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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섬 Aug 05. 2023

카카오톡 정산하기

모르면 배워야죠

관리자들 뒷담화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술자리를 파할 때쯤 내적 갈등에 빠졌다. 누가 내야 하지? 가장 많은 위로를 얻었던 나일까, 처음 술자리를 제안했던 동료일까, 내심 고민이 깊어졌다.

나보다 열 살 가량 어린 동료들은 쿨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그 중 한 사람이 당연한 듯 카운터로 가서 카드를 제시한다.

뭐지? 나 빼고 암묵적 합의가 있었던 걸까?

하면서 거리로 나서는데 카카오톡이 울린다. 라이언이 외친다.

우리 정산해요.


각출을 해본 적이 없다. 동갑내기 지인들은 술자리 회차를 돌아가며 쏜다. 몇 회차가 더 많이 나오는가는 중하지 않다. 어차피 다음에 또 사면 되니까.


그날 밤, 자정 넘어 집에 돌아와 한참 동안 카카오톡과 씨름을 했다. 결국 내 은행계좌를 연결해야 하고, 만 원 단위로 충전된다는 원리를 터득했다. 계좌 연결도 만 원 단위도 묘하게 찜찜하고 부당하게 여겨졌다. 그냥 계좌 송금하겠다고 할까?

하지만 난 이 직장에서 중년의 안정을 꾀할 생각이고, 그러자면 나이 어린(하지만 역시 중년인) 동료들과의 술자리는 계속 이어질 테니,

정산하기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얼마 후, 동료들과 함께 커피를 마신다. 이번엔 1인 1메뉴이니 카카오톡 정산하기 대신 송금하기를 제안 받는다.

아놔, 이건 또 뭐래.

동료들이 킥킥대며 웃는다. 친절한 한 동료가,

모르시겠으면 그냥 계좌번호 드릴게요.

라고 제안해준다.

아뇨, 모르면 배워야죠.


카카오톡 더보기에서 송금 버튼을 쉽사리 찾아내고 괜스레 뿌듯하다. 송금 완료!

그런데 뿌듯함도 잠시, 그 친절한 동료가 카톡을 보냈다.

오늘 커피는 제가 사드릴래요.

나의 답톡으로 말하자면,

왜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도 아닌,

헐.. 송금 거부도 돼요?

였다. 동료가 또 킥킥대고 웃는다.

송금 취소 버튼을 찾아내고 나도 함께 웃는다.


나이가 들어도 일해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 얻었다.

매일 배운다. 어지럽도록 많이 배운다.

딱히 이유 같은 거 없이 그냥 사는 거지만,

굳이 사는 이유를 따지자면 이런 거일 듯하다.

소소한 배움으로 얻는 큰 위로 같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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