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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의 그림일기 Jan 03. 2023

내 생의 최고의 순간

[상상] 이제는 상상미술관 속 '최고의 순간' 작품을 교체해야 할 때


내 머릿속 상상 미술관 (copy right - @hjkdrawing)

    

    나는 평소 수많은 상상을 하는 편인데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인생의 특별한 순간들이 미술관에 작품처럼 전시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상상이다. 몇 년 전 영국드라마 '셜록홈즈'에서 셜록의 머릿 속 기억 저장고가 거대한 도서관처럼 표현된 것 처럼, 내 머릿속에도 나만의 상상 미술관이 있고 그곳에는 기억할만 하다고 생각되는 삶의 순간들이 카테고리별로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카테고리 예시를 들어보자면 '유년시절의 추억, 이제껏 가본 여행지에서의 기억, 지금까지 만나온 이성과의 짜릿했던 순간,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인물' 등과 같은 것인데, 즉 지금 존재하는 '나'라는 사람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친 크고작은 사건과 기억들에 관한 전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도 가장 화려하게 한 쪽 벽면을 모두 차지하며 걸려있는 그림은 두말 할 것 없이 내 생의 최고의 순간이라 말할 수 있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일 것이다.


    나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란 인생을 통틀어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웠다고 생각되는 순간이다. 쉽게 말하면 누군가 과거 한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면 망설임없이 돌아가고픈 시점이랄까. 누군가는 매일이 새롭고 소중하다 하지만 분명 오늘보다 나았던 과거의 어느날은 존재했고, 만약 오늘이 과거의 어느 시점보다도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날이라면 그사람은 본인의 상상미술관 속 '최고의 순간'을 교체해야할 때가 온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에게 '내 삶의 최고의 순간'은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과 설렘을 추억하는것 만으로도 힘이 솟아나 현재의 고됨과 어려움을 버티게 해주는 동력이자, 어떤 걱정과 두려움도 없이 가장 순수하게 나 다운 '나'로 존재했던 순간이다.


    그리고 이제껏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은 2016년 캐나다로 교환학생을 갔던 시절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처음으로 밟은 북미대륙에서 경험한 넓은 세상과 새로운 인간관계는 과거의 그 어떤 경험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고, 그 이후로도 ‘나도 이렇게 재밌게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참 좋았었는데!’라는 생각으로 꽤 긴 시간을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보낸 것 같다. 물론 그 후로도 꽤나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외국에서의 경험은 완전히 새로운 강렬한 것이어서 인지 한번도 이 코너에 걸려있는 기억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앞으로 내가 몇 년을 더 살든 이 때만큼 즐겁고 행복했던 시절은 다시 올 수 없을 것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놀랍게도 올해 퇴사를 하고 다시 자유의 몸으로 속초에서 보낸 한달은 이제 ‘내 생의 최고의 순간’ 코너 속 액자를 교체할때가 되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물론 2016년 교환학생시절의 기억은 6년 어치의 찬란한 '젊음'이 추가된 시간이기 때문에 두 순간을 마냥 동등한 조건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과거 캐나다에서의 행복이 21살 철없고 어린 시절 한여름밤의 꿈같은 행복이었다면, 27살 속초에서의 행복은 보다 성장한 어른으로서 누린 현실적인 행복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사실 이번 기억 교체는 이제 그만 돌아갈 수 없는 꿈같은 추억에서 헤매고 있는 내 자신을 놓아주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같은 행복이라면 그나마 현실을 머금고 있는, 마음만 먹으면 그때의 행복으로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을것만 같은 기억을 그리워하는게 낫지 않을까?


     물론 과거의 한 순간을 액자에 걸어놓고 추억하며 사는 방식이 때론 현재를 더 서글프게 할 때도 있다는 점에서 항상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도 이 상상미술관을 너무 자주 방문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현재가 너무 힘들다고 느껴질때, 인생이 의미없다고 느껴질때 한 번씩 들어가 '내 인생도 남들 못지 않게 파란만장했구나' 하는 위로를 받기에는 또 이만한 상상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은 앞으로 몇년간의 힘듦과 어려움을 버티게해 줄 새로운 Best Moment가 탄생한것을 기념해야하는 특별한 날이기에, 오랜만에 상상 속 미술관에 들어가 작은 파티를 여는 심정으로 이 글을 적는다.  





- 글/그림: 줄리

- 인스타: @hjkdrawing

- 메일: juliekim263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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