는데, 사실 나는 밑바닥에서 시작한 사람이어서 그 지점을 모르지 않고 있다. 사실 조금 더 작은 집에 들어가면 어떠하고 인프라가 조금 부족한 곳에 살면 어떠한가? 어차피 고시원에서 시작한 인생 아닌가? 나는 이 불안감이 결국 내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집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버리기를 시작했고, 아직도 진행중이지만 대략 100리터 쓰레기봉투 5개 분량의 물건을 처분했다.



이 과정에서 깨닫게 된 몇가지가 있다. 나는 과거에 대한 집착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때문에 힘들어 했다는 것, 물건을 버리는 중에 변화된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 필요해서도 아니고 애정이 가서도 아니라 습관적으로 소유하는 물것도 있다는 것 등. 그리고 물건을 버리며 내가 곧 살게 될 것이고 희망하는 삶의 모양을 선명하게 상상해 보게 되었다.

​차량 구매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얻은 두 번째는 다소 막연하게 생각했던 1년 뒤, 2년 뒤 혹은 그 이후의 삶을 좀 더 용기있게 제대로 직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2년 동안의 백수와 박봉인 중고 신입사원 생활을 지나며 '자산을 늘리지 못한 2년' '잃어버린 2년'이라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나에 대한 투자였다'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라고 생각도 했지만, 사실 진정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손해 본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고통받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괴롭힌 건 내가 소유한 자산의 크기가 아니라 욕망이었다. 분명 밑천 하나 없이, 아니 마이너스에서 시작한 사회생활이지만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나는 만족하고 감사하기 보다는 내가 상승하며 만나게 된 주변 사람들을 좇아 '왜 나는 저 사람만큼 갖고 있지 못하지' 하는 생각을 계속해왔다. 그들을 부러워하는 포인트도 여러가지 였는데 노력해서 얻은 것에 대한 질투는 물론, 타고난 집안과 환경에 대한 질투는 더욱 높았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더 많은 부'는 어떤 상태도 만족하지 못할 목표다. 내가 원하는 건 '더욱 나답게 사는 것'이다. 가식도 허세도 거둬내어 담백하고 솔직하고 당당하며 우아하게 사는 것이다. 차량구매를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일부는 얻겠지만 일부는 잃게될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당당하고 (어쩌면) 우아하게 살 수 있겠지만 담백하고 솔직하게 사는 것을 잃을 것이다. 왜냐면 시기상조라고 느껴질 수준의 럭셔리카를 구매하게 될 테니까. 또한 이로인해 나는 가식과 허세를 얻게될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지만 아직 진정으로 내 수준이 아닌 것을 소유함으로써 흔히 말하는 '하차감' 같은 것을 느끼며 으스댈테니 말이다.



1년 뒤의 나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았다. 그때 나는 무엇을 원할까?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현재의 소득수준과 지출수준, 그리고 미래에 내가 원하는 소득과 지출 수준은 무엇일까?

숫자만 놓고 계산했을 땐 사실 '구매해도 괜찮다'라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숫자를 뛰어 넘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모양을 그렸을 때에는 '아직이다'라는 결론이 나왔다. 합리적인 선택 뒤에 '하지만...'이라는 감상적 변명이 따라 붙을 때마다 나는 꿈꾸는 미래의 모양을 떠올렸다.  



'아직이다' ​


나는 계속해서 더 가지고 싶고, 더 가지지 못해 불안해 했지만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걸음을 쌓아왔다. 그리고 여전히 걸음을 쌓고 있다. 8년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발생하는 보폭이 커졌다는 점이다. 때로는 멀리 가기 위해 뒤로 물러나야 할 때도 있었다. 나는 상승하기도 하고 하락하기도 했지만 거시적인 시계열 흐름에서 지속적으로 우상향했다.  또한 이 상승곡선은 마치 지수함수처럼 점점 가속이 붙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다시금 단단하게 믿게 되었다.








# 번외1

기회가 있어서 1억원에 달하는 럭셔리카를 4박 5일 동안 시승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이유는 내가 구매하고자 하는 바로 그 차, 구매하고 싶어 혈안이 되어 있는 바로 그 차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5일 후에, 돌이킬 수 없이 구매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어쩌지.

생각 외로 그러진 않았다. 5일 동안의 경험은 물론 신선하고 짜릿했지만, 사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가져다주진 않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5일 후 럭셔리카를 반납하고 작고 귀엽고 오래되고 낡은 나의 차를 다시 만났을 때다. 차에 탑승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속삭였다.

 "조금 만 더 함께하자. 늘 고마워."




# 번외2

고민하는 중에 나는 극ESTJ들에게 의지하고 싶은 충동을 강렬하게 느꼈다. 어떤 면에서는 조금 따끔한 이야기를 듣겠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시원한' 면이 있어서 무조건적인 계산보다는 욕망과 삶의 질의 크기도 가늠할 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주위에 가장 오래된 ESTJ 남동생에게 먼저 조언을 구했고, 고민 끝에 또 다른 극ESTJ인 전남친에게 조언을 구했다.

"나 혼날 각오하고 말하는거야."라고 운을 띄운 나는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돌아온 심플한 대답,

"결국 계산의 영역 아니에요?"  

맞다. 계산의 영역이었다. 내가 예상하는 투자비용과 10%정도의 리스크를 계산해서 결과는 나왔다. 수치적으로는 '구매해도 괜찮다'는 결론이 어느 정도 나온 찰나였다. 내가 원하는 건 조금 더 복합적인 판단이었다. 계산 결과가 어느 정도 나왔음에도 고민이 되는 이유를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았다. 그가 말했다.

"내가 본 너는 그 정도의 차, 혹은 그 이상의 차를 충분히 소유하게 될 사람이야. 단지 아직은 그 시기가 도래하지 않았을 뿐이지.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그의 입을 통해 이미 수십번 들었던 말이다. '너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지혜롭고 똑똑한 친구다' '원하는 것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헤어지고 나서 다시 들으니 마르고 무너진 지점토에 수분이 공급되고 굳어지듯 단단하게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무척 고마웠다.



# 번외3

엄마에게도 이러한 고민을 나눴는데, ESTJ들과는 확실히 다른 목적을 가지고 대화를 했던 것 같다. 엄마의 입술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몇년 전 엄마를 모시고 좋은 원피스를 사드리고 모녀가 함께 시밀러룩 원피스를 입고 삼성동에 갔던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내가 꿈꾸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순간 엄마가 느끼길 '우리 딸이 꿈꾸는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구나. 나와 멀어지고 있네. 우리 딸이 저 멀리 가버리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동시에 엄마가 젊은 시절 꿈꿨던 삶의 모습과 내 입술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비슷해서 놀라웠다고.

엄마의 말에 의하면 꿈은 비슷했지만 엄마와 나는 결정적으로 다른 포인트가 있었다. 엄마는 그 꿈을 좇다가 좌절되거나 장애물이 닥치면 '내가 그렇지 뭐'하는 생각에 쉽사리 포기를 했다면, 나는 울고 상처받고 넘어지더라도 결국 다시 일어나서 악착같이 내가 원하는 걸 쟁취해 나간다는 점이었다. 이것이 단지 욕심의 크기로 인한 차이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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