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씹을수록 여운이 짙어지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후기
목차: 1. 시대적 배경 2. 미장센 3. 엔딩과 리뷰
감독: 에드워드 양
각본: 양션큉, 뢰명당, 에드워드 양, 안홍야
장르: 드라마
줄거리: 14살 소년 '샤오쓰'(장첸)는 국어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중학교 주간부에서 야간부로 반을 옮기게 되고 ‘소공원’ 파와 어울려 다닌다. 그러던 중 샤오쓰는 양호실에서 '밍'(양정이)이라는 이름의 소녀를 만나게 된다. 소녀는 소공원파의 보스 허니의 여자로 허니는 샤오밍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조직인 ‘217’ 파의 보스를 죽이고 은둔 중이다. 보스의 부재로 통제력을 상실한 소공원 파는 보스 자리를 두고 혼란에 빠지고 돌연 허니가 돌아오게 되면서 소공원파 내부와 217파간의 대립이 격해진다. 그리고 밍을 사랑하게 된 샤오쓰도 이들의 싸움에 휘말리게 되는데… (출처-왓챠)
4시간에 이르는 러닝타임, 느린 페이스. 시작하는 것도 끝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의 주의 지속 시간은 현대인스럽게 짧다. 그렇지만 분명 느림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여운이 있다. 이 작품은 긴 러닝타임만큼 여운이 짙었다.
++ 나중에 친구과 얘기를 하는데, 에드워드 양 특유의 깊은 호흡으로 깊숙하고 날카롭게 메시지를 던지는 방식의 여운은 어쩔 수 없이 첫 관람에 가장 강렬한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영화 안 본 눈 삽니다...) 그와 얘기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꼽는 자신의 최애 에드워드 양 영화는 처음 본 에드워드 양의 영화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 영화는 마틴 스코세이지, 세계영화재단, 크라이테리온 컬렉션 산하 야누스 필름의 복원 전까지는 몇몇의 질 나쁜 VHS 등이 전부로, 구하기 힘든 영화였다고 한다. 하 진짜 복원에 힘써준 모든 분들 저의 절 받으세요....
"1949년, 중국 공산당이 내전에서 승리하자 수백만 명의 중국인이 국민당 정부를 쫓아 대만으로 피난 온다. 부모 세대는 자식의 안녕을 바랐지만 그 시절 학생들은 불안한 미래로 인해 학생 갱단을 조직해 자신의 정체성을 과시하며 생존 의지를 키워나갔다." (영화 초반에 첨부된 배경 설명)
에드워드 양 영화의 특징이자 강점은, 배경이 살아숨쉰다는 것이다. 그의 영화 중에서 시공간적 배경은 단순히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가 아니며, 이야기의 일부이고, 인물의 일부이다. (실제 삶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1960년대 전후 대만에서 혼란스러운 사회와 불안한 가정이란 시대적 분위기에 영향을 입는 어린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그 사이 진득하게 담기는 세계를 보고 있으면 그 때로 빨려 들어가는 듯 하다. 한 때는 현재란 실제였으나 과거가 된 시간을 담아내는 것은 많은 예술가들의 염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갱단을 조직해 자신의 정체성을 과시하며 "생존 의지를 키워나갔다"는 문학적인 표현을 이후에 영상으로 그려낸 게 감탄스럽다. 그 당시의 아이들은 그렇게 생존했구나라는 생각에 슬퍼지고, 더 나은 삶을 위해 피난을 온 부모 세대와 그에 휘둘린 자식 세대의 모습이 두 세대의 좌절된 희망과 고통을 선명하게 비추어서 안타까웠다.
35mm 필름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영화는 일단 그저 아름답다. 감각적인 영상미만으로도 소장하고 싶어지는 작품이다. 노스탤지어가 묻어나는 씬들, 각 장면을 통해 그려지는 공간이 너무도 따스한데 그걸 감싸는 비극의 공기가 대비되어 슬픔이 전해진다. 물론 그 슬픔은 영화를 다 본 사람들에게만 사후적으로 읽히는 것일 수도 있다.
영화 내내 빛과 그림자의 활용이 우아하고 치밀하다.
초반에 습득해서 소중하게 지니고 다니던 손전등을 놓는 시점에 이 영화는 비극적인 전환을 맞이한다.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마주친 빛(밍)을 잃게 되는 샤오쓰의 감정을, 그 흐릿한 내면을 빛으로 뚜렷하게 담아낸 솜씨가 대단하다.
롱샷과 롱테이크가 위주인 영화라 담담해서 좋았고, 타자적인 느낌이 슬픔의 감정을 천천히 구축시킨 것 같다. 씬 하나하나 너무 이뻤다.
해당 영화에 대한 장첸의 인터뷰를 보는데 출연했던 영화 중에 유일하게 아무 부분도 바꾸고 싶지 않은 영화라고 한다. 4시간 중 바꾸고 싶은 1분이 없다니, 엄청난 찬사인데 인정이다. 에드워드 양은 무조건 각본을 고수하는 깐깐한 분이었다고 한다. 처음으로 본 에드워드 양 작품인데 이렇게 좋은 영화와 감독을 만나게 되어서 기쁘다.
4시간에 달하는 영화지만 플롯은 단순하다. 소공원파와 217파의 대립, 허니의 등장 등은 다 부차적인 이야기에 불과하고 그저 밍과 샤오쓰의 관계만이 일차적인 스토리이다. 한참 소공원파와 217파가 대립하는 와중에도 진짜 이야기는 언제 시작하는 건지 답답했다. 밍과 샤오쓰의 이야기에서 확실한 발전은 엔딩에서야 비로소 일어난다. 바로 살인이다.
"내가 변하도록 도와주겠다는 거야? 너도 다른 애들처럼 나한테 감정을 바라고 잘해 준 거였어? 참 이기적이다, 네가 날 바꾸겠다고? 난 이 세상과 같아, 이 세상은 변할 수 없어" (찔리기 직전 대사)
제목에서부터 안내되어 기다리게 한 "살인"이 드디어 일어난다. 마지막 15분이 되어서야 앞선 3시간 35분의 조각이 맞춰지고, 조건이 갖춰지고, 감정이 전환된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여운은 특히나, 아니 너무나 짙다. 차근차근 철저하게 쌓은 연결을 통해 살인이란 비극을 마음 깊숙이 꽂기 때문이다. 슬프지 않았던 앞선 3시간 35분의 이야기도 모두 가세해 4시간짜리 슬픔이 덮친다. 샤오쓰를 생각해도, 밍을 생각해도 슬펐다.
의지할 곳 없는 현실에서 만난 밍에게 그는 마음의 균형을 위임해버렸다. 그러나 폭력이 일상처럼 만연한 시대의 공기는 그 선택마저 흔들어 놓고, 결국 어린 소년은 혼란의 칼을 가장 의지했던 대상에게 꽂고 만다. 영화는 그 긴 러닝타임 동안, 이 소년이 얼마나 심성이 곧은지, 동시에 이 시대에 끝내 발을 붙이지 못한 채 얼마나 혼란스러워했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그런 아이를 끝내 살인에 이르게 만든다는 것은, 정말 잔인한 결말이다.
그의 범죄 앞에서 관객은 분명히 놀라지만, 동시에 그렇게까지 내몰린 과정이 너무도 분명해 차마 등을 돌리지 못한다. 더구나 그 심성을 비추어 볼 때, 그는 평생 그날을 후회하며 살아갈 것이 자명하다. 그 사실이 이 사건을 더욱 연민하게 만든다.
이 소년의 범죄는 개인의 일탈이라기보다, 의지할 대상조차 왜곡시켜 버리는 시대의 폭력에 가깝다. 영화는 긴 시간을 들여 그의 곧은 심성과 그가 느끼는 혼란을 축적한 뒤, 그 모든 것을 단 한 번의 선택으로 무너뜨린다. 그 선택이 너무나 비극적이기에, 관객은 충격과 연민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것은 단언코 밍이다. 밍 역시 의지할 곳 없는 현실 속에 있었고, 동시에 어머니의 삶까지 감당해야 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이나 위로가 아니라, 생존에 구체적인 도움을 줄 현실적인 연결이었다. 그런 조건에서 감정을 후순위로 두는 선택은 그녀의 뜻이 아니라 상황의 요구였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 속에서 가장 고립된, 가장 생존에 절박했던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남자들은 밍에게 감정을 요구한다. 자신들의 불안과 결핍을 그녀가 보상해 주길 기대하면서,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책임을 전가한다. 단단한 갑옷을 두르고 현실을 견디던 어린 밍이, 바로 그 생존의 태도 때문에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이 비극을 더욱 잔혹하게 만든다. (남자 인물들이 행사하는 그러한 정서적 권리 주장은, 개인의 감정 문제를 넘어 그 시대에 만연해 있던 여성혐오가 낳은 또 하나의 폭력이다.)
샤오쓰에게 밍은 생존을 가능하게 해 줄 최우선의 대상이었고, 밍에게 최우선은 언제나 생존 그 자체였다. 두 미성년자가 혼란한 시대를 표류하며 간신히 땅을 딛기 위해 취한 선택들이 어긋나면서, 비극은 필연처럼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명확한 가해자나 단일한 책임을 지목하기 어렵다는 점이, 이 이야기를 더욱 가엾게 만든다. 샤오쓰는 혼란과 격동의 시대가 낳은 화신에 가깝고, 밍은 그 시대의 희생양이다. 물속에 풀린 염료처럼 번져가는 이 비극에는 분명한 기점도, 명쾌한 결론도 없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오래도록 씁쓸하다.
이 영화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끝나지만, 그 둘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개인의 선택은 가정의 구조와 맞물리고, 가정은 다시 사회의 폭력과 질서 속에 편입된다. 사적인 서사는 공적인 조건에 의해 규정되고, 그 과정이 두 인물의 관계를 통해 가시화된다. 서사는 단순하지만, 작동하는 층위는 다차원적이다.
폭력, 힘의 논리, 생존의 규칙,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사회적 분위기까지, 영화가 호출하는 질문은 과도할 정도로 많다. 단번의 관람으로 이를 온전히 포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별점: ★★★★★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