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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르밍 Mar 01. 2023

영화 리뷰: <워터 릴리스> (2007)

후기, 감상문

스포주의



워터릴리스 Naissance des Pieuvres

감독/각본: 셀린 시아마 (데뷔작)

장르: 로맨스, 드라마 (성장, 퀴어)

루이뒬리크상 수상


줄거리: 세 명의 사춘기 소녀, 친구인 마리와 앤 그리고 싱크로나이즈드 선수 플로리안을 두고 전개되는 이야기로 마리는 플로리안을 좋아하게 되어 그 마음을 이용당하면서도 다가가고 앤은 그런 플로리안을 좋아하는 프랑수아에 반해 모멸적인 관계를 허락한다. 그동안 서로의 사이가 어긋나지만 결국 마리와 앤의 감정은 둘 다 좌절되고 둘 다 한시의 욕망에 이끌린 방황을 접고 친구인 서로에게 돌아간다.




1. 제목

 워터릴리스의 프랑스 원제는 "문어의 탄생" (Naissance des Pieuvres)이다.

싱크로나이즈 댄서들의   모습이 문어처럼 보여서 지은 이름일 것이며,  모습이 제목인  시각적으로 제일 강력한 이미지이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배경이, 주제인 사춘기의 표면적 잔잔함  내면적 혼란이란 상징성을 표현하기 때문일텐데  그것을 워터릴리스,  수련으로 번역했을까? 찾아보니 뿌리가 못나지도 않고, 꽃말도 애매해 유일한 연관성은 물에 있다는 것뿐인  같은데 말이다.


아마 이쁜 이름으로 영화를 잘 팔려는 배급업자들의 숙고된 결정이었겠지만, 그로 인해 제목이 주는 주제의식이 조금 날아갔을뿐더러, 이 영화가 의도하는 내용보다 비주얼에 셀링포인트를 옮긴 것 같아 감독으로서 약간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쁘지 않은 단어로 구성된 <문어의 탄생>을 제목으로 지은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2. 주제

 여자의 관점에서 사춘기 여성을 사랑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일단 특별하다. 남성의 시선에서 담아낸 남자가 주체인 영화는 널렸지만, 여성의 경우는 15년가량 지난 오늘까지 흔하지 않다. 심지어 그 갈망의 표현이 꽤나 노골적이다. 남성 위주의 콘텐츠만 봐서일까, 두 여성의 미묘한 감정선이 특히 섬세하게 와닿았다. 



3. 전체적 감상문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셀린 시아마의 강단성이 인상적이다.  작품으로 필름메이커로서의 자질을 증명해야겠다는 부담이 보이지 않는 심플한 플롯이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님에도 자신이 특별하게 담을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고 그건 자만이 아니었다.  단조로움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었고, 플롯만 단조로웠을  나머지는 촘촘했다.


무엇보다 그 싱크로나이즈드 댄싱의 언더워터 샷만으로도 이 영화는 미학적 가치를 증명한 것 같다. 그 장면과 그런 배경이 아니었다면 아쉬울 수 있었을 것 같다.


 사랑에 눈을 뜨고 그 감정을 따른 것에 따르는 인과관계로 전개되는 단순한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흔하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원초적인 인간관계의 감정이기에 이런 이야기는 언제 어디서든 자리를 찾는다. 


 타고난 외모로 남자들의 관심을 받는 플로리안은, 주어진 것들을 거부하지 않은 대가가 눈덩이처럼 커진다. 채 성인이 되지 않은 소녀에게 제공된 선택지를 내치지 않았다고 매도하는 건 잔인한 일이다. 동성친구들은 그녀를 시기해서 친구가 되어 주지 않고, 플로리안은 그저 욕망에서 비롯된 남자의 손길을 더욱더 뿌리칠 수 없게 된다. 사실 그녀에게 무엇보다 필요했던 건 자신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여겨주는 사람, 즉 욕정에 휩싸인 남자가 아닌 그저 친구, 동성인 친구였을 것이다.


 그런 플로리안에게 반한 마리는 계속해서 얼쩡거리고 곧 친구가 된다. 사람을 믿지 않는 플로리안에게 마리는 그저 이용할 대상에 불과했지만, 지속되는 시간과 관심에 곧 마음을 열고 첫 관계를 부탁하게 된다. 그러나 부탁은 그저 친구로서였고, 결국 둘의 단기적인 인연이 플로리안이 살아온 방식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플로리안은 마리와 있기보다 남자와 있기를 택하고 둘의 관계는 더 진전하지 못하고 좌절된다.


 마리는 남자들과는 달랐다. 플로리안을 걱정했고 신경 썼다. 그러나 결국 '욕망'이라는 동기는 같지 않았을까? 그 욕망의 계기 또한 남자들과 다를 바 없는 플로리안의 육체적 매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사실 그게 인간의 본성이고, 그 본성의 각성과 자각의 시작이 사춘기다. 그러나 그게 본성이라는 걸 부정하고 싶고, 그 이상의 무언가를, 의미 있는 관계를 찾기에 실망할 수밖에 없는 게 그 시기의 성장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두 장면이 대조되며 영화가 끝난다.

내가 누구한테 연민을 느껴야 하는 건지 잠깐 헷갈렸다. 사랑을 놓친  마리와 앤이지만 둘은 서로가 있는 반면 플로리안은 혼자서 춤을 추고 있다. 플로리안이 안쓰러웠다. 결국 삶을 지탱해 주는  다름 아닌 일상과 인간적인 관계이다. 본성이란 본성이기에 답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연애적인 관계도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건 친구이기 마련이다.   


단순하게 사춘기의 본질을 잘 담아낸 영화였던 것 같다. 보면서 어느 부분은 레이디버드(2017)와 콜미바이유어네임(2017)이 떠오르기도 했으나 이 영화가 10년 먼저 나온 걸 생각하면 고민없이 좋은 영화였던 것 같다.



별점: ★★★☆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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