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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ekly hoonyeon Jan 29. 2023

취향의 정원

prologue_현대의 정원의 바라보는 다른시선..

작년 10월 사람과나무에 입사하고 고작 4개월이 지났다. 퇴사와 동시에 당장이라도 독립할 것처럼 큰소리를 땅땅 치고 10년간 일했던 건축회사를 박차고 나온 뒤 다시 조경설계사무소에 입사한 나를 보며 의아한 주변 사람들은 기대 반 호기심 반 궁금해한다.


걔는 뭐 하고 있나?


이전처럼 주변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선 굵은 스케치도.. 지만 좋은 익살스러운 모형이나 설계도면.. 요란법석 소란 피우는 시공현장도 지금은 없다. 꿈꾸고 말만 하면 마법처럼 만들어주던 열정적인 팀원들도.. 이 겨울에 가만히 시계만 보며 따뜻한 사무실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있어도 그럴듯한 프로젝트를 배급해 주던 허우대 큰 회사의 건축가들도 사라졌다.


나는 내가 주제넘게 누리고 있었던 안락함과 무료함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언젠가부터 이렇게 더 지체하다가는 그냥 이대로.. 여기까지 일 것 같다는 조급한 생각이 들어버렸고 이제 모두 어엿한 조경가로 성장한 팀원들을 보며 더 이상 그들에게 잔소리만 일삼는 ‘오비완 캐노비’는 필요 없어 보이기도 했다.


대신 불안하지만 유혹적이고 서툴지만 재미있으며 무엇보다 이전처럼 나와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다시금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해볼 수 있는 조직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선택했다. 조금 달라진 건 지금은 예전보단 더 오래 책상에 앉아있고 혼자 멍 때리며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다는 것이다.


조경가가 꿈꾸는 기획팀


‘조경사무소 사람과나무’ 에 입사하자마자 나는 이 고전적인 조경설계시장에서 뜬금없이 조경 베이스의 새로운 공간/콘텐츠 기획팀을 브랜딩 하겠다고 호기 있게 선언했고, 조경가가 주축이 되는 기획팀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즉흥적인 계획이 아닌 이미 수년간 고민해 온 내 바램이였다.


언제부턴가 설계자로 일하면서 우리가 건네주는 결과물은 클라이언트에게 결국 껍데기를 그려주는 반쪽짜리 답안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경가의 디자인이 세상을 위해 좀 더 가치 있게 쓰이고 응당 그 가치에 맞는 평가를 받기 위해선 우리 스스로 그어놓은 조경의 영역을 넘어선 프로젝트 전반에 걸친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파트너 영입


로얄앤컴퍼니 공간기획_화성, 논현

하지만 잘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같지 않다. 좋은 기획팀을 만들고 활동하기 위해선 제일 먼저 팀의 파트너로 함께 할 실력 있는 공간/콘텐츠 기획자가 필요했다. 나는 이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던 젊은 공간기획자를 삼고초려의 절실한 마음을 갖고 오랫동안 설득했고 결국 영입할 수 있었다. 그에게 조경설계사무소에 론칭할 기획팀이라는 이 난데없는 제안이 무척 당황스러웠을 테지만 나름의 가능성을 보았던 걸까..? 그의 영입은 내가 입사하고 이룬 가장 큰 업적이었다. 그의 대표작은 5년간 몸담았던 로얄앤컴퍼니의 공간기획이었고 이곳에서 그를 처음 만났었다.


팀 브랜딩


조경가와 공간기획자로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 실력을 인정받은 이 두 명의 디자이너는 기존에 ‘그린컴플렉스’에 갇혀있는 조경 시장의 영역을 확장시켜 소비자에게 최적화된 건축, 인테리어, 조경 등 하드웨어는 물론 브랜딩, 콘텐츠, 운영 등 그 공간을 채우는 소프트웨어까지 담은 하나의 온전한 가치를 전달하는 기획/ 디자이너 집단을 목표로 팀 브랜딩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nedrag의 시작


이미 도시계획, 건축, 인테리어를 비롯한 공간 디자인과 관련된 여러 분야의 회사들이 기존의 고전적인 설계회사에서 유니크한 기획회사로 진화하여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고, 우리는 축적된 조경분야의 경험이 부각될 수 있는 독창적인 브랜딩을 고민했다. 베베 꼬은 허울과 허세뿐인 브랜딩보단 팀의 이름만으로도 브랜드의 정체성과 추구하는 가치 방향을 알릴 수 있는 네이밍을 원했고 그렇게 태어난 브랜드가 ‘nedrag’이다.

‘nedrag’은 ‘garden’의 알파벳을 반전한 순서로 읽어낸 네이밍이며, 있는 그대로 정원 garden을 다른 방향,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네드렉이 뭐예요?


처음 마주한 사람들이 ‘네드렉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자연스럽게 ‘정원을 거꾸로 읽은 의미로 정원을 보는 다른 방향의 시선과 가치를 추구하는 팀입니다.’라고 쉽고 명료하게 팀의 정체성과 방향을 설명할 수 있는 브랜드인 것이다. 다른 방향의 시선이라는 건 안타깝게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극히 조경.. 정원이라는 것에 대한 편견적 사고를 전제로 한다.


21세기 현대의 정원


내가 알고 있는 상식에서 정원.. garden의 어원은 담으로 둘러싸인 enclose 공간을 의미한다. 각양각색의 식물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식물 중심이 아닌 처음부터 정원이란 단지 담으로 둘러싸인 사적인 공간을 더 중요시했다. 다만 초기 정원의 경우 그렇게 만들어진 사적 영역에 정원주의 취향에 따라 선별된 식물들을 심고 가꾸며 유희를 즐기던 유형이 많았을 뿐이다. 진정한 정원의 의미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다양하고 유연한 가치를 지닌 공간임을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추구하는 동경, 가치, 취향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끝없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적공간에서 취향의 공간으로


나는 현대의 정원이란 ‘이용자가 동경하는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소비하며 만족과 영감을 얻는 유희적 장소’ 라 정의하고 싶다. 에덴동산 같은 고전적인 형태의 정원에서 각자의 취향을 담은 전시회나 갤러리가 있는 문화공간은 물론 세련되게 꾸며진 카페나 레스토랑, 으리으리한 쇼핑몰에서 조그마한 소품샾들이 몰려있는 골목길까지 이 모두가 포괄적 의미에서의 인간의 취향을 소비하며 유희를 얻는 공간으로서 정원이라 여긴다.


이것이 ‘garden’ 이 아닌 ‘nedrag’이로써 바라보는 정원에 대한 다른 방향에서의 시각이며 앞으로 우리가 다뤄야 할 기획 분야이다.


이렇게 입사 후 내가 4개월 동안 이룬 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한 명의 좋은 파트너를 얻은 것.. 그리고 고작 명함 한 장뿐이다.


nedrag의 ‘취향의 정원’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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