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화 리뷰: <한나와 그 자매들> (1986)

전에 적어둔 짧은 후기글의 발행

by 필르밍

한나와 그 자매들

Hannah and Her Sisters

감독/각본: 우디 앨런

장르: 드라마, 코미디, 로맨스

아카데미 각본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수상


줄거리: 중년의 세 자매, 첫째-한나(미아 패로), 둘째 - 홀리 (다이안 위스트), 셋째 - 리 (바바라 허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로의 과거와 현재의 애인이 엇갈리고 뒤섞이는 이야기이다.






우디 앨런 특유의 재치와 선을 부드럽게 넘는 그 기교가 새삼 인상적이었다. 어떠한 계기로 캐릭터들이 생생하게 부유하다 엔딩쯤 다시 발을 디디는 그 존재의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또한 우디 앨런의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애정이 느껴지는 가을의 뉴욕 풍경이 좋았다.


영화는 한나의 남편인 엘리엇이 처제인 리를 훑으며 속으로 갈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보통 같으면 벌써 별로였겠지만 우디앨런인 만큼 이 정도는 뭐 아무렇지도 않다.


사람의 추한 민낯을 추하지 않게 담아내는 건 이 감독의 특기지만 한편으로 거슬리는 건, 누가 봐도 그 추한 감정은 본인 안에서 꺼내온 것일테기 때문이다. 자신의 도덕적이지 않은 면을 사랑스럽게 담아낸다는 것은 조금 거슬린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런 솔직함은 자신에게서 꺼내올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저 우디 앨런처럼 당당하고 한결같은 작가가 별로 없을 뿐이다. 자주 연기에도 참여하는 이 양반을 보면 정말 자기애가 대단한 것 같다. 그런 것 또한 밉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다.


나는 보면서 바람에 대한 결과, 즉 '탄로'가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바람의 탄로는 파탄으로 이어진다. 대다수의 이런 이야기에서 캐릭터는 행동의 댓가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한 순간의 일탈로 잘 마무리된다. 우디앨런 영화의 이야기는 하나의 촘촘하고 통합적인 내러티브여야 한다는 관습에서 많이 벗어난다. 그냥 자유롭게 캐릭터들이 존재하다가 끝나고 해피엔딩이 많다. 그런데 나는 이조차 좋은 것 같다. 참으로 낭만적인 감독인 것 같다.


제일 좋았던 캐릭터는 아무래도 미키였다. 건강염려증에 허무까지 너무나 공감되고 매력있는 캐릭터였다. 애초에 미키가 그런 캐릭터니까 우디앨런분이 그 역을 맡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니면 애초에 자신이 연기할 캐릭터라고 인지하고 이렇게 귀엽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나약하고 악한 모습을 얘기하면서도 밉지 않은 캐릭터들을 매번 만들어내는 지 신기하다.


캐릭터들의 대사 하나하나 너무 생생하다.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중에 누구 하나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는 없다. 모두 실제로 살고 있는 와중에 잠시 포착한 듯한 그런 인간으로서의 완전함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좋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