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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Jul 26. 2024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



해마다 더운 여름이 되면 거실에 선풍기를 회전시켜 놓고 온 집안 문을 열어두고 살았던 이웃집 언니 생각이 난다.

오래전 내 옆집에 살았던 하얀 피부에 가녀린 체형을 가진 옆집 언니는 겉모습이 해 보이는 것과 달리 겁이 없고 불같은 성격 가진 사람이었다.

언니 화를 내 덩치가 세배는 더 큰 언니의 남편도 두 명개구쟁이 어린 아들도 꼼짝없이 언니의 말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럴 때의 언니는 무서운 교관처럼 표정부터 달라져서 이웃인 나조차도 충성을 다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겁 많은 내가 아무리 더워도 현관문을 꼭 잠그고 문고리까지 걸고 살았던 것과는 달리, 언니는 한밤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현관문을 닫는 법 없었다.

답답하다며 문 닫는 걸 싫어했고, 문을 닫고 사는 내게 무슨 겁이 그렇게도 많냐고 잔을 주기도 했다.

사건 사고 뉴스 꼬박 챙겨 보는 내게 그런 걸 봐서 겁이 많은 거라며 야단이었다.

나는 체격도 작은 언니가 오히려 뉴스에 나오는 범죄를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가볍게 여기 것을 항상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는 남자아이 두 명 정도 키우면 다 자신처럼 과격해지고 겁이 없어진다고 말하며  웃어넘기기 일쑤였다.


아무리 대낮이라도 현관문을 활짝 열고 거실에서 낮잠을 자는 건 위험한 일이다.


어느 날 겁 없는 옆집 언니 새파래진 얼굴을 하고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자신이 거실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더니 현관문 앞에서 웬 남자가 서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말로만 듣던 바바리맨이라고 했다.

일 없이 언니가 내지르는 소리에 놀라 도망갔지만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제발 현관문 좀 닫으라고 충고했지만, 습관은 생각보다 더 고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말을 듣는가 싶었는데 단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열어두고 살으니 말이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를 더 놀라게 하는 사건이 일어고 말았다.


평화로운 오후, 집 밖에서 경찰차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거기 !"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겁은 많지만 호기심도 많은 내 몸은 고양이가 놀란 듯 튀어 올라 재빠르게 창문 앞으로 달려갔다.

3층인 우리 집 창문으로 내다본 밖의 상황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고성을 지르며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중고등학생들로 보이는 남자들 세 명이 도망자였고, 쫓아가는 사람은 경찰 두 명이었다.

 명의 남자애들은 전속력으로 도망치며  내가 있는 동으로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

내 심장은 쿵쾅거리고 발이 떨려왔지만 내 몸은 이상하게도 그들의 동선을 따라 순식간에 현관 앞에 가 있었다.

망설일 시간도 없이 고리를 풀고 문을 열고 복도로 고개를 내밀었다.

도망 중이 남자애들이 순식간에 우리 동으로 뛰어드 것을 본 직후였다.

무모한 호기심은 때때로 화를 부른다.

키 큰 남자애들은 순식간에 우리 집이 있는 3층까지 올라왔으며, 숨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하필 문을 열고 내다보던 나와 눈이 마주쳤고 곧장 내게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아줌마! 아줌마!"

너무 놀란 나는 내 평생 제일 빠른 속도로 현관문을 다시 걸어 잠갔다. 간발의 차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우리 집 밖에 사람들 달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문이 잠겼다는 안도감보다 방금 전 일어난 일로 보복을 당할까 봐 현관문 앞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잡힌다면 분명 우리 집이 어디인지 기억할 것이고, 도와주지 않았다며 우리 가족을 해치려 들 수도 있을 터였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문에 귀를 대보았다.

어느 층에 선가 아직도 달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시는 이런 일로 내다보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놀란 가슴집안일로 진정시켰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베란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경찰차도 보이지 않았고, 주변은 평화로워 보였다.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리 층에 있는 모든 집의 문이 닫혀 있었다.


나는 조금 전의 기막힌 상황을 누구에게라도 이야기하고 싶어 안달이나 옆집 벨을 눌렀다.

항상 열려있던 언니 집의 벨을 누르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였다.

초인종을 누르고 조금 기다리자 초췌한 모습을 한 언니가 문을 열었다. 하얗게 질린 언니는 덜덜 떨며 울고 있었다.


외출에서 돌아온 언니가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안에는 낯선 남자 손님들이 있다고 했다.

언니가 놀라서 "누구세요?"라고 물었더니 잠깐 있었던 거라며 자신의 아이들 이름까지 아는척하며 태연히 인사하고 집을 나갔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갑자기 형들이 신발까지 신고 집으로 뛰어들어와 조용히 하라고 해서 가만히  있었단다.

당시 유치원생이던 아이들이니 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조용히 있었고 함께 TV까지 보고 있었으니 기가 막힐 이다.

나도 내게 일어난 일에 너무 놀라 미처 옆집까지 쳐다볼 경황이 없었는데, 언니 집 어린 아들들은 유치원에 다녀와서 당연한 듯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집 쪽을 향해 달려오던 그 남자 애들은 열려있는 옆집으로 뛰어들며 문을 닫아버리고 경찰의 눈을 피했고, 언니가 문을 열고 나서야 집을 나갔다니 듣고 있는 나도 소름이 끼쳤다.

바로 경찰에 신고했어도 이미 그들은 도망가 버린 데다, 아들 이름을 불렀다고 하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언니는 자신이 현관문을 열어두는 걸 자신의 아들들이 보고 배웠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었지 않았겠냐며 자책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 일까지 있고 나자,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언니 집 문이 활짝 열려있는 경우는 더 이상 없었다.

호기심 많은 나도 더 조심하려고 노력했음은 물론이다.

나중에 소문으로 알게 됐다.

그 남자 애들은 어느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주인에게  걸려 신고당한 근처 중학생들이었, 경찰에 잡혔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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