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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판갑 Jan 18. 2023

오사카 여행 갔다 눌러앉게 된 계기

1화. 여름의 오사카 여행

아주 친한 친구와 오사카를 여행한 적이 있다. 당시 우리 나이는 23살. 가진 돈도 몇 푼 없고, 마음만으로 모든 게 되는 줄 알았던 시기였다. 때는 한창 더웠던 여름이었고, 급하게 정해진 일정 덕에, 우린 서둘러 가장 저렴한 항공권과 저렴하면서도 있어 보이는 숙소를 에어비앤비를 통해 얻었다.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는 나는, 숙소 예약을 하고 나서 주소에 나와있던 위치를 검색하게 되었다. 오사카시 니시나리구. 검색 포털의 소문에 의하면 니시나리는 야쿠자들의 성지, 살인과 같은 흉악범죄가 빈번히 일어나는 곳이라고 한다. 노숙자들도 많고, 미국에서 흔히 말하는 스케치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손발이 벌벌 떨리기 시작한다. 여행을 시작하려면 아직 몇 주 남았는데 벌써 취소하고 싶어 진다. 소문을 친구에게 얘기하니 별 걱정을 다 한다고 핀잔을 준다. 어쩔 수 없이 남자답게 가보기로 했다.

지금은 사라진 연남동 핵스테이크

아주 이른 시간 인천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라, 당시 연남동에서 유행하던 핵스테이크를 먹고, 공항 노숙이라는 청춘 짓거리를 하러 공항으로 향했다. 어찌어찌 양치도 하고 자리를 잡은 뒤, 불편하게 연결된 공항 벤치에서 선잠을 이어갔다. 잠들었다 깨어났다를 반복하다 보니 일출시간이 되었고, 이윽고 우린 간사이 공항을 향하는 피치 항공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서 맞이한 아침

그 당시만 해도 오사카를 두 번, 후쿠오카를 한 번 여행한 경험이 있어 엄청난 설렘이 있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가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약간의 기념비적인 여행이긴 하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는 형님들과,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그리고 스무 살이 된 기념으로 친구들과 일본을 다녀왔다.

입국 심사장을 나와 제1터미널 전철 티켓 발권하러 가는 길

간사이 공항에 착륙을 하고, 입국 수속을 하는 동안에도 실감 나질 않는다. 입국 심사장을 나와서도 흔한 편의점들이 있고, 아직은 여행온 기분이 들지 않는다. 건물밖을 나가 돌아다니는 버스의 주행 방향이 이상하다고 느낄 때 즈음, 지하철 티켓을 뽑고 일본어로 가득한 지하철 시간표와, 깔끔한 네이비색 정장과 모자를 쓴 아저씨들이 부지런한 손짓으로 안내하는 모습을 보면, 비로소 일본에 왔구나를 느낀다.

간사이 공항에서 신이마미야역으로 가는 전철

우리의 숙소가 있는 목적지는 신이마미야 역. 금액은 정확히 기억나질 않지만 한화 2천 원이 넘어가는 금액을 편도로 발급받았다. 앞서 말했지만, 괜한 걱정을 많이 하는 나는 아직도 니시나리라는 동네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숙소로 가는 길에 칼 맞으면 어쩌지, 노숙자들한테 돈 뺏기면 어쩌지. 남자다움을 강요받는 경상도 남자들에게, 일본 야쿠자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신이마미야 역에 도착해 개찰구를 찍고 나왔다. 서울보다 경도가 한참 낮은 오사카의 더위는 매서웠다.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체크인 시간을 기다릴 겸 역 주변 신세카이로 이동을 한 뒤 식사를 하기로 했다. 역 밖의 니시나리는 생각보다 조용하고 한적했다. 노숙자들이 몇 보이긴 했지만, 그들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천천히 움직이거나 그늘에 누워 더위를 식히고 있는 것 같았다. 괜한 걱정을 했다.

도부츠엔마에 역에서 신세카이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던 라멘집


신세카이는 덴노지 전망대 부근의 먹자골목이다. 말 그대로 신세계. 쿠시카츠와 여러 이자카야들, 덮밥 집들과 라멘집들이 줄 서 있다. 신세카이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쿠시카츠. 하지만 그 사실을 몰랐던 우리는 거리 초입의 허름한 라멘집에서 첫 끼니를 해결하게 된다.


일본의 음식점들은, 오사카 한정, 흡연자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다. 그다지 인상 깊지 않은 돈코츠 라멘을 여유롭게 섭취한 뒤, 테이블에 놓여있는 재떨이를 발견하고선 바로 담뱃불을 붙인다. 2014년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나는, 앉은자리, 실내에서 피우는 담배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게스트 하우스 앞

실내 흡연 덕에 훌륭한 식사를 한 우리는, 체크인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패기 있게 지도를 탐색하며 숙소로 향했다. 다가올 역변의 시기를 감지하지 못한 채.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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