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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유발 하라리의 신작
≪넥서스≫

정보 네트워크로 이해하는 오늘날 문명의 현주소

by 필르밍
XL

넥서스

저자: 유발 하라리

출판사: 김영사


별점: ★★★ (4/5)

난이도: ★★★ (3/5)


한줄평: 유발 하라리 특유의 독특한 관찰력과 통찰력이 빛나는 현시대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관점을 제시하는 책


읽은 시기: 2025/02/05


이 후기는 꼭 책을 읽은 후 읽는 것을 권장한다.

이미 집에 책이 포화상태라 책 구매에 무척 신중한 타입인데도 이 책은 소장가치가 분명하며, 두고두고 읽을 예정이다.



목차

1. 책의 논점

2. 특히 좋았던 부분과 다짐

3. 유발 하라리의 특유의 스타일

4. 마치며



1. 책의 논점


"힘은 지혜가 아니며, 정보는 진실이 아니다."


이 책은 인류 문명의 역사가 어떻게 곧 정보 네트워크 구축의 과정이자 산물인지 설명한다. 늘 인류 사회는 정보를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결집했고, 그렇게 가공할만한 발전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이 대규모 협력 네트워크는 양면적이라, 인간은 이를 통해 막대한 힘을 얻지만, 네트워크의 구축과 작동의 그 방식 때문에 힘을 지혜롭게 쓰기 어렵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어떻게 '인류의 문명 이룩'과 '정보의 네트워크 구축'이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인간은 정보를 이어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별개의 것들을 하나로 묶어 연인이든 제국이든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신화와 허구(혹은 상호주관적 현실. 법, 신, 국가, 기업, 화폐 등)를 통해 어떻게 인간이 문명을 이룩했는지는 ≪사피엔스≫에서 자세히 읽을 수 있다. 인류는 같은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믿는 사람들과 관계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다. 인간은 협력을 위해 서로를 개인적으로 알지 않아도, 동일한 이야기(인류의 첫 번째 정보 기술)를 알고 있으면 된다. 정보는 많은 사람들이 무제한으로 접속할 수 있는 중앙 연결 장치처럼 작동한다. 이렇게 인류는 태초의 무리 사회에서 시작해, 점차 무리를 확장하고 협업의 규모를 키워 놀라운 업적을 이루어왔다.


그렇다면 정보 네트워크에는 어떤 부작용이 있는 것일까?

인간 사회는 정보의 네트워크로 구성된다. 정보는 문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이제는 그 수준을 넘어 새로운 척도, 가치, 통화가 되려고 한다. 하지만 과연 정보는 완전무결한가? 아니다. 정보는 설령 허위가 없더라도 항상 불완전한 현실의 일부에 불과하며, 그 자체로 허위가 가득할 때도 많다. 그리고 AI는 인간이 처음으로 발명한 '도구'가 아닌 '행위자'이다. 그렇기에 불완전한 '정보'만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심지어 인류사회의 핵심인 그 정보를 주무룰 수 있는 AI가 세상에 가져올 수 있는 위협의 잠재력은 엄청나다.


분명 AI 기술 발전을 멈추거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AI 전쟁은 곧 패권 전쟁이며, 이 기술은 인류의 한계를 뛰어넘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우리는 이 기술에 대해 신중을 기하고 만발의 준비를 해야 마땅하다.


이 책은 인류가 세계를 구축해 온 과정과 그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통해 인간과 인간 집단의 본질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렇게 인류가 구축한 세계를 휩쓸지도 모를 AI라는 거대한 해일에 대한 진지한 경고를 전한다.


2. 특히 좋았던 부분과 다짐


특히 좋았던 부분: 이 책은 넓고 깊은 지식과 통찰로 거시적인 관점을 심어준다.

이 글의 1번 내용은 그저 핵심 주제를 설명했을 뿐이다. 이 책이 커버하는 주제가 참으로 넓다. 이 600쪽이 채 안 되는 책에는 수많은 역사적 지식과, 현 사회에 대한 통찰이 가득 차있다. 관료제의 역사, 성경의 기원, (한국과도 일맥상통한) 현시대 정치의 영문, 다양한 역사적/현대적 사건 등이 담겨있다.


주변에서 "SNS가 세상을 망쳤다", "현재 사회는 HELL이다" 등의 말이 자주 들린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의 그런 감상이 객관적인 것인지, 왜 그런 것인지, 관련된 책을 읽어도 시원하게 납득되지 않았다. 그저 스스로를 계속하여 타인과 비교할 뿐의 문제라고? 자아가 비대해져서 그렇다고? 현재 사회를 이해해 보고자 읽어온 (많진 않은) 여러 책들 중에서는 이게 단연코 제일 설득력 있는 종합적인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클라식한 유발 하라리다.


다짐: 21세기를 버텨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인간의 능력은 유연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유연성, 오래된 신화에 의문을 제기하려는 의지, 강력한 자정 장치는 (사회적/개인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한다. 개인으로서 유연성과 의문을 제기하려는 의지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의문을 제기하려면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또한 세상이 바뀌려면 개인적인 차원의 신념과 실천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진실을 추구하는 사회를 지키기 위해 일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를 고민하며, 동시에 내 신념과 내 진실을 의심하고, 나의 '이상'이 추구하는 것과 필연적으로 놓치는 것들을 인지하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늘 다짐하는 것이지만, 그 어떤 방식으로도 포착할 수 없는 세상의 입체성을 늘 유념하고, 또 의식해야 한다.


3. 유발 하라리의 특유의 스타일


이 책이 정보와 역사의 나열에 불과하고, 통찰이 부족하며 지루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들의 의견을 이해할 수는 있다. 이 책을 얼핏 보면 그저 정보의 큐레이션처럼 보일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책들도 의미는 있고, 서점의 인문학 베스트셀러 대다수가 그런 책들이다. 개인적으로는 별로지만.) ≪사피언스≫를 비롯한 유발 하라리의 다른 책들도 비슷한 스타일로 전개된다. 그러나 이 책 안의 큐레이션은 기존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이다. 내가 유발 하라리에게 경외심을 느끼는 것은, 기존 정보를 본인만의 방식으로 엮어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내는데, 그 관점이 아우르는 범위가 인류사적으로 광대하다는 것이다. 제시하는 관점의 타당성과 별개로 그 폭이 참 대단하다. 그리고 결국 관점이 곧 통찰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대중을 위한 저서임을 감안할 때, 유발 하라리 특유의 스타일이 독자의 취향에 따라 이 책의 메시지의 전달력을 강화할 수도,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는 유발 하라리가 이 책을 통해 진심 어린 경고를 던지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과연 유발 하라리가 이렇게 성의 있게 던진 경고가 어디까지 가닿을 수 있을지, 이 AI라는 파도에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민주주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구조를 면밀히 조사할 수 있는 전문가뿐만 아니라, 그것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는 예술가도 필요하다고 한다. 과연 누가 '대중적인 예술'로 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민주주의를 구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4. 마치며


≪넥서스≫에서 저자는 인류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짓는다고 강조하며, 노력하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이 정의를 향해 자동으로 휘어진다는 믿음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나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결국 인간은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나 포함 예외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믿고 싶다. 결국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더더욱, 인간의 가치는 추구하고 목표하는 바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에 대한 갈망, 죽음에 대한 두려움, 향상심, 윤리 의식과 공감 능력 등이 인간집단을 정보 네트워크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협력하게 만들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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