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르밍 Mar 01. 2023

영화 리뷰: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1991)

곱씹을수록 여운이 짙어지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감상문, 후기

스포주의


목차:   1. 시대적 배경   2. 미장센   3. 엔딩과 리뷰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牯嶺街少年殺人事件

감독: 에드워드 양

각본: 양션큉, 뢰명당, 에드워드 양, 안홍야

장르: 드라마


줄거리: 14살 소년 '샤오쓰'(장첸)는 국어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중학교 주간부에서 야간부로 반을 옮기게 되고 ‘소공원’ 파와 어울려 다닌다. 그러던 중 샤오쓰는 양호실에서 '밍'(양정이)이라는 이름의 소녀를 만나게 된다. 소녀는 소공원파의 보스 허니의 여자로 허니는 샤오밍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조직인 ‘217’ 파의 보스를 죽이고 은둔 중이다. 보스의 부재로 통제력을 상실한 소공원 파는 보스 자리를 두고 혼란에 빠지고 돌연 허니가 돌아오게 되면서 소공원파 내부와 217파간의 대립이 격해진다. 그리고 밍을 사랑하게 된 샤오쓰도 이들의 싸움에 휘말리게 되는데… (출처-왓챠)




 4시간에 이르는 러닝타임, 느린 페이스. 시작하는 것도 끝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의 주의 지속 시간은 현대인스럽게 짧다. 그런데 약간의 지루함을 수용한 후 대단한 경험을 얻게 되었다. 이 수작은 무려 4시간간 높은 완성도로 지속되기에 그만큼 감명이 깊고 여운이 짙었다.


마틴 스코세이지, 세계영화재단, 크라이테리온 컬렉션 산하 야누스 필름의 복원 전까지는 몇몇의 질 나쁜 VHS 등이 전부로, 구하기 힘든 영화였다고 한다. 이러한 걸작이 세월 속에 묻힐 수도 있었다니 내가 다 아찔하다. 복원과정영상을 보면 오늘 이렇게 질 좋게 볼 수 있었던 게 감사해진다.




1. 시대적 배경


"1949년, 중국 공산당이 내전에서 승리하자 수백만 명의 중국인이 국민당 정부를 쫓아 대만으로 피난 온다. 부모 세대는 자식의 안녕을 바랐지만 그 시절 학생들은 불안한 미래로 인해 학생 갱단을 조직해 자신의 정체성을 과시하며 생존 의지를 키워나갔다." (영화 초반에 첨부된 배경 설명)


 이 영화에서 설정은 배경 이상의 역할을 한다. 1960년대 전후 대만에서 혼란스러운 사회와 불안한 가정 속에 방황하며 시대적 분위기의 영향을 고스란히 입는 어린 학생들의 이야기로, 마치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여, 한 이야기와 더불어 한 시대를 담아냈으며, 보고 있으면 그때로 빨려 들어가는 듯 하다.


 한 때 속해 있었으나 이제는 과거가 된 시간을 담아내는 것은 많은 예술가들의 염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에드워드 양은 아주 잘, 그때의 시간을 재현해 냈다.


 갱단을 조직해 자신의 정체성을 과시하며 "생존 의지를 키워나갔다"는 표현이 유독 뾰족하게 와닿는다. 그 당시의 아이들은 그렇게 생존했구나라는 생각에 슬퍼지고, 더 나은 삶을 위해 피난을 온 부모 세대와 그에 휘둘린 자식 세대의 모습이 두 세대의 좌절된 희망과 고통을 선명하게 비추어서 안타깝다.




2. 미장센


35mm 필름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영화가 보는 내내 일단 그저 아름답다. 감각적인 영상미만으로도 소장하고 싶어지는 작품이다. 노스탤지어가 묻어나는 그윽한 배경, 각 장면을 보며 그리게 되는 공간, 상상되는 그 분위기, 습도 등이 너무도 따스해 계속 비극의 공기를 담고 있는 것과 대비되게 슬픔을 그려낸다. 필름에서 주는 그 느낌은 아무리 훌륭한 후보정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목표하지 않는 걸 수도 있지만). 이제는 거의 중단된 필름 사용이 다시 활성화되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겠지.



영화 내내 빛과 그림자의 활용이 우아하게 치밀하다.

이 영화에서는 빛과 손전등 또한 미장센과 장치를 넘어서 하나의 캐릭터처럼 느껴진다.

많은 캐릭터들과 자잘한 사건들에 잠시 두루뭉실한 감이 들었지만 그 캐릭터들 사이에 미장센, 장치, 배경 또한 캐릭터로 섞어놓았던 모양이다. 초반에 습득해서 소중하게 지니고 다니던 손전등을 놓는 시점에 이 영화는 비극적인 전환을 맞이한다.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마주친 빛(밍)을 잃게 되는 샤오쓰의 감정을, 그 흐릿한 내면을 빛으로 뚜렷하게 담아낸 에드워드 양의 솜씨가 대단하다.



롱샷과 롱테이크가 위주인 영화라 담담해서 좋았고, 타자적인 느낌이 슬픔의 감정을 천천히 구축시킨 것 같다. 씬 하나하나 너무 이뻤다.



해당 영화에 대한 장첸의 인터뷰를 보는데 출연했던 영화 중에 유일하게 아무 부분도 바꾸고 싶지 않은 영화라고 한다. 4시간 중 바꾸고 싶은 1분이 없다니, 엄청난 찬사인데 인정이다. 에드워드 양은 무조건 각본을 고수하는 깐깐한 분이였다고 한다. 처음으로 본 에드워드 양 작품인데 이렇게 좋은 영화와 감독을 만나게 되어서 기쁘다.




3. 엔딩과 후기


 4시간에 달하는 영화지만 플롯은 단순하다. 소공원파와 217파의 대립, 허니의 등장 등은 다 부차적인 이야기에 불과하고 그저 밍과 샤오쓰의 관계만이 일차적인 스토리이다. 한참 소공원파와 217파가 대립하는 와중에도 은연 중에 진짜 이야기는 언제 시작하는 건지 답답하다. 밍과 샤오쓰의 이야기에서 확실한 발전은 엔딩에서야 비로소 일어난다. 바로 살인이다.



"내가 변하도록 도와주겠다는 거야?  너도 다른 애들처럼 나한테 감정을 바라고 잘해 준 거였어? 참 이기적이다, 네가 날 바꾸겠다고? 난 이 세상과 같아, 이 세상은 변할 수 없어" (찔리기 직전 밍의 대사)


 제목에서부터 안내되어 내내 기다리게 한 "살인"이 드디어 일어난다. 마지막 15분이 되어서야 앞선 3시간 35분의 조각이 맞춰지고, 맥락이 이어지고, 감정이 전환된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여운은 특히나 짙다. 차근차근 철저하게 쌓은 연결을 통해 살인이란 사건이 마음 깊숙히 감정을 꽂기 때문이다. 슬프지 않았던 앞선 3시간 35분도 다 가세해 곱씹을 수록 4시간짜리의 슬픔이 덮친다. 샤오쓰를 생각해도, 밍을 생각해도 슬프다.


 의지할 곳 없는 현실 중에서 만난 밍에게 많이 의지하고 기대한 바람에, 폭력이 만연한 시대적 분위기에 동요된 바람에, 어린 소년은 혼란스러운 칼을 밍에게 꽂는다. 착하고 올곧았던 샤오쓰의 그 행동에 놀라면서도, 그런 짓을 하기까지 내몰렸던 상황과, 그 심성을 비추어 보아 분명 평생을 시달릴 후회의 고통에 안타까워 살인자임에도 미워할 수 없고 연민하게 된다.


 그러나 제일 안타까운 건 밍이다. 마찬가지로 의지할 곳 없는 현실에 더불어, 엄마의 삶까지 책임져야 했던만큼 밍은 현실적인 도움을 제공해줄 사람을 찾아야 했다.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을 후순위로 둘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감정을 바라고는 밍을 이기적이라고 하는 남자들은 이기적인 사람일 뿐이다. 그렇게 단단하게 갑옷을 둘러싸고 생존하는 어린 밍이 생존하려고 해서 살해 당한 게 너무 비극적이라 생각할수록 비통하다.


샤오쓰에게 밍은 생존을 위한 선순위였고, 밍에게 선순위는 생존이었다. 미숙한 미성년자들이 어지러운 세상을 부유하며 땅에 발을 내리기 위해, 즉 살아남기 위해 취한 행동들이 엉켜 비극이 탄생했고,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나 가엾고 딱하다. 샤오쓰는 혼란과 격동의 시대의 화신이었고, 밍은 그런 시대의 희생양이었다. 물에 물감이 퍼지듯 번지는 비극이 참 씁쓸하다.


이 영화는 결국 소년과 소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둘만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그 둘의 이야기에서 개인, 가정, 사회가 엮이고 표현된다. 단순한 이야기지만 다차원적이고 포괄적인 영화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단번의 관람은 역부족이다. 폭력성, 힘의 논리, 사회 등 내포하는 메시지가 너무 많아 미처 다 쫓을 수가 없다...


별점: ★★★★★ (5/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