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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섬 Apr 10. 2024

밤양갱

장기하의 농담

지독한 메타포다.


여자의 생일날 아침에 빨간 장미 꽃다발이 도착한다. 반색하던 여자의 얼굴이 일순 굳어진다. 장미 꽃다발 꽃가지마다 돌돌 말려 꽂혀 있는  원권 지폐를 뒤늦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실망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어색해진 웃음으로 여자가 묻는다. 자기가 생일에 사준다던 가방은? 남자는 간단히 답한다. 거기 꽂힌 돈으로 네가 사면 되지. 순간, 여자는 눈물이 쏟아지려는  겨우 참는다.

밤양갱의 출현이다.


무려 뉴스에서 비비가 밤양갱의 의미를 말한다.

진실한 사랑.

사랑도 서로 다른 얼굴인데, 게다가 진실이라니.

그야말로 진실과는 한참 멀어지는 조합이다.

밤양갱은 진실에도 사랑에도 그다지 관련이 없다.

밤양갱은 오히려 남녀 사이에 존재하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섬이다. 서로 다른 언어다.

그렇기에 굳이 사랑이나 진실을 말하자면 밤도 아니고 양갱은 더더욱 아니고, '달디달고달디단'에 있다.


여자는 요근래 무심해진 남자의 관심이 필요했다. 생일선물로 뭘 받고 싶냐는 질문에 남자가 직접 골라준 가방이라고 답했던 것도 그래서다. 여자에게 선물할 가방을 고르는 시간들만큼은 여자를 생각해야 할 테니까.

그런데 꽃다발이 도착한다. 남자가 직접 들고 온 것도 아니라 택배로 도착한다. 여자에 대한 생각이라고는 남자가 주문할 때에 기록한 주소지가 전부였을 꽃다발이다.

시무룩한 여자의 반응에 기가 막힌 남자가 이유를 물었을 때 여자는 가방이라든지 꽃다발이라든지 모든 걸 밀치고 밤양갱을 논한다. 왜냐하면 가방이나 꽃돈다발은 트리거였을 뿐, 진짜로 원하는 건 '달디달고달디단', 뭐 그런 거였으니 대략 밤양갱이라면 가방보단 훨씬 더 진실에 가깝다.

고 여자는 확신한다.

하지만 사실 여자도 모른다. 정확히 어떤 달디달고달디단 게 필요한지 여자도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밤양갱이다.


밤.양.갱.

이라고??


남자는 지금껏 애써 내보였던 산해진미들이 뇌리를 스쳐간다. 음.. 분명 밤양갱이 없긴 했는데 말이지..

그런데 그렇게 말하자면 남자로선 꽃다발이야말로 밤양갱인 듯하다. 어째서 꽃다발이 달디달고달디단 밤양갱이 아니란 말인가.


장기하가 뇌까린 밤양갱은 이러한 의미에 더 가깝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틀을 깨고 본인이 직접 쓴 곡을 굳이 여가수에게 부르라고 주었다. 남녀 간에 더 큰 메타포를 노린 천재의 신의 한 수다.


그리하여

무한반복될 것만 같은 달디달고달디달고달디달고를 듣고 있자면 장기하만 또렷해진다. 그가 씨익 웃는다.


요컨대 장기하라면 진짜로 하고픈 말은 이게 아니었을까.


네가 정말 원했던 게 밤양갱은 맞고?

실은 너도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그러니까 그거 말하는 거지? 그거? 맞지, 그거? 맞지?? 그러니까... 일테면 밤양갱 말이지. 그치??

야, 너도 모르는 그 달디달고달디단 걸 내가 어떻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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