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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엠지MZ대리 Aug 22. 2024

#11 아기 호랑이 사건

24.03.25



D-3 가슴이 아프고 아랫배가 시큰하다. 달콤한 디저트를 몇입 먹으니 혓바닥이 지나치게 전율한다. 그리고 이내 확신한다. ‘곧 시작하겠네.’

D-day 아무 소식이 없지만 그다지 게의치 않는다. 실은 제법 바쁜 하루를 보내느라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D+3 전조증상이 사라졌다. 조금씩 신경쓰이긴 하지만 이 정도의 오차 범위는 늘 있었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언제 시작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불편할 뿐이다.



D+5 ‘충분히 늦을 수 있지’하고 생각했다. 지난 달에 프랑스 여행 다녀온다고 난생 처음 피임약을 복용해 고생했고, 45일까지 인터벌을 인위적으로 늘린 상태니까. 그런데 출근 준비를 하던 오빠가 갑자기 꿈 이야기를 한다.

“꿈에 새끼 호랑이가 나왔어.”

새끼 호랑이가 집안에 들어와 본인에게 달려들어 안기고 손가락을 물었다는 것이다.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오빠는 로또라도 사야겠다며 출근했지만 나는 사색이 된다. 이런 폭탄을 던져 놓고 나가면 어쩌자는 건데…!



거실에 던져진 폭탄을 들고 온갖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근심에 잠기다가 문득 오빠에게 달려들었다는 아기 호랑이를 상상했다. 이와중에 쓸데없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는 꿈에서 호랑이를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지만,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호랑이를 데려가려하자 이내 연민을 느꼈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전에 나도 비슷한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객관적으로 사랑스럽다고 느낄 수 없는 약간 다른 세상의 생명체 같은 아기를 품에 안았다. 아이의 눈동자는 블랙홀 같이 깊었고 동시에 보석처럼 영롱했다. 그 순간 생각했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럽지’ 꿈에서 사랑스럽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때는 내 삶에 어떤 일이 있었나? 기억나지 않는다.



D+7 오늘 아침에 Tinnesha와 통화했다. 튜터와 Free talk 은 문자그대로 ‘free자유’ 주제의 대화이기 때문에 대화하는 시점의 나의 주관심사가 주요 주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최대한 이 주제를 피해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주말에 엄마와 이케아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끝에 보니 결국 아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누가 시작했더라. 맞벌이 부부 육아의 어려움과 사회제도의 부족함, 그로 인한 출산율 저하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나저나 Tinnesha와 대화를 하다가 문득 몇 년 전 맞벌이 부부로 양가 도움 없이 육아를 하느라 시터 비용에 억 가까운 돈을 쓴 타부서 팀장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말했다.

“Her husband called her daughter a Benz, our Benz.”

(그분의 남편은 딸을 “아이구 우리 밴츠~” 하고 불렀대)


우리는 깔깔 거리며 웃었다. 지금 내가 웃을 상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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