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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섬 May 26. 2024

부처스 크로싱

존 월리엄스 저 / 정세윤 역

무(無)를 주제로 삼을 수는 있다. 소재로도 충분히 그렇다. 하지만 소설 자체가 무(無)가 될 수는 없다. 적어도 이 소설을 만나기 전까지 그런 글은 본 적 없다. 단 한 번의 쉼표를 허하지 않고 달려가 마주한 결말은 그저 무(無). 허무함을 너머 무(無)로 직진해 다다른 마지막 책장을 덮자 이야기는 오히려 무한대로 이어진다. 그 선연한 허무와 무(無)를 직면한 거기에서도 다만 나일 수밖에 없는 나와 나의 선택들.

사랑, 재물, 비전, 의미, 무의미, 존재, 자아, 관계,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

이런 것들은 모두 '거짓'이다.

우리에게 산다는 건 저런 거짓들이 아니라 나 자신밖에 될 수 없는 나와, 그런 내 앞에 느리지만 고집스럽게 자기 방향으로만 치닫는 오늘뿐이다. 대평원의 들소처럼.


앤드루스가 일확천금의 꿈으로 덧없이 들소 가죽을 좇아 영혼만 황폐해져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여기는 맥도널드는 그를 힐난한다.


"젊은 사람들은," 맥도널드는 업신여기듯 말했다. "찾아낼 무언가가 있다고 늘 생각하지. 글쎄, 그런 건 없어. 자네는 거짓 속에서 태어나고, 보살펴지고, 젖을 떼지. 학교에서는 더 멋진 거짓을 배우고, 인생 전부를 거짓 속에서 살다가 죽을 때쯤이면 깨닫지. 인생에는 자네 자신, 그리고 자네가 할 수 있었던 일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자네는 그 일을 하지 않았어. 거짓이 자네한테 뭔가 다른 게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지. 그제야 자네는 세상을 가질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되지. 그 비밀을 아는 건 자네뿐이니까.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었어. 이미 너무 늙었거든."

"보게. 자네는 인생에서 거의 1년이라는 시간과 힘을 낭비했어. 바보 같은 꿈 때문이지. 그래서 뭘 얻었나? 아무것도 없어. 자네 인생에서 날아간 1년, 부서진 마차, 손에 박힌 굳은살, 죽은 사람에 대한 기억뿐이겠지."

"아니요." 앤드루스가 말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제가 가진 건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앤드루스는 그게 다가 아니라고 답한다. 하지만 그 이상은 설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건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니까.

애초에 그는 하버드 대학을 버리고 부처스 크로싱으로 떠날 때도, 부처스 크로싱에서 들소 가죽 중개상으로 사무를 도와달라는 맥도널드 제안을 거절하고 들소 사냥꾼 밀러를 찾아갈 때도, 부드러움으로 뼈가 녹을 듯한 사랑을 뿌리치고 대평원으로 떠날 때도, 그 자신조차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는 다만 그래야 한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들소를 좇다 모든 걸 잃고 부처스 크로싱으로 돌아온 앤드루스에게 맥도널드는 "서부는 너무 크고 너무 텅 비었어. 그리고 거짓이 자네에게 찾아오게 하지. 거짓을 다룰 수 있기 전에는 거짓을 피해야 해. 그리고 더는 꿈같은 건 꾸지 말게. 난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만 해. 그밖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앤드루스는 그 거짓을 통해 모든 걸 잃은 뒤에야 얻어낸 것들이 있다. 후회와 연민으로 아버지와 고향 보스톤을 떠올리지만 자신이 결코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대륙 절반을 횡단해 상상 속 불변의 자아를 찾을 수 있으리라 꿈꾸며 황야로 향했던 열정이 들소 가죽처럼 하루 아침에 사라져버리는 허영심이었다는 걸, 이름도 없는 허영심들이 차올랐다가 마침내 무(無)로 수렴해버린 그 고통의 시간의 끝에서 그는 꿈이 무(無)로 수렴하고 다시 무(無)에서 허영심이 길어 올려지는 길 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아니, 벗어나지 않을 거라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벼린 영혼에는 목소리가 있다. 보스톤을 떠날 때처럼 그는 다시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 길을 나선다. 어디로 가는지 그 자신도 알지 못한다. 허영심이라거나 꿈이라거나 혹은 열정이라거나 거짓이라거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분명한 건 아무리 가도 길은 끝나지 않고 단지 매일 어딘가에 다다를 거라는 것뿐이다.



글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말이다. 책을 펴고 앉은 아파트 거실의 초여름 베란다 창이 선뜻 물러나고, 길을 잃고 강가를 찾아 헤매느라 실신하도록 타들어가는 목마름에서, 수천 마리의 들소로 계곡을 이룬 사냥의 순간에서, 시력을 태울 만큼 눈이 부신 설원의 대평원 위에서 인물들과 함께 쩔쩔맨다. 마지막 장을 덮고 대평원에서 정신을 거두고 보니 이미 일요일 해가 지고 있다.


모두 거짓이라는데, 뜬금없이 나 자신을 향해 그래, 잘하고 있어, 한다. 지금 이대로 충분해. 솟구쳤다 꺼져버리는 허영심과 공허감의 무한 변주에도 또 다시 먼 길에 시선을 두는 오늘. 지난한 길을 이미 걸어왔고, 그럼에도 다시 지난한 길을 가기로 선택하는 오늘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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