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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섬 Feb 24. 2024

어쩔 수가 없는 일

MBTI 오용

그건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라고 그가 말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전부 파워 J라서 P인 저로선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라고 그는 거듭 말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는 일 맞는다.


그런데 여기서 '어쩔 수가 없는 일'은 업무 부적응이나 부적합이 아니라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 자신이다.


그는 이제 겨우 한 달 된 신입이다. 매 일 년을 십 년처럼 이를 갈며 버텨낸 선임들의 지난했을 시간을 고작 '파워 J'라는 원천성 안으로 처박아버렸다.


애초부터 MBTI가 싫었다. 그저 재미라면 모를까, 사람처럼 복잡미묘한 대상을 그토록 단순한 분류체계로 규정하려 들다니.

무엇보다 오랜 시간과 마음을 써야 하는 것들에 대해 타고난 본질로 치부해 버리고 맘 편히 나태해지고픈 순간에 등장하는 그것은 정말이지 화가 난다.

MBTI가 무슨 돌이킬 수 없는 본질인 냥, 실은 불리할 때마다 여기저기 편리하게도 써 먹는 세태가 원래부터 싫었다.

도대체 인간을 뭘로 보는가. P와 J 따위로 분류될 인간이었다면, 그렇게 한계치가 명확한 존재였다면 공상과학소설 쯤으로 그쳤어야 할 민간 달 탐사선이나 인공지능이 실현되었을 리 만무하다.


선임들은 그의 예상과 달리 과반수 이상이 P들이다. 선임들의 MBTI를 제대로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그것을 방패 삼아 숨기 급급했던 그는 P가 아니라 B다. 비겁함 말이다.


나약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강해질 수 없다. 이제 겨우 한 달 된 신입이니 못하거나 안 되는 게 당연하다. 하루가 영겁으로 여겨질 그날들에 그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나약함을 시인하고, 이를 보완할 방안에 온 마음을 쓰는 일이다. 이건 분명 그가 어쩔 수 있는 일이다. 어쩔 수 있는 그 시간들을 지낸 후에,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순간에 들먹여도 늦지 않을 몹쓸 변명은 집어치우고, 닥치고 집중할 일이다.


그는 J도 P도 아니다. 그저 어쩔 수 없는 루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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