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죄짓지 말자!
살면서 감옥에 면회 갈 일이 있을까마는 또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기는지라 실제로 그래야 할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누가 죄지을 상인가?
적어도 내가 아는 선배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부끄러움이 많아 입을 가리고 웃는 남자.
결혼하면 여자 고생이나 시킨다며 혼자 사는 사람.
정당하게 일해주고도 제값을 받지 못하면서 오히려 상대방의 형편을 걱정하는 남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건 뭐든 아까워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퍼 주는 사람.(그 결과 돈도 없다)
순하디 순하게 나이 들어가고 있다고 믿었던 50대의 남자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장가를 안 간 덕일까? 선배는 또래보다 젊어 보인다.
언젠가 선배에게 어려 보인다고 말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들은 선배는 그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철이 안 들어서 그렇잖아."
대게 본인이 직접 저렇게 말할 땐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알고 보니 선배는 정말 철없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경찰들에게 잡혀가는 모습으로 주변을 놀라게 하며 그 사실을 몸소 증명해 주었다.
당장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사건을 저지른 건 아니라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죗값을 치르게 된 건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선배가 교도소에 간 후 두 달쯤 지났을 때 나는 선배의 친구와 함께 면회를 갔다.
난생처음 가보는 교도소는 죄가 없는데도 두려움을 주는 곳이었다.
선배는 우리를 보자 눈물을 글썽거리며 정말 똑바로 잘 살겠노라는 말만을 반복했다.
감옥 생활로 더 마르고 초췌해진 얼굴이었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힘 있는 말투였다.
그러고는 그동안 자신이 이곳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다음은 선배가 이야기해 준 교도소 생활이다.
선배는 수감된 후 곧바로 다른 죄수 12명과 한방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감옥 안에는 힘으로 정해진 서열이 있었고,
그들보다 나이 많은 선배를 배려해 줄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 여겨질 만큼 무례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매서운 눈빛을 가진 데다 덩치도 큰 방장이라는 사람은 전과가 무려 10범으로, 존재 자체가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아무도 면회 오지 않는 선배 같은 사람은 특히나 더 무서운 방장의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너는 가족도 없어!"
"왜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방장의 주도로 선배에게 가해지는 모욕적인 말과 거친 행동들은 일상이었다.
그런데 자신들의 입장에서 미워하는 이유는 의외의 곳에 있었다.
감옥에서도 돈은 있어야 한단다.
다름 아닌 사식을 사 먹기 위한 돈이었다.
돈이 없으면 나만 안 먹으면 간단할 일 같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매일 한 사람씩 돌아가며 사식을 돌려야만 하는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던 것이다.
간식이래 봤자 우유나 초코파이 같은 과자가 전부였지만 계속 얻어먹기만 하는 그가 예뻐 보였을 리 없었다.
그런 이유로 괴롭힘당하는 입장이고 보니 우리들의 면회가 얼마나 반가웠을까?
선배는 우리와 헤어지기 전에 몇 번을 강조하며 단 하나의 부탁을 해 왔다.
그 안에서 자신이 너무나 간절하게 바라던 단 한 가지, 자신도 12명에게 간식을 돌리고 싶다는 거였다.
우리 덕분에 드디어 우유와 초코파이를 당당하게 내밀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우리는 영치금과 간식은 걱정 말고 여기 있는 동안 반성이나 제대로 하라고 큰소리치며 다음을 기약하고 그를 먼저 들여보냈다.
그러고는 초코파이와 우유를 구입하기 위해 서둘러 매점을 찾았다. 하지만 매점은 그곳에 없었다.
키오스크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근처에 사람이 보이긴 했지만 궁금한 것은 없었다.
키오스크가 뭐 어려운가?
처음 사용해 보는 것도 아니고!
우리들은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선배를 위해 초코파이 5 상자를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역시 결제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오랜만에 사용해 보는 키오스크지만 문제없었다.
연습은 초코파이로 끝났고, 이제 마무리는 초코파이의 퍽퍽함을 해결해 줄 우유만 결제하면 끝날 것이었다.
다시 자신 있게 우유 버튼을 눌러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웬일인지 우유는 결제되지 않았다. 몇 번을 반복해도 결과는 같았다.
그런데 이런 난처한 상황을 눈치챈 관리자가 다가와 우리들을 막아섰다.
"키오스크 주문은 한 사람당 하루에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직 우유는 사지도 못했는데 더 이상 아무것도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부탁해 봐도 소용없었다. 교도소 규칙이란다.
키오스크 주문은 한 사람당 하루에 한 번씩!
그래서 간식은 우유도 없이 초코파이만 덩그러니 전달된단다. '차라리 하지 말 걸 그랬나...'
방장이 목 막힌다며 선배를 구박하는 장면이 상상됐다.
우리들은 선배가 걱정됐지만 이런 상황을 설명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그냥 돌아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선배, 미안해요. 오늘은 초코파이로 잘해봐요.
그리고 이제 다신 죄짓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