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의 시간: 삶의 순간을 배우다 (7)
10여 년 전,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기숙 생활을 했다.
기숙사 1층에는 공용 세탁실이 있었는데 빨래를 하려면 빨래거리를 한 아름 안고 내려가야 했다.
그래서 나는 다이소에서 저렴하게 빨래 바구니를 샀다.
학생이라 취향이고 뭐고 따지지 않고 가격이 저렴하고 세탁물이 많이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그냥 막 샀던 것 같다.
그때 산 연한 청록색 플라스틱 빨래 바구니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지금 무채색을 좋아하는 내가 보면 참 눈에 띄고 부담스러운 색상이다.
어쩌다 보니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다니다가 창고에서 공간만 차지하는 잡동사니가 되었다.
최근에 짐 정리를 하면서 이번에는 버려볼까 라는 생각에 거실에 꺼내놨더니 어느샌가 다랑이가 그 속에 쏙 들어간다.
살 땐 큰 바구니라고 생각했는데 다랑이가 들어가 있는 지금 보니 막상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호기심에 잠깐 들어가고 나올 거라는 생각에 잠시 두었는데 웬걸 다른 숨숨집 보다 잘 쓴다.
내가 거실 테이블에서 작업을 할 때마다 그 안으로 들어가 낮잠을 청한다.
몸에 딱 맞아 편안한 마음이 드는지 아니면 구멍이 송송 뚫려있어서 시원해서인지 좋은 잠자리인가 보다고 생각해 본다.
그렇게 학생 때 빨래 바구니로 정말 잘 쓰다가 창고행으로 간 뒤 공간만 차지하는 물건이 되어버렸는데,
지금은 다랑이 숨숨집으로 잘 쓰고 있는 중이다.
10여 년 전에는 알았을까? 이 세탁바구니가 고양이 숨숨집이 될 것이라는 걸?
빨래바구니 안에서 잠들어있는 다랑이 옆에 같이 누워서 생각한다.
사물에 본질이 있을까?
사물이 있어서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이 있기에 사물이 있다고 생각해 본다.
나그네가 길을 한참 걷다가 힘이 들 때, 앉아서 쉴 수 있는 커다란 바위나 나무 그루터기가 있으면 그건 나그네에게 편한 의자가 될 수 있다.
한 겨울의 화롯불을 쓰는 집에서, 땔감이 없어 추워할 때는 나무 의자는 추운 겨울을 이기기 위한 나무 땔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요한 용도에 따라 사물은 이것도 될 수 있고 저것도 될 수 있다. 단지 우리는 본질만 있지 않으면 된다.
우리 또한 그렇다. 지금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같지만,
누군가에겐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일 수 있고,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어딘가에선 또는 누군가에겐 존재 자체로 꼭 필요하고 소중한 사람이다.
나는 빨래 바구니 안에 다랑이를 보면서 미소 지으면서
학생 때의 나에게 돌아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상상을 해본다.
“OO아, 그거 나중에 네가 키울 고양이가 정말 좋아하는 바구니가 될 거야,
그러니깐 이사 다니는 동안 절대 버리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