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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섬 May 13. 2024

루공 가(家)의 운명

루공 마카르 총서 제1권

작품 배경

 

〈루공가(家)의 운명(La Fortune des Rougon)〉 혹은 〈루공-마카르가(家)의 기원(Les Rougon-Macquart : Les Origines)〉은 1871년에 출판된 소설로, 『루공-마카르 총서』(Les Rougon-Macquart)의 제1권이다. 이후 1873년에 출판된 《샤르팡티에(Charpentier)》 판본은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루공-마카르 가(家)의 기원을 보여주는 〈루공가의 운명〉은 프랑스 남부의 플라상(Plassans)이라는 소도시를 무대로 펼쳐진다. 플라상은 소도시의 작은 공간이지만 19세기 중반의 프랑스 격동기를 효과적으로 연출하는 무대가 된다. 이곳에서 귀족, 부르주아, 농부, 노동자라는 각각의 계급이 지니고 있는 가족의 이미지는 구체제가 무너진 사회의 격동기에서 사회에 대한 이들의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준다.

     

〈루공가의 운명〉 서문에서 졸라는 『루공-마카르 총서』가 하층계급의 기원을 가진 한 가족이 한 시기의 사회와 역사의 당사자로서 행동하는 방식을 그리며 20여 명의 등장인물들은 깊이 있는 분석을 바탕으로 서로 연관성을 가지게 되며 개인적인 욕망뿐만 아니라 전체의 일반적인 욕망과도 연결되어 그려진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졸라는 기질과 환경에 대해 이중으로 질문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기질과 환경은 『루공-마카르 총서』의 부제인 ‘한 가족의 자연사와 사회사’라는 말로 다시 연결된다. 졸라 시대에는 인간의 자연적 본능에 대한 연구가 많았고 인간에 대해 다시 질문하는 시대였던 만큼 생리적-자연적 차원에서의 질문은 시대적인 인식이었다. 대혁명 이후에나 가능한 소설들이라고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이 총서의 주인공들은 대혁명 이후 향유에 대한 욕망 속에서 겁 없는 세상으로 뛰어드는 하층 계급의 대중들이다. 루공-마카르가의 선조 아델라이드에게서 시작되는 최초의 신경증적이고 히스테릭한 기질은 유전이라는 생리적 상징을 통해 집단적 욕망의 동질성을 형성하는 상징이 된다.




 

줄거리

 

     대혁명 이후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한 대중의 엄청난 욕망은 도처에서 일어나는 붕괴로 이어진다. 아델라이드-루공 부부의 결혼 시점은 혁명의 시기와 일치한다. 혁명이 잉태시킨 가족인 셈이다. 플라상 근교 농촌의 가장 부유한 채소 재배업자인 아델라이드의 아버지는 혁명 몇 년 전에 몰락하고 광기로 죽는다. 1768년에 태어난 아델라이드 푸크(Adélaïde Fouque)는 18세 때 고아가 된다. 그녀는 이상한 행동으로 아버지처럼 머리가 이상한 아이(cerveau fêlé)로 소문난다. 기존 권위의 상징인 아버지의 죽음과 “머리에 틈이 생긴 고아”는 분열을 통해 새로운 인류의 출현을 알리는 상징적 서문이 된다. 즉 기존의 가치대로 교육받고 정해진 구역을 위반하지 않고 사는 인간형이 아니라 이들의 반항하는 파격적인 인간의 탄생을 의미한다.


     부유한 상속녀인 아델라이드가 부유한 농가의 젊은이들을 제쳐놓고 임시고용인이었던 루공(Rougon)과 결혼한 것은 세간을 놀라게 하는 첫 번째 사건이 된다. 루공은 촌스런 농부로 뚱뚱하고 둔한 평범한 사람이며, 불어로 겨우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 두 사람의 결혼은 농부들 간의 결혼으로 농부라는 계층의 존재를 강조하며, 루공 가의 시조 어머니 아델라이드는 농부 계층의 심적, 정신적 변화와 이에 따른 행동 양식의 변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틀이 된다. 루공은 결혼한 지 15개월 만에 당근 밭을 일구는 도중 일사병으로 죽는다. 이름도 없는 미미한 존재인 그는 죽음조차 우스꽝스럽게 소설의 장에서 사라진다. 루공의 모습은 그와의 사이에 태어난 피에르 루공(Pierre Rougon)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암시된다. 


     아들 피에르는 타고난 농부이지만 신경이 유별나게 발전된 어머니의 기질이 아버지의 “혈색 좋은 둔중함”보다 우세하게 나타난다. 또한 아버지의 전체적으로 “둔중한 성향”들은 어머니 쪽의 정신적 혼란의 영향으로부터 지켜주고 그로 인한 비생산적인 광기를 막아주며, 본능적으로 악덕이 발달되는 그의 동복동생 앙투안 마카르(Antoine Macquart)와는 다르게 성장한다. 피에르는 아버지 루공의 우직함과 아델라이드의 본능적 행동을 반반씩 물려받아 이익에 철저하며 어머니의 신경증적 기질을 통해 부르주아적 생활에 대한 끝없는 질투와 욕망을 느끼는 인물이다. 농부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는 야심만만한 그가 한 첫 번째 일은 실세력의 공간인 플라상 시내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루공과 아델라이드 쌍의 첫 번째 임무는 자신의 계층을 부인하고 새로운 지배계층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루공 가를 잉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욕망은 바로 대혁명이 잉태시킨 욕망이다. 1786년경에 결혼한 루공-아델라이드 부부의 결합은 혁명을 전후로 태어난 새로운 욕망의 계층의 탄생을 의미한다.


     루공이 죽은 지 일 년도 안 되어 아델라이드는 마카르(Macquart)를 두 번째 남편으로 선택한다. 이는 온 동네를 전대미문의 충격으로 휩싸이게 하는 두 번째 스캔들이 된다. 마카르는 농부 루공과는 다른 계층에 속한다. 성 밖 농부들의 계층에서도 가장 빈곤층인 마카르는 쇠가죽을 무두질하는 노동자의 아들로 아버지가 죽은 후 동네에서 소외되어 살고 있는 고아이다. 사람들이 그를 지칭할 때는 언제나 “그 마카르 자식”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키가 크고 마른 얼굴, 온통 수염으로 뒤덮인 그는 어린이들을 산채로 잡아먹는 식인귀라는 소문이 돌 정도이며, 동네에서 절도나 살인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의심을 받는 산적 같은 인물이다. 정규 수입이 없는 그는 국경과 숲에 가까운 곳에 살며 밀수와 밀렵으로 살아간다. 그가 가끔씩 동네에 나타날 때에는 언제나 술집에 혼자 앉아 문 닫을 때까지 끈질기게 마신다. 그가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지나갈 때면 사람들은 “똑바로 걷는 걸 보니 엄청 마셨나본데”라고 말하곤 했다. 평상시 그는 약간 꾸부린 채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면서 겁먹은 듯 소심하게 걷는다. 그러나 졸라는 “무성한 머리와 수염으로 뒤덮인 얼굴에서 갈색 눈만 반짝인다. 방랑의 본능을 가진 남자, 술과 빈곤층의 삶으로 찌든 남자의 곁눈질하는 슬픈 눈”이라는 묘사로 그에 대한 연민을 드러낸다. 마카르는 땅을 가진 정착민 농부들과는 달리 타지에서 온 소외된 가난한 이방인 노동자일 뿐이다. 이런 동네의 배척받는 이방인이며 “빈민의 분노를 가진,” 30세 가량이지만 거의 50세로 보이는 마카르를 아델라이드가 연인으로 택한 것은 동네의 수치이며 완전히 미친 선택으로 보이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의 기질이 원하는 대로 아주 순진하게 따른” 선택이었다. 


     아델라이드는 마카르의 오두막과 자신의 땅 사이에 있는 벽을 일부 허물고 문을 낸다. 이는 그녀가 사회의 통념에 상관하지 않고 가장 소외되고 빈한하고 천대받는 층과의 교류를 행동으로 옮김을 의미하지만, 이와 동시에 기존의 사회와는 전적인 결별을 의미한다. 아델라이드가 마카르와 만나면서부터 시작되는 일종의 정신분열증인 신경증적 발작은 이런 보이지 않는 사회적 압박이 무의식적으로 강하게 작용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카르가 국경에서 국경수비대의 총에 맞아 숨진다. 이후 그녀는 아들 피에르에 의해 동네 경계에 있는 마카르의 외딴 집으로 쫓겨나 걸인처럼 살아간다. 동네 밖 광인으로 살아가는 그녀의 공간적 위치는 죄를 뒤집어쓰고 동네 밖으로 쫓겨난 희생양을 상징하는 동시에 구세주의 도래를 예언하는 광야의 요한의 이미지가 내포되어 있다.


     아델라이드와 루공의 아들인 피에르는 커가면서 집단의 규율을 위반한 어머니와 사생아 동생들을 벌하고 자신의 합법적인 사회적 위치의 회복을 노린다. 피에르는 교묘한 법적 사기로 어머니의 집과 땅을 차지하고 동생들의 상속 몫까지 차지한다. 루공 가를 일으키는 피에르 루공의 첫 번째 특징은 바로 어머니를 부정하는 데 있다. 피에르는 사회에서 배척받는 마카르와 사랑에 빠진 어머니를 사회규약을 어긴 죄지은 여인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를 단죄하는 의미로 어머니와 동생을 경계 밖으로 내쫓고 새로운 사회적 신분의 도약을 꿈꾼다. 촌사람의 때를 벗고 영리해진 농부 피에르는 “음험하고 교활한 야심, 욕망충족에 대한 끝없는 욕구의 부르주아 얼굴”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부르주아란 성 밖 촌사람 농부에 비해 읍내 사람 같다는 의미이다. 그의 꿈은 자신보다 나은 계급의 처녀와 결혼해서 플라상 시내의 부르주아 계급으로 자리 잡는 것이었다. 결혼은 자신의 계급 위로 한 단계 올라가는 능란한 방식이었다.


     플라상은 큰길을 통해 엄격히 3구역으로 구분되어 있고 각 구역 안에 3계급이 살고 있다. 귀족계급은 어떤 교류도 없이 밀폐되어 살고, 신시가지에는 부르주아, 은퇴한 상인, 변호사, 공증인 등 안락하고 야심만만한 자기들만의 작은 세상을 형성한 부르주아 계급이 살고 있다. 구시가지에는 서민, 노동자, 소매상인들이 여러 가지 제조 공장과 섞여 살고 있다. 피에르가 우선 자리 잡고 싶은 곳은 바로 이 구시가지이다. 그는 거기에서 몰락해가는 기름 상점의 딸 펠리시테(Félicité Puech)와 결혼한다. 가족에 대한 나쁜 평판과 하급 계층이라는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가 비열한 방법으로 빼앗은 어머니의 땅을 판 돈 50만 프랑은 이 결혼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피에르의 부인 펠리시테는 자신 가족의 경제적 불운을 한탄하면서 플라상 시를 권력과 재산으로 정복하고자 하는 야심찬 아가씨이다. 귀족의 사생아인 그녀는 아버지를 부정하고 자신이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사생아적 기질(자신의 사회적 조건에서 벗어나 다른 곳을 창조하고 새로운 낙원으로 가고자 하는 탈주 유형)을 보여준다. 상인의 딸이 원하는 낙원은 바로 돈과 권력의 세계이다. 그녀는 남편과는 동업자이며 아들들은 모성보다 투자가의 애정으로 키운다. 그녀는 아들들을 부르주아로 키우는 데 돈을 아끼지 않으며 이들을 통해 입신의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 한편으로 귀족의 사생아라는 그녀의 입지는 구체제의 연속성과 영원성을 의미한다. 그녀가 겨우 촌티를 벗은 농부인 루공과 결혼한 것은 공범을 택하듯 루공을 택한 것으로 자신이 그 뒤에 숨어 조종할 수 있는 건장하고 어느 정도는 바보가 아닌 남자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 젊은 부부는 용감하게 재산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이 부부는 혈통을 대신해 새로운 권력으로써의 돈이 등장하는 시대의 인물들이다.


     루공가가 플라상에서 권력과 재산을 이루는 과정은 하나의 소극으로 그려진다. 합법적인 권리를 위해 노동자들이 봉기했을 때, 피에르는 종탑의 종을 고의로 울려 다시 피의 혁명이 도래한 것 같은 위기의식을 조장하고 예전의 광폭한 농민 폭동으로 연결 짓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런 전략은 군대의 개입과 살인적인 진압을 정당화한다. 그가 시의회를 점령하는 장면은 한판의 연극이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소극은 위법이 허용되는 대중의 난장판 의식을 연상시킨다. 그의 둘째 아들 아리스티드는 동료들을 배반하기 위해 팔을 다친 것으로 위장하다가, 반대 상황이 되면 붕대를 풀었다 감았다 하는 박쥐와 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아내 펠리시테는 파리에서 이미 성공한 쿠데타 소식을 자신들의 극적인 승리를 위해 알리지 않는다. 이 모든 연출이 이들의 권력과 재산이 비겁한 사기, 강도짓에 의한 하나의 천박한 소극임을 상징한다. 물론 이 난장판은 가짜 희생제물을 통해 다시 정화되는 대중들의 의식으로 끝나고 마을은 다시 평화를 얻는다. 자신의 조카이며 죄 없는 고아 소년 실베르를 총살시키고 난장판을 일으킨 폭도들을 처형함으로써 다시 평화를 얻는 연출 덕분에 피에르는 동네에 평화를 가져온 일로 훈장을 받고 마침내 권력과 부를 차지한다. 


     실베르(Silvère)는 아델라이드와 마카르 사이에서 태어난 위르실(Ursule)의 아들로, 1839년에 위르실이 죽은 후 고아가 되어 가족들에게도 버려진 존재이다. 가족과 사회의 수치로 각인되어 내쫓긴 아델라이드만이 그를 받아들여 키웠다. 플라상의 노동자인 그는 할아버지 마카르처럼 자신의 계층의 둔중함을 지닌 노동자이지만 그 안에는 어떤 항거를 느끼는 지적인 본성을 갖고 있다. 그는 아델라이드에게 연민을 느끼는 유일한 인물이며, 또한 사회에서 밀수꾼의 딸, 살인자의 딸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고아 미에트(Miette)를 사랑하게 된다. 이들 비참한 여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염원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항거에 대한 그의 열정과 평행선을 이룬다. 그는 미에트와의 사랑을 통해 미에트라는 가장 천대받는 계급을 구원하려는 염원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사랑은 구원으로 이끌고자 하는 이상적 사랑이다.


     미에트 역시 고아이며 그녀의 아버지는 밀렵꾼으로 헌병을 죽인 죄로 감옥에 가게 된다. 혼자 남게 된 그녀는 살인자의 딸이라고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수모를 겪으며 아델라이드의 옛 농가에서 하녀로 살아간다. 13세의 그녀는 풍성하고도 아름다운 머리칼을 휘날리며 큼직하고 붉은 입술로 즐겁게 활짝 웃는 모습의 건강한 농촌 소녀이다. 그녀는 노동자의 항거 중 자유의 여신처럼 깃발을 든다. 그녀의 붉은 안감을 댄 검은색 망토는 실베르와 함께 추위를 막기 위해 덮어 쓸 때는 포근한 동굴이었다가, 항거 중 붉은 색으로 뒤집어 입을 때는 혁명의 구원의 여신으로의 변신을 의미한다. 가장 비참한 계층에서 태어나 박해받고 있었던 어린 소녀의 새로운 민중의 여신으로의 변신은 항거하는 노동자들에게 혁명에 대한 열정과 신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붉은 망토와 높이 쳐든 깃발로 인해 그녀는 군대의 첫 표적이 되면서 너무도 빨리,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무하게 살해된다. 이로써 노동자들의 혁명에 대한 신념이, 단번에 구원될 수 있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낭만적인 하룻밤의 꿈이었음이 증명된다. 사랑을 통한 구원의 희망이 죽음이라는 악몽으로 끝나면서 절망한 실베르는 죽음을 통해 그녀와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열망하며 미에트와 만났던 옛 묘지 생-미트르(Saint-Mittre) 공터에서 처형되는 것에 마지막 행복을 느낀다. 




분석

      

루공-아델라이드, 마카르-아델라이드라는 동전의 앞뒤와 같은 두 쌍은 대혁명을 통해 구체제를 전복시킨 힘과 그 시대를 풍미했던 과학과 생물학의 관점이 결합되어 태어난 생리적 욕망을 가진 인간의 탄생을 의미한다. 자유와 평등에 대한 욕망과 동시에 권력과 지배의 욕망이 혼재되어 있는 모순된 인류를 상징한다. 후자는 구체제의 전복을 틈타 과거의 지배계급을 대체하는 힘이 되고자 한다. 이 둘을 형상화하는 피에르와 펠리시테 쌍은 그들의 정복과 지배의 욕망을 위해 ‘도당’이라는 매우 현대적인 힘을 필요로 한다. 사랑, 연민, 열정을 토대로 한 아델라이드와 마카르 쌍이 농부의 딸과 노동자 아들 간이라는 기존의 규율을 무시한 결합일 뿐만 아니라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은 불륜적 결합으로 동네의 배척을 받는다면, 피에르 루공과 펠리시테는 모든 면에서 이들과 반대이다. 


피에르는 사회에서 배척받는 마카르와 사랑에 빠진 어머니를 사회규약을 어긴 죄지은 여인, 결함을 가진 어머니로서 단죄 받아야 할 대상으로 규정한다. 아버지 부정의 가족 로망스는 전통을 부정하고 근대 소설의 전형인 고난을 통해 목적을 이루는 성장소설의 기조를 이룬다. 전통적 인습을 거부하고 새로운 세계에서 자기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근대적 주체들의 의식세계를 반영한다. 아버지 부정이 근대 성장소설의 기조를 이룬다면 졸라의 소설에서는 아버지는 약화되고 어머니가 많이 등장한다. 모태로서의 여성은 기원과 더 관련이 된다. 죄지은 어머니를 부정하고 단죄하는 아들의 이야기는 달갑지 않은 요소를 제거하고 다시 자신이 일어서고자 하는 욕망의 필요조건이 되면서 동시에 기원의 정화를 원하는 집단의 욕망과도 관련된다. 새로운 권력층으로 부상한 부르주아들이 농노였던 자신들의 기원을 부정하고 새로운 가계사를 쓰고자 하는 심리와 일치하는 이야기 구조이기도 하다. 이 점이 졸라의 가족 로망스가 다른 가족 로망스와 다른 점으로 사회의 통합성을 해치는 이타적 존재인 모태의 제거는 타자를 제거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집단의 욕망을 보여준다. 19세기 소설들에서 유난히 돌아온 사자(死者)의 주제가 강세를 보이는 것도 자신들의 정체성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신흥 부르주아들의 피해의식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피에르가 자신의 조카이자 죄 없는 고아 소년 실베르를 총살시키고 폭도들을 처형함으로써 마을에 평화를 다시 가져다준 공훈자로서 훈장을 받고 권력과 부를 차지하게 되는 부분에서는 제 2제정의 설립이 역사의식의 퇴행으로써 풍자됨을 볼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부르주아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대적 국가의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 소극에서 특이하게 강조되는 것이 가족의 역할이다. 이들 가족은 아버지의 권리가 중심이 되는 부권적 집단도 아니며 아내에 대한 남편의 권리가 강조되는 가부장적 사회도 아니다. 이들 가족의 특징은 어떤 목표를 위한 기능으로서의 역할이 중시된다. 애정을 기반으로 한 정적 구조가 아닌 능력에 따른 피라미드 구조이다. 부부 사이에도 부자 사이에도 비밀과 전략이 있으며 그 밑으로 힘의 쟁탈이 벌어진다. 이들 가족은 바로 파벌(famille politique)의 개념으로 볼 수 있는 패거리(bande),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는 비적 패거리”이다. 이들 가족-패거리의 이미지는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 뭉친 패거리들을 포함해 20세기의 패밀리-패거리의 이미지를 예고하고 가족적 단결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들의 희생을 정당화한 20세기 독재국가 또는 자본주의 재벌들의 가족 이데올로기를 이미 예고한다. 피에르 루공은 “조국을 위해 가족을 회생하는 로마인처럼” “여러분, 나는 나의 의무를 다하겠소. 무정부상태에서 도시를 구하기로 맹세했소. 나의 가장 가까운 친척을 희생시킬지라도 나는 이 도시를 구하리다.”라고 비장하게 말하며 자신의 동복동생과 조카 실베르를 희생시킨다. 이런 피에르의 가족 이데올로기의 이면에는 바로 동복동생들과 어머니의 돈을 강탈하고 조카를 살해하는 파렴치한 일들이 있다. 정적인 가족 관계라기보다 전략적으로 제휴한 도당의 관계인 이들 가족들을 묶는 끈은 어떤 휴머니즘이나 진보주의 이념도 아닌 바로 향유에 대한 욕구이다. 이들은 자신의 계급에서 탈출하기 위한 열망에서 공격의 기회만 노리는 배고픈 늑대의 집단으로, 가족은 철저히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인 도당을 합리화하는 효과적 장이 된다. 이들은 바로 1848년 2월 쿠데타를 통해 들어선 제 2제정을 의미한다. 이 두 그룹의 도덕적 퇴행, 역사적 퇴행은 다시 지배-피지배라는 이기적이고 동물적인 인간의 기원으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아델라이드와 마카르가 잉태시키고자 했던 새로운 사회구조에 대한 희망은 또 다른 자리바꿈으로 끝나며 출구 없는 닫힌 원안에서의 반복과 전락으로 간다. 

     

피에르 루공-펠리시테가 노동자를 타자로 보면서 이들을 벌하고 내쫓음으로서 자신의 권리와 정체성을 찾고자하는 욕망을 형상화한다면, 실베르-미에트는 모두가 평등한 이상적인 사회상을 창조하려는 통합성에 대한 욕망을 형상화한다. 둘 다 대혁명 이후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욕망을 의미한다. 여러 가족상들은 어머니라는 이미지로 다시 응축되는데, 대립들 간의 투쟁 혹은 통합이라는 사회의 숨은 욕망과 희망을 드러내고 있다. 이 결함을 가진 원죄 어머니의 존재는 금지된 것에 대한 접근으로 새로운 대립의 시작이며 이 둘의 대립적인 경향들은 통일성의 원칙에 복종되거나 모순적인 종합으로 간다. ‘원죄 어머니’의 존재는 ‘실패한 구원자 어머니’, ‘남성적 어머니’ 같은 양성적이고 모순적인 어머니상으로 확장되며 구원자 어머니 탄생의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아델라이드의 유전적 결함은 현재와 과거를 같은 선상에 놓으면서 영원한 순환을 의미하지만 광인에서 보이는 예언자적 역할은 그녀가 이 새로운 대중의 탄생의 증인이 됨을 의미한다. 그녀는 마카르와 실베르의 죽음의 목격자인 동시에 실베르의 죽음이 루공가의 출세를 위한 희생물임을 아는 유일한 인물이다. 실베르의 죽음 이후 무당과 같은 “성스러운 광기” 속에서 내뱉는 그녀의 말들은 과거의 귀족들이 혈통으로 지배자가 된 대신 새로이 태어난 루공가는 가엾은 주변인들을 제거한 피 속에서 태어난 늑대들이라는 진실을 담고 있다. 그리고 루공가의 출세가 제 2제정의 탄생과 동시에 일어난 이상 그것은 바로 제 2제정의 실체를 고발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혁명 이전의 역사와 이후의 역사 간의 순환성을 고발하는 그녀의 존재는 수치스러운 역사를 잊고자 하는 이들에게 불편한 존재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그녀는 미친 사람의 영역, 그녀의 사랑은 타락된 사랑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아들 피에르는 그녀를 정신병원에 가두며, 그 일은 바로 동네사람들을 대변하는 일이다. 

     

미에트의 본래 이름은 마리아이다. 그녀와 실베르와의 순수한 사랑은 죽음을 동시에 잉태하고 있다. 이 젊은이들이 사실 진정 원하는 것이 죽음인 것은 이들 사랑의 순결과 순수함은 죽음을 통해서만 완전히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은 생-미트르 공터의 생명력처럼 다시 삶을 키운다. 더 이상 분쟁이 없는 곳, 현재와 과거의 계속적인 상호침투가 일어나는 이곳처럼 이들의 죽음은 재앙도 벌도 아니고 순환의 한 순간이 된다. 실베르와 미에트의 그리스도와 같은 순수한 회생제물의 모습과 실베르가 총살되기 위해 생-미트르 공터로 걸어가는 모습은 골고타 언덕을 올라가는 예수의 모습을 내포하는데서 이들 쌍은 구원자의 탄생을 예고한다. 실베르가 피를 홀리는 바로 그 장소는 “여기 마리아 잠들다”가 새겨진 비석이 있는 곳, 미에트와 늘 만나던 장소이다. 그 곳에 흘려진 실베르의 피는 옛 묘지의 조상들의 죽음의 반복이지만 생-미트르 공터처럼 풍요로운 성장을 약속하는 죽음이 된다.

     

실베르와 미에트가 만나는 생-미트르 공터는 플라상 남쪽을 나서면 나타나는데 바로 소설의 1장이 시작되는 곳이다. 생-미트르 오른쪽 막다른 골목에는 탕트 디드와 실베르가 사는 오두막집이 있고 왼쪽에는 이전에는 아델라이드의 농가였으나 미에트가 하녀로 사는 친척 소유의 농가가 있다. 한 마디로 생-미트르는 이들 소외권자들의 중심 공간이다. 그러나 외진 곳, 유랑민 집시가 머무는 곳, 개구쟁이들이나 젊은 연인들이 숨어드는 이곳은 신화적 위치에서 보면 플라상의 경계 밖의 공간으로 위험한 곳이다. 플라상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안과 밖을 분명히 구분 짓는 안락한 둥지의 지형이라는 특성을 보여준다. 생-미트르는 플라상 경계 밖의 공간이다. 신화에서 경계 밖의 공간은 나쁜 힘이 있는 곳으로 죄를 지온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과거 조상들의 희생제 의식에서 희생양의 머리에 죄를 전가하고 내쫓는 곳이 사막 또는 경계 밖의 외진 공간이다. 디드, 마카르, 실베르, 미에트 모두 이 경계 주변의 인물들이다. 이들 주변인들은 경계 밖에서 영원히 내쫓긴 채 살든가 아니면 경계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선택의 운명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경계가 혼란을 겪게 되는 시점은 대혁명의 시점과 일치한다. 예전에는 공동묘지였었던 생-미트르는 죽음의 장소이지만 강한 생명력이 묘하게 어우러진 곳이다. 사람들은 이 비옥한 땅을 쓸모없이 버려둘 수 없다고 도시 반대편의 새 묘지로 이장할 것을 정한다. 어떤 종교적 의식도 없이 무덤들은 파헤쳐지고 뼈들은 시내를 가로지르는 마차에 실려 옮겨지는 동안 보도 위로 떨어지곤 했다. 이런 끔찍한 기억 때문에 이 대지를 사고자 하는 사람도 없고 활용도 되지 않는다. 여기서 뼈를 싣고 가는 마차의 이미지는 대혁명을 연상시킨다. 지금의 생-미트르 한쪽에 자리 잡은 석재 공장의 계속 오가는 톱날도 기요틴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묘지의 이장은 옛 묘지의 신성함이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런 신성함의 상실은 기존 구체제의 절대적이었던 위계질서가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대혁명의 피와 죽음을 연상시키는 옛 묘지는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가 비옥한 땅 덕분으로 점차 우거진 숲의 모습을 띄고 엄청난 생명력의 땅, 개구쟁이들의 놀이터, 연인들의 밀회장소, 사랑의 장소가 된다. 이런 생명력의 이미지와 더불어 생-미트르는 묘지와 석재공장의 톱날을 통해 여전히 각인되는 대혁명의 이미지, 죽음의 숨결이 예전의 무덤을 통해 뜨겁고도 감미롭게 유혹하는 곳이며 동시에 고아들인 주인공들의 고독과 사랑의 감동적인 장소, 이곳에서 가난하지만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집시들의 모습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장소이다. 다시 말해 죽음과 사랑, 기요틴으로 상징되는 폭력적 제재의 힘과 육체의 향연을 누리는 자유로운 생활, 가난하고 소외된 인간과 자연의 번성이라는 서로 대립적인 힘들이 공존하는 장소이다. 대혁명 이후 귀족왕조를 대신한 서민적인 정서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곳의 밤의 모습은 위협적인 모습으로 바뀌는데, 귀족을 대신해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자리 잡은 부르주아들이 경계 밖의 소외인들에게서 어떤 위험을 느끼는 내면심리가 투영되는 곳이다. 보헤미안 집시가족들, 부랑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 공간은 시내 부르주아들을 불안케 하는 공간으로, 바로 1851년 12월 초순 7시경이라는 정확히 언급된 시간에 이 공간 속으로 한 젊은이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들면서 그 위협의 정체가 분명해진다. 실베르는 내일 있을 노동자 봉기에 쓰기 위해 소총을 이곳에 숨기러 온다. 마카르와 실베르의 고아라는 위치는 자신이 아버지가 되려는, 자신이 새로이 자신의 족보를 쓰고자 하는 야심을 내포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들은 바로 부르주아 계급이 위험시하는 노동자 계급을 동시에 상징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시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경계에 사는 주변인일 뿐이다. 생-미트르 공터는 모든 대립적인 힘들이 공존하는 원시적 상태의 신화적 공간인 동시에 혁명 이후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자리 잡은 부르주아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불안, 중심권 세력에 의해 내쫓긴 고아들로 상징되는 주변인-노동자들의 새로운 전복을 꿈꾸는 공간으로 신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 발췌 논문 : 〈에밀 졸라의 『루공 가의 재산』: 가족 소설에 내재된 어머니상〉, 조성애(연세대)

▶ 참고 사이트 : 불어판 위키피디아

▶ 작품 배경 / 줄거리는 불어판 위키피디아를 직접 번역해서 줄거리 형식으로 요약한 내용이고, 

분석은 발췌 논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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