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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우 Aug 24. 2023

[순우여행노트 28] 몽골 평원 한 여름날의 정경(1)

           

  목적지 울란바토르(Ulanbataar)가 가까워지면서 끝이 없을 것만 같이 이어졌던 빛바랜 황토색의 황무지가 서서히 흙빛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베이징 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한 이후 얼마쯤부터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땅 위에는 푸르름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든 드넓은 황야만이 펼쳐져 있었다. 물 한 방울 없이 메마른 모습의 대지에는 이따금 씩 소금기가 말라붙어 있는 듯, 물웅덩이인지 아니면 호수와도 같았던 곳의 하얀 자국이 마치 해쓱한 어린애의 얼굴에 나 있는 버짐의 흔적과도 같이 선명할 뿐이었다. 어디에서도 삶과 생명의 자취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밝은 햇빛이 가득히 내려앉고 있는 땅은 점차 다갈색의 생명의 숨결이 있을 것만 색깔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디인지 모르지만 한 줄기 유선형을 그리고 있는 마차길과도 같은 아련한 흙길이 마치 실오라기와도 같은 기다란 흔적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만큼의 시간, 기내 방송으로 비행기가 착륙지에 가까워졌다는 안내를 받았을 때쯤 가깝게 내려다보이는 땅 위의 모습은 옅은 연두색 풀빛의 기운이 가득 피어오르고 있었다.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아련한 느낌의 색채가 드넓은 평원으로부터 부드러운 능선의 언덕으로 펼쳐져 나가고 있었다. 차츰 푸르름의 심도를 더해 가는 광활한 평원은 연둣빛 색연필 가루가 파스텔풍으로 곱게 뿌려진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비행기가 착륙을 준비하며 고도를 좀더 낮추자 대지의 색깔은 더욱 선연한 연둣빛의 심도를 더해 갔다. 흡사 수채화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 소와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구릉진 평원은 이제 연한 초록빛 신선미를 풋풋하게 발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몽골 초록 초원의 풍경(자료:네이버 블로그) 

  내가 몽골에 도착하면서 비행기 위에서 바라본 울란바토르 시내 주변의 모습은 이제 막 봄의 기운이 무르익기 시작하고 있는 4월의 초순 같아 보였다. 그런데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이틀 밤을 묶고 오후 시간에 도착한 가초르트 평원의 모습은 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평원에는 녹음의 냄새가 물씬한 짙은 초록의 푸르름이 끝도 없이 멀리까지 펼쳐져 있었다. 내가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던 던 바로 그다음 날 내린 비가 이토록 짙은 푸르름을 하루 이틀 사이에 만들어놓았다고는 믿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멀리 비행기 위에서 본 대지의 모습과 내가 발을 딛고 서서 가깝게 바라보는 대지의 모습이 다른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발아래 펼쳐진 선연한 초록의 풀색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생기가 흘러넘치는 푸르름으로 가득했다.     


  몽골 정부의 게스트하우스인 Government House에서 개최된 이틀간의 국제회의 참석을 마치고 내가 묵고 있던 징기스칸호텔을 떠나 찾아간 곳은 시내에서 20Km쯤 떨어진 가초르트라는 평원지대였다. 울란바토르를 중심으로 꽤 넓은 지역이 모두 평원이기 때문에 특정 지역의 이름을 말하며 평원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사실상 부적절해 보였다. 그러나 평원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게 되면 그 광야에서 느낄 수 있는 무한대로 넓게 트인 자유의 기분과 평화, 영원의 느낌 같은 것들이 모두 달아나는 듯했다. 그래서 평원이라는 말을 빼고 그 이름만을 부르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원 위의 단조로운 길을 한참 동안 달려 도착한 가초르트 마을은 북동서의 3면이 비교적 큰 굴곡이 진 능선으로 가려져 있고 남쪽으로는 넓게 트여 있는 아늑한 곳이었다. 무작정 평평한 광야보다는 기댈 곳이 있는 곳을 골라 주로 외국인을 위한 관광 휴양지로 꾸며놓은 곳이 바로 가초르트 마을이었다. 관광 휴양지라고는 하지만 들어서 있는 시설이라고는 열 채쯤 되어 보이는 몽골사람들의 전통적인 이동식 가옥인 겔(Gel)이 전부라 고 할 수 있었다. 멀리 야트막한 능선 아래로 뚝 떨어진 곳에 바라보이는 겔은 이 지역에서 양과 염소, 말 따위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 이곳 사람들의 보금자리 같아 보였다.     


  우리가 가초르트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남쪽으로 훤하게 트인 목초지에서는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고 한 자락 남아있는 해의 서녘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마침 그날은 6월 22일. 한 해 중의 하루해의 길이가 가장 길다고 하는 하지였다. 우리 같았으면 해가 긴 여름날이라 하더라도 이미 해가 서산을 넘었을 시각, 카초르트 평원에는 아직 밝은 햇살이 가득 내려앉고 있었다.      

관광객을 위한 겔

  별다른 수속 없이 짐을 겔에 집어넣은 우리는 서편 구릉 아래쪽으로 가깝게 내려앉은 저녁 해가 뿌려주는 빛살을 담뿍 껴안으며 동쪽의 개울이 있다는 곳으로 산보를 나섰다. 나의 길 안내를 맡아 기꺼이 그곳까지 동행했던 사람들은 울란바토르 사무실의 동료 한 사람과 현지인 직원 한 사람. 문자영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가지고 있는 현지인 여직원은 처음으로 몽골을 찾은 나에게 자기 나라 몽골의 문화 전령사가 될 것을 자청했다. 그녀는 퇴근을 미루고 즐거운 표정으로 나를 따라나섰다. 오후와 어둠이 내리지 않는 긴 저녁 시간 동안 우리는 저녁을 함께 들며 이런저런 몽골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참이었다. 그녀가 별도로 우리식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아마도 ‘뭉흐 자흐칼’이라는 자기의 본명이 고객이 주로 한국 사람들인 외국인이 부르기가 어려운 이름이었던 때문으로 보였다. 


  푸른 초록의 한 가지 색으로 뒤덮여 있는 초원의 색깔을 가까이 다가가 밟으며 걸어보니 멀리서 바라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아닐 수 없었다. 두 치, 길어야 세 치를 넘지 않는 풀들이 폭신하게 밟히는 양탄자와도 같이 고르게 깔려 있는데 하나같이 잔잔한 풀꽃들이 풀포기 사이사이 예쁘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울란바토르 시내의 거리 공간을 온통 뒤덮을 듯 앞을 가리며 날아다니는 민들레의 홀씨들은 물론 민들레꽃도 이곳에는 없는 듯했다. 호텔 옆의 평평한 공원 풀밭에서 보았던 수영이나 꿀풀과 같이 키가 좀 크거나 무더기를 이루는 풀꽃도 없어 보였다.      


  강아지풀이나 양지꽃 같은 눈에 익은 풀들이 있기는 했지만, 눈에 두드러지지 않을 만큼 작은 키를 가지고 있었다. 그 외에도 그들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숱하게 많은 자잘한 풀꽃들이 애잔하게 푸른 풀 속에 섞여서 피어있었다. 풀꽃들은 어디에서나 땅과 물과 햇빛이 있는 곳이면 스스로 자라나서 피어나는 듯했다. 우리가 아니면 풀을 뜯는 양이나 염소들만이 보아줄 풀꽃들이 아무런 욕심 없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었다. 3개월여에 불과한 몽골의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의 짧은 기간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서 열매를 맺으려면 아마도 키를 높다랗게 키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몽골의 상징과도 같은 말을 탄 몽골 사람(자료ㅣ Wikipedia)

  앞이 확 트인 남쪽의 왼편으로 언덕이 시작되는 벌판 끝자락에는 말대로 작은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언덕의 구릉이 높아지는 북쪽에서 흘러내리는 물 같았지만, 그 연원이 어디인지를 쉽게 가늠할 수는 없었다. 자연 그대로의 땅 위를 흐르는 물은 아주 깨끗해 보였다. 연간 강수량이 평균 250mm에 불과하다는 몽골에서 이런 냇물이 어서 생겨나는 것인지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벌판을 되돌아오며 환한 저녁노을 빛으로 오히려 산뜻해진 초원에는 평온 속의 고요가 내려앉고 있었다. 풀을 뜯는 양과 염소들을 몰러 가는 듯 누군가가 말을 타고 벌판을 가로질러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무리를 지어 풀을 뜯고 있는 양이나 염소들은 꼭 한 집의 것들이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통상 몇 집의 양과 염소가 한데 어울려 풀을 뜯게 되지만 각각의 주인이 각자의 가축들을 구분할 수가 있기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했다.      


  늦은 오후의 산보에서 겔로 되돌아온 시간은 여덟 시가 훌쩍 넘어 있었지만, 아직 어스름이 내리는 저녁의 기분이 느껴지는 시간은 아니었다. 9시를 넘겨 9시 반쯤이 돼야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고 했다.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때이기는 했지만 몽골의 이 짧은 여름의 낮 하루는 이토록 길다고 했다. 완전히 어두워져서 아침의 동이 트기 시작할 때까지의 시간은 불과 대여섯 시간. 여름의 해가 이처럼 긴 대신 겨울의 낮시간은 한여름의 밤시간 만큼이나 짧다고 했다. 별도의 식당이 아닌 겔에서 저녁 식사가 차려지기 전, 장작난로에 불이 지펴졌다.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하자 바로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난로의 연통은 겔 중앙 부분의 하늘 쪽으로 뻥 뚫린 공간으로 솟아 있다. 불을 피운다고 해서 따뜻한 기운이 집안에 남아있을 수 있을까. 위쪽 구멍으로 다 빠져 달아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많이 좁은 듯해 보였던 겔은 안으로 들어와 보니 제법 넓은 느낌이 들었다. 세 개의 야전 침대, 두 개가 이어져 있는 탁자와 네 개의 의자, 한 줄의 소파, 중간쯤에 자리한 난로가 놓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하기야 침대라고 해야, 한 사람이 겨우 몸을 누일 수 있는 정도의 크기에다가 욕실이나 화장실, 옷장 등 다른 시설이 없다 보니 둥그런 형태의 겔 안 공간은 제법 넓은 느낌이 들었다. (... 계속) (2003.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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