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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의 그림일기 Jan 03. 2023

27살 겨울, 속초에서의 한 달 살기

[경험] 퇴사 후 동해바다로 떠난 한 달 살기와 좋았던 것들

매일봤던 속초의 풍경 (copyright - @hjkdrawing)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부터 친구와 단 둘이서, 여럿이서, 또는 가족과 함께 등 여러형태의 여행을 시도해보았지만 혼자 하는 여행만큼 편하고 좋았던 것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혼자 하는 여행은 스물 한 살이 되던 해 캐나다로 교환학생을 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에도 우연찮게 인기가 없는 시골학교로 가게 되어 홀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 시간을 보다 알차게 보내고자 넓디 넓은 캐나다 땅을 주말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을 택했다. 누군가와 시간과 일정을 맞출 필요도 없이 내가 편한 시간에 원하는 곳으로 훌쩍 떠날 수 있는 나홀로 여행은 무척이나 재밌었고, 주말마다 6-9시간씩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다니며 여행했던것을 시작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의 형태는 홀로 하는 여행이 되었다. 나홀로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는데, 설사 새로운 여행지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한다고 해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또 다른 자아의 나를 연기할 수 있었기에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아마 예전부터 이렇게 느꼈던 것을 보면 나는 일상 속 인간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꽤 큰 사람이었나 보다.


    이런 성향이라면 아마 스물 일곱살이 된 지금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여 혼자 살고 있어야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꿈에 그리던 자취방은 아니겠지만 서울 변두리의 작은 원룸 월세와 보증금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은 모아두었다. 그러나 달에 백만원 남짓하는 생활비와 아직 부모님께서 아프시지 않고 건강할때 조금이나마 함께하는 행복한 추억을 더 많이 만들어두고 싶다는 생각에 아직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스무 살 이후로 짧게는 1주일, 길게는 1년씩 여행과 유학을 번갈아가며 타지에서 홀로 살았던 순간들이 꽤 겹쳐있던 터라, 되돌아보면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3년간 꼼짝없이 부모님과 함께 붙어있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알게 모르게 답답함을 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침 지금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에는 복잡한 이유로 갑작스레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고, 퇴사와 함께 속초로 한 달 살기를 떠나게 되었다. 이번 한 달 살기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건강하고 행복한 돼지가 되기'.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퇴사의 가장 큰 이유는 건강이었고, 신체 한 곳에서 시작된 건강상의 문제는 빠르게 정신적인 불안으로 이어졌었기에 정말 '살기 위해' 속초로 떠났다. 퇴사에 관련해서는 나중에도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내 경우는 업무 상의 어려움도, 번 아웃도 원인이 아니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건강악화로 쑥 빠져버린 살과, 일상에서 가끔씩 느끼던 소소한 행복감을 되찾기 위해 속초로 떠났고 결과적으로 지금은 어느정도 행복한 말라깽이가 된 상태이다. (즉 돼지가 되는 것은 실패했다..) 


내가 바라본 바다 (copyright - @hjkdrawing)

    

또, 속초를 선택한 이유는 동해바다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인데 나는 눈에 간판 하나 걸리는 것 없이 널찍히 펼쳐진 바다를 보면 모든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는 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풍경을 고르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항상 바다였고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을때면 항상 바다를 보며 힐링하곤 했다. 설사 그곳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한 번 쯤은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가 생활해보고 싶을 만큼 어마무시한 양의 물이 밀려오고 나가는 것을 보는 것을 좋아했고, 이런 이유로 속초에서도 영금정 바다 바로 앞 숙소를 예약하게 되었다. 침실 창가에서도 바다의 일부분이 보였지만 방충망 때문에 뷰가 깨끗하지 않았던 터라, 매일 방에서 3분거리 해변가로 나가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바라보며 생애 처음으로 푸른 바다와 하늘로 이루어진 이분할된 풍경이 지겹다는 생각까지 했다. 


    속초에 있는 동안 홀로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었는데, 바로 나만의 루틴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집안 전체의 시간이 멈춘 것과도 같아서 한 시간이라도 일찍 일어나서 커튼을 걷고, 커피포트에 물을 붇고, 간단한 아침을 준비하며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또, 부모님과 함께 살 때에는 어머니께서 주로 모든 집안일을 담당하셨기 때문에 밥을 먹은 후 곧장 침대로 직행하는 일이 잦았는데, 이로 인한 역류성 식도염과 더부룩함이 어김없이 따라오곤 했었다. 하지만 한 달 살기를 하는 동안엔 직접 차린 음식을 먹은 뒤 식탁 위를 정리하고, 어질러진 부엌을 청소하다보면 저절로 소화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소소한 루틴 만으로도 하루가 좀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었고, 어딘지 모르게 하루를 올바르게 보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 시간 때에 따라 조명을 달리하는 것도 나만의 중요한 루틴 중 하나였는데, 아침에는 조그만 형광등 하나, 점심에는 자연광, 저녁에는 은은한 주황 불빛의 백열등을 켜고 생활하니 매일매일의 기분과 감정에 규칙적인 리듬이 생기는 것 같았다. 이 리듬감은 심각한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있던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고, 이로써 보다 안정된 마음으로 보내는 편안한 나날들과 함께 모든 일과가 끝난 뒤 시청하는 로맨스 영화 한 편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스물 일곱 살에 도전한 한 달 살기는 말 그대로 속초에서 홀로 보낸 30박 31일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단 1분도 내 의지대로 쓰지 않은 시간이 없기에 어쩌면 매일 의무적으로 남을 위해 일했던 직장생활 1년보다 더 긴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또, 한 달 살기 애피소드를 브런치 첫 게시글로 삼게 된 것도 바로 이번 속초생활을 통해 다시 규칙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봐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는 남은 한 달 살기 애피소드를 비롯하여 매 순간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상상한 것들에 대해 주간으로 기록을 남겨보려고 한다. 사실 요새는 워낙 저마다의 고유한 스토리가 많아서 어쩌면 너무나 평범할 수도 있는 기록들이겠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나에게만큼은 좋은 추억을 안겨줄것 같아 시작해본다. 또 매주 글을 표현할 수 있는 그림도 함께 업로드할 예정이니 참고바란다:)






- 글/그림: 줄리

- 인스타: @hjkdrawing

- 메일: juliekim263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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