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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섬 Aug 05. 2023

빨랫비누

청소 상념

빨랫비누를 다 써 간다. 얇디 얇아진 빨랫비누를 빨래에 놓고 비비려니 부서져 조각난다. 조각난 빨랫비누를 빨랫감 위에 놓고 애써 비벼 거품을 내며 생각한다. 이걸 왜 못 버리고 이 궁상을...

하다가 문득 생각한다. 내가 닳아 빨랫비누처럼 곧 조각날 듯 얇디 앏아지면 억지로 비벼져 전부 소진되길 원할까, 아니면 남은 형체라도 유지된 채 차라리 버려지길 원할까.


소모되는 것도 버려지는 것도 다 싫다.


소모 혹은 폐기 따위가 아닌 자주적인 게 삶이라고 스스로에게 아무리 자조적으로 고쳐 말해도 문득문득 빨랫비누만 같은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자주적으로 나 스스로를 이렇게 거덜낼 리 만무하게 여겨져서 말이지..


그래서 다시, 소모냐 폐기냐를 다시 고민해본다.

예상보다 훨씬 더 고민스러운 문제다.


최근에 지인의 어머님이 아파트를 팔고 딸네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치매로 병환 중이신데 요양원을 극구 부인했다고 한다.


암이든 치매든 더 이상 나의 이성이 주인이 아닌 상태로는 차라리 안락사가 낫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낡음은 이미 내가 주인이기 어려운, 나를 초월하는 현실이 전제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이미 제법 소모되어 이미 충분히 너덜너덜 조각나 쓰레기통행이 최선일 빨랫비누 한 장도 버리지 못하고 통째로 문드러져 형체가 사라질 때까지 빨랫감에 비벼대고 있었나 보다.

사용하는 나로서도 소모 당하는 빨랫비누로서도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는 위로를 얻기 위해.


무엇을 위해 이토록 소모되고 있는지를 반문하느라 밤잠도 멀어지는 날이면

그저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는 위로를 얻기 위해 자진 소모되고 있음을 상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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