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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우 Jun 15. 2023

순우여행노트 18] 르바란(Lebaran) 귀향

1990년대 초 인도네시아 소묘 2

  알렉스 헤일리(Alex Haily)의 『뿌리(Roots)(1977)』라는 소설과 드라마가 미국 등의 서구사회에서 크게 흥행한 적이 있다. 『The Saga of an American Family』란 부제의 이 소설은 미국에 끌려온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 쿤타킨테와 그 후손들의 삶과 고난, 아프리카 고향의 뿌리를 찾는 등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이를 보면 사람이 그의 뿌리를 찾는 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인간 내면의 가장 원초적인 본성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잊지 못하고 그곳을 지키고 있는 일가친척을 찾는 것 또한 누구나의 인지상정이 아닐 수 없다.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고향 찾기에 둘째라고 하면 서운해할 사람은 아마도 우리가 아닐까? 고향의 선영에 묻혀있는 조상을 성묘하는 것은 물론 설과 추석, 적어도 일 년에 한두 차례는 고향을 찾는 것이 우리의 관습화된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민족대이동’이라고 표현할 만큼 많은 사람이 가족과 고향을 찾게 된 것은 무슨 연유에서일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이른바 산업화와 도시화라고 하는 근대적인 사회변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기회와 일자리 등을 찾아 고향이 아닌 먼 곳으로 옮겨가서 살고 있기에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한 곳에 뿌리를 박고 수천 년을 살아왔던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변모해가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라고도 볼 수도 있다.

르바란 명절을 맞아 고향으로 떠나는 사람들

  급속한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인도네시아도 이런 현상이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누구 못지않게 열성적으로 고향을 찾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시골에 살던 많은 사람이 도시와 공장의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서 살기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고향 찾기, 귀향이 ‘르바란(Lebaran)’이라고 하는 인도네시아 이슬람 최대의 명절을 전후해서 이루어진다고 하는 점에서 우리와는 다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르바란이라고 하면 인도네시아의 회교도들이 뿌아사(Puasa)라고 하는 금식을 마친 뒤에 맞이하는 그들 최대의 종교적 전통의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중동의 회교도들이 한 달 동안의 기간에 걸쳐 실시하는 이 금식은 일반적으로 ‘라마단(Ramadan)’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또 매년 이 한 달간의 금식을 마치면서 맞게 되는 축제가 우리에게 ‘이둘 피트리(Idul Fitri)’라는 회교 축제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을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르바란이라고 부르고 있다.

 

  중동의 회교도들이 라마단 금식에 대한 마무리축제를 비교적 조용하게 맞이하는 데 비해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이 축제를 매우 들뜨고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치른다. 인도네시아의 르바란은 회교도들의 종교적인 행사로써 뿐만이 아니라 이 행사를 전후해서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는다. 이슬람력으로 1414년(서기 1994년)이 되는 올해의 르바란을 맞이하는 분위기도 한층 들떠 고조되기 시작하고 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의 주요 언론 매체들은 고향으로 가는 버스, 기차 등의 교통편에 오르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연일 보도하면서 자카르타에서만도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고향을 찾을 것이라고들 말하고 있다. 군과 경찰은 르바란축제 기간에 벌어지게 될지도 모르는 여러 가지 사건이나 사고의 발생을 줄이기 위해 특수치안작전에 돌입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공공 교통요금을 관장하는 교통성과 자카르타시의 교통국 관계관들은 대목을 틈타 교통요금의 변칙 인상을 시도하는 승객 운송회사들의 횡포를 적발하여 이를 시정시키고 있다는 등의 보도가 신문의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이슬람 최대 명절 중의 하나인 이 축제를 벌이는 것은 중동과 서남아시아지역의 회교국들도 다를 바가 없다 한다. 그런데 이 축제 기간을 이용하여 고향을 방문하고 가족들과의 상봉을 위한 사람들의 대이동이 일어나고 이 축제가 떠들썩한 민속축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은 회교국 중에는 이곳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만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현지의 언론은 보도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같은 말레이어(Malay)를 쓰고 있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무딕 르바란(Mudik Lebaran), 즉 ‘르바란 귀향’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말레이어의 경우 우리말과는 달리 수식을 하는 말이 수식되는 말의 뒤에 쓰인다. 귀향이라는 말인 ‘Mudik’이 먼저 오고 그다음에 르바란이라는 말이 나온다.


  한편 Mudik이라는 말은 ‘Udik’이라고 하는 말레이어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한다. Udik은 ‘부모나 친척과 같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 즉 고향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이 말에서 연원된 Mudik이라는 말은 ‘뿌리를 찾아 올라감’ 또는 ‘고향으로 되돌아감’ 따위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 기간을 전후해서 자카르타 시내와 근교에는 길 가나 길을 가로질러 ‘르바란 귀향, 안전하게 다녀오세요’라는 플랭카드가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날이 어두워진 뒤 하루 한 끼만의 식사로 한 달 동안 계속되는 단식 뿌아사(Puasa)는 회교도라면 누구나가 지켜야 하는 신성한 의무의 하나다. 또 이 단식을 통해 순결해지고 더욱 검소해진 그들의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르바란의 의미는 회교도가 아닌 그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농경사회로부터 급속한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이러한 귀향의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도네시아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매우 적극적인 공업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대도시와 주요 항구 도시에는 대형 공단이 조성되기 시작하고 그곳에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많은 사람이 몰려들고 있다. 아직도 농촌 지역에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도시지역으로 이동해오면서 인도네시아의 이른바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이 태어난 곳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농경사회의 모습 그대로 인도네시아가 남아있다면 이러한 르바란 귀향이라는 사회적 현상은 생겨날 리가 없다.


  한편 인도네시아에서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고향을 떠나서 다른 곳에서 사는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이 나라만의 독특한 것이다. 그것은 인도네시아의 인문지리적인 특성과 이를 반영하는 국가의 시책에 따른 것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자바(Java), 수마트라(Sumatra), 깔리만탄(Kalimantan), 술라웨시(Sulawesi), 이리안 자야(Irian Jaya) 등 5대 섬 이외에도 1만여 개가 넘는 많은 섬에 흩어져서 살고 있다. 하지만 2억 명에 이르는 거대한 인구의 절반 이상이 별로 크지 않은 자바섬에 모여 살고 있다. 자바섬의 인구밀도를 보면 세계적인 인구밀도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거의 두 배가 되는 높은 인구밀도를 가지고 있다. 1㎢당 무려 800명이 넘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인도네시아 평균의 인구밀도가 100명을 밑도는 걸 보면 그 집중도가 얼마나 큰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토록 인구의 지역 편중 현상이 심하다 보니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연히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지 않은 지역으로 삶들이 옮겨가서 살도록 하는 국내 이주 정책을 꾸준하게 추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주정착부(The Ministry of Transmigration and Resettlement)라는 장관급 전담부처를 두고 적극적인 국내 이주를 도모해나가고 있다. 그 결과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바다 건너 다른 섬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도 정부가 지원하는 새로운 삶의 기회를 찾아 고향을 떠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 역시 그들의 고향을 찾으려면 공휴일인 르바란과 함께 주어지는 1~2주간의 휴가를 이용하게 된다.

 

  이래저래 인도네시아에서는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고 또 그만큼 고향을 찾는 이들도 많아지는 사회적 흐름의 변화를 겪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사회 일각에서는 르바란을 전후로 한 약 2주 내외의 기간이 이러한 르바란 귀향 등으로 인하여 너무도 많은 이른바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다. 교통 체증의 심화, 산업시설의 생산 활동 중단, 공공 기간의 행정 공백 등의 많은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르바란 풍속이 회교 본래의 궤도를 벗어나서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헬리(Helly)양의 경우만 보더라도 르바란 귀향은 이제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가장 마음 설레는 민속축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르바란을 맞이하기 몇 주 전부터 차근차근 고향 행차를 준비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르바란은 이미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게 뿌리내리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마음 아픈 절연감과 막막한 불안감을 느끼며 새로운 기회와 꿈을 향해 떠났던 사람들이 르바란을 맞아 일시적이나마 고향에 되돌아온다. 생각만 해도 즐겁고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도 정신과 마음의 순화, 고통과 아픔의 멸실, 더불어 사는 삶의 실천과도 같은 의미가 있다고 하는 그들의 성스러운 종교의식이 있고 난 뒤에 맞이하게 되는 고향에의 귀향과 그리던 가족과의 회합은 얼마나 가슴 뿌듯한가! 그것은 도시 속에서의 각박했던 삶과 소외감을 떨쳐내고 다시금 훈훈한 인정과 따스한 그들 본연의 심성을 되찾는 귀중한 기회일 것이다. 또 산업화와 도시화가 서서히 그 틈새를 크게 벌려놓기 시작하는 농촌과 도시의 간격을 조금이나마 좁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할 것이다. (1994.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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