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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유니 Jul 24. 2023

전업주부라고 무시하는거니?

전업주부라고 무시한다는 착각은 나의 자격지심 일까?

"집에 있으면서 이런것도 않해두고 머했어?!" 


정말이지 유독 몸이 무겁고 피곤한 날이었다. 남편은 아내의 몸상태가 어떻다는걸 전혀 알길이 없다. 오히려 밖에서 일하고 돌안온 본인이 더 피곤할테니까 말이다. 저녁 8시쯤 퇴근하는 남편때문에 늘 아이들먼저 저녁을 챙기고 남편의 저녁상은 늦게 챙기는 편이다. 그러니까 매일 저녁을 두번 챙겨야 하는 꼴이다. 

이날은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가득찼는데 꾹꾹 눌러 담지 않았다는 이유로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평소에는 말수도 없고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지만 이날 만큼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쓰레기통에 버려진 쓰레기 상태들이 남편의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남편의 잔소리를 듣자 어찌나 화가 나던지 결국 나도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내가 전업주부라고 무시하는거니?!" 

"무슨소리야! 쓰레기 정리 하라는 소리가 왜 또 무시하는 소리로 해석이 되는건데!?"

연이어서 남편이 더 큰소리를 내었다. 

"그럼 쓰레기 정리 잘 하라고 하면 되지! 왜 집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않했다는 것 처럼 묻냐고! 내가 집에 있으면서 놀고만 있는줄 알아! 해보지 않았으니 당신은 모르겠지! 주부들이 얼마나 지루한 일들을 기계처럼 해내야 하는지 알기나 해!"

그동안 쌓였던 서운한 감정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이날은 결국 서로 자기주장만 내세우다 싸움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쓰게기 봉투는 남편이 치웠다. 


매일 저녁8시 즈음 퇴근하고 돌아오는 남편은 평소와 다름없이 내가 아닌 아이들을 먼저 반긴다. 마음속으로는 나를 먼저 반갑게 맞아주길 기대하곤 하지만, 아이들을 먼저 반기는 모습을 볼때마다 질투아닌 질투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나도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을 살갑게 반기는 편은 아니다. 무심한척 "손씻고 밥먹어" 이 한마디가 전부이다. 결혼전에는 결혼하면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달콤하고 꿈같은 날들이 계속 될거라고 상상했다. 그런데 그건 정말 상상일 뿐이다. 헛웃음이 나오지만 그래도 나름 행복한 날들이라고 혼자서 위안을 삼아본다. 신혼 초 때는 그런날도 가끔 있긴 했다. 약 10년 정도의 시간동안 동거동락 하면서 아직도 나는 남편에세 살갑게 구는게 창피하고 어색하다. 진짜 속마음은 그런게 아니지만 밖으로 표현해 내는게 여간 쉬운일이 아니다. 오히려 함께하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서로에게 점점 무뎌지는 느낌은 어쩔수가 없나보다. 


여느 전업주부의 일상답게 아이들을 모두 등원시킨 후 가족들이 좋아할 만한 식재료를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에는 식재료를 사오는 일도 쉽지 만은 않다. 과일과 야채는 여기가 더 저렴하고 싱싱하니 번거롭더라도 발걸음을 옮기고(홍수재해로 인해 야채가 금값이다), 고기는 저기가 더 저렴하고 질이 좋으니 또 한번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그렇게 동네를 한바퀴 순회하고 집에 돌아오면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서 아무것도 하기싫은 포화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럴땐 시원한 커피한잔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빈속에 커피가 유입되자 뱃속이 저릿하다.

클릭한번이면 집앞까지 배송이 되는 요즘처럼 편리한 시대에 나는 왜 아직도 직접 발품을 팔고 손품을 팔아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식재료를 구입하려고 시간과 노동력을 투자하는지 내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을때도 있지만, 전업주부인 나는 그래야 마음이 편해진다. 


집에 돌아온 후 로도 마냥 커피만 마시고 있을 수 만은 없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집안일들이 나의 온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아이들이 먹고 나간 흔적이 가득한 식탁을 치운 후, 뜨거운 불 앞에서 요리를 하고, 빨래를 체크하며 건조대에서 빨래를 걷고, 빨래 바구니에 잔뜩 쌓여있는 빨래는 돌리고, 마른빨래를 정리하고 나면 몇시간 않되는 황금같은 오전시간이 금방 흐른다. 정오쯤이 되어서야 늦은 아침을 먹고, 잠시 내 할일을 하고 나면,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다녀온 큰아이가 먼저 돌아올 때쯤 작은 아이 하원을 맞이하러 무거운 엉덩이를 다시한번 들어올려야 한다. 일주일에 2회 정도는 집안일을 하지 않고 운동을 다녀오기도 하지만, 운동을 하지 않았을때는 매일이 이런 일상의 반복이었다. 당장이라도 이 창살없는 감옥같은 공간을 박차고 나와 자유롭게 내 꿈을 펼치고 싶다는 생각을 백만번 쯤은 해본거 같다. 


그런데 비단 전업주부만 힘들까? 오히려 워킹맘들은 전업주부들을 부러워 한다. 힘들게 일을 하지 않고 집안일만 전념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럽다고 한다. 그리고 전업주부는 워킹맘을 부러워 한다. 자신의 커리어를 갖고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럽게 느껴진다. 전업주부이던 워킹맘이건  상대적이라 보이지 않는 서로의 애환을 어찌 달래야 할까! 전업주부는 집에서 울고, 워킹맘은 밖에서 울고, 전업주부경력만 나는 8년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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