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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의 그림일기 Jan 03. 2023

2022년 나의 키워드는 '사람'

[생각] 감사하고, 감사받은 사람이 참 많았던 2022년

Goodbye 2022! (copy right-@hjkdrawing)


    매년 한 해의 마지막날이 되면 그 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머릿속에 남는다. 재작년에는 첫 정규직 취업을 한 탓에 '취직'이라는 단어가, 작년에는 여러가지 금전운이 트이던 시기라 '돈'이라는 단어가 남았던 것 같다. 그리고 올 한 해는 상반기까지만 해도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절망, 우울, 밑바닥,,'등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여느 일상이 그렇듯 마지막이 좋으면 다 좋다고. 올해의 마지막날 지금 나에게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사람'이다. 


    올해는 참 이상한 해였다. 이렇게 익명으로 글을 쓰는 곳에도 적지 못할만큼 나를 너무나 힘들게 했던 어떤 사건 때문에 극심한 우울에 시달렸고, 정말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퇴사를 하게 된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상황 자체를 회피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올해는 매년 정기적으로 보던 친구들들도 핑계를 대고 보지 않았고, 가끔씩 새로운 인간관계를 기대하며 시작하는 취미모임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나마 남자친구가 나의 힘듦의 원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와 했던 일상적인 데이트를 제외하면 아마 가장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없었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의도적으로 사람을 피해다녔던 올해 가장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뭐 좋은 사람이야 언제나 주변에 존재하지만 올해는 언젠가 이 고마움에 대해 꼭 정성으로 보답하고 싶은 그런 고마움이었다. 사람을 그만 만나고 싶어서 결정한 퇴사였지만 내 입사동기들은 이런 나를 위해 소중한 저녁시간을 내어 파티를 해주었다. 학창시절에도 이후 사회생활에서도 어느 모임에서나 왕따는 아니었지만 인싸도 아니었어서 누군가의 환영, 송별, 수상, 생일파티에 참석해본 적은 많지만 나를 주인공으로 한 파티가 열리는 일은 없었다. 물론 나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때 의례적인 축하는 많이 받았지만, 원래 인간관계가 크게 넓지도, 재밌는 사람도 아닌 나를 위해 여럿이서 저녁시간을 내거나 주말에 따로 시간을 마련하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이런 파티까지 해주다니. 직장인에게 너무나 소중한 저녁시간을 내준 것도 고마운데 거기다 서프라이즈 케익에 편지까지, 정말 모두가 진심으로 나의 떠남을 슬퍼해주는 것이 느껴졌다. 


    또, 퇴사를 할 무렵 나의 결정을 슬퍼하며 울어준 사람도 꽤 있었는데(심지어 나는 울지 않았는데도..) 이런 경험들로 인해 자기 연민과 자기 혐오가 극을 달리던 시기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었나?'하는 기분 좋은 착각까지 할 수 있었다. 이곳에 다 적기 어려울 정도로 미처 일일이 인사를 하지 못했는데 먼저 찾아와 작별인사를 해준 수많은 동료들, 또 인사치례가 아닌 진심어린 말로 퇴사 후에도 꼭 보자고 말해준 팀원들까지. 이렇게 심금을 울리는 격려와 인사를 받아본 적이 있었나 싶을정도로 당황스러움과 고마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던 게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또 나중에 꼭 보자는 약속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퇴사 후 떠난 속초 한달살이에 회사 동기들과 선배가 놀러왔고, 항상 헤어짐은 '다음에 또 보자'로 마무리되며 이 사람들과의 인연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또, 내가 고마운 만큼 나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표현한 사람도 많았는데,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연말이 되면 으레 하는 '올 한해도 무척 감사했습니다'는 인사가 아닌, 구체적인 감사인사를 받는 것은 꽤 기분이 좋았다. 자랑이긴 하지만 나의 위로와 조언 덕분에 올 한해를 버틸 수 있었다는 회사 동료도 있었고, 그 동료는 내게 직접 쓴 손편지와 선물로 지난주 마음을 전달하기도 했다. 또, 회사일로 알게된 한 지인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시점에 프로젝트를 맡겨주어 나를 은인이라고 표현하며 바쁜 연말 굳이 감사인사를 하기 위해 시간을 냈다. 올 한해는 내 감정 하나 추스리기도 바빠서 주변 사람들을 못챙겼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어느때보다 나에게 감사한 이들이 많았던 해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인생이란 참 신기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올해는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친 나머지 인간관계를 포함해 그 어떤것에도 본래의 나의 70%도 쏟지 못했었다. 그런데 되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많이 생겨겨나다니. 2022년은 나에게 어둠속에 갇힌 잃어버린 한 해, 없어진 한 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연말에 전해받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감사는 그들 때문에라도 22년을 오랫동안 기억해야할 소중한 한 해로 만들어주었다. 그러니 2023년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이들이 보여준 감사를 보답할 수 밖에ㅎㅎ. 2022년이 한 시간 남은 시점, 올해의 회고를 마무리하며 2023년을 힘차게 맞이해보겠다.





- 글/그림: 줄리

- 인스타: @hjkdrawing

- 메일: juliekim263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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