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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Nov 08. 2024

시어머님의 마중



저만치 멀리서도 어머님이 계신 병실  열려 있는 게 보다. 어머님은 주무시고 계실까?

단잠을 깨워야 한다면 기다릴 요량으로 발걸음을 쉬쉬하 걷는다.

웬걸, 어머님은 벌써 온몸이 마중 나와 있다.

어머님은 깨어있을 때면 지나다니는 간호사, 간병인, 걸을 수 있는 환자들, 환자의 가족들, 간병인들을 수없이 홀로 마중했다.

그러다 이렇게 자식들을 발견하곤 했으니까.

침대에 달린 차가운 안전봉에 머리를 기대고 밖을 내다보던 어머님의 눈이 반가움으로 빛난다.

어머님이 환하게 웃는다. 아들을 보며, 또 나를 보며.


"너희들이 보고 싶어도 나는 못 가. 너희들이 이렇게 와야지."

어머님의 보고 싶었다는 안부 인사가 가슴을 찌른다.

왜 오지 않았냐는 질책보다 백배는 더 아픈 말이다.

누구 한 사람 놓칠세라 깡마른 두 손을 내밀어 양쪽에 아들 내외를 세워두고 한참 눈 맞춘다.

편히 눕지도 못하고 머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려는 폼이 안쓰러워 남편 자꾸만 어머님을 다시 안아 눕힌다. 어머님은 그런 아들을 더 자세히 뚫어져라 바라보신다. 대화다운 대화가 가능했던 때가 언제였을까? 지난겨울이었나? 올봄이었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는데 어머님이 자꾸만 웃는다.

"우리 막둥이 살쪘지? 배 나온 것 좀 봐라."

요즘 배 나왔다고 살 뺀다던 남편은 어머니 보라고 자기 배를 더 내민다. 통통 두드리며 처음으로 자기 나온 배를 자랑스러워한다.

어머님은 또 그걸 보고 웃는다. 정말 맑은 분이시다.

면회 때마다 이렇게 웃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렇게 끝나질 않고 어머님을 괴롭히는 기억들이 이번에도 당신을 거로 데려다 놓았다.

갑자기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고 서울에서 잘 살고 있는 아들을 걱정하신다.

"셋째도 얼른 장가를 가야 하는데 어쩐다냐! 친구  있거든 네가 중신 좀 서 봐라."

"네, 어머님. 저 친구 많아요. 아주버님  장가갈 거예요!"

장단은 맞춰 드리지만 총기 좋으셨던 당신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씁쓸하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누구냐? 묻지 않고 여전히 알아봐 주시고 반겨주시니 감사 따름이다.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

당신의 기억은 왜 힘들고 걱정이 많았던 때로만 당신을 머물게 할까요? 평생을 다 내어주고 살았을 텐데 더 해주지 못해 속을 태우시는지요.


- 노모의 한숨 -


보고 싶어도 나는 못 가

이렇게 너희들이 와야지


밥은 먹었느냐

밥을 먹어야지


애처로운 어머니의 인사


그 옛날 장가 못 가던 아들을 걱정하며

너 친구 있거든 중신 좀 서 주거라


이미 자식까지 있는 아들인데 기억은 꼭 걱정하던 그때로만 당신을 데려다 놓는다.


고추장 담가야지

일 년 동안 너희들 갖다 먹을 고추장 담가야지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데 어쩌면 좋으냐


어쩌면 좋으냐 하면서도


잎 하나 없는 나뭇가지 같은 손을 내밀어

허공에 대고 훠이 훠이 저어 보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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