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velopenspirits
Apr 01. 2024
필라테스 스튜디오 밑에는 과일 가게가 있다. 수업이 끝나고 과일을 좀 사갈까 싶어 구경을 하다가 딸기를 발견했다. 딸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다. 그러고 보니 올 겨울에는 딸기를 먹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 겨울 내내 발리에 있었기 때문일 거다.
딸기를 보니 갑자기 발리에서 친구들과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거나, 음료를 주문할 때, 혹은 아사이볼에 넣을 과일을 선택할 때 딸기를 마주할 일이 많았다. 발리까지 가서 한국에서도 흔한 딸기를 먹기엔 좀 아까운 것 같았으나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가끔은 당길 때가 있었다. 하지만 딸기 대신 다른 과일을 선택했었다. 바로 친구 J 때문이다. 어릴 적 호주 딸기 농장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했던 그녀는 딸기가 싫다고 했다. 딸기 향만 맡아도 그때의 기억이 나서 괴롭다고 했다. 단순히 먹는 게 싫었다고 했다면, 각자 메뉴를 고를 수 있는 상황에서는 딸기를 골랐을 거다. 하지만 향조차도 힘들다는 J를 두고 굳이 딸기스무디, 딸기에이드, 딸기아이스크림을 선택하고 싶진 않았다.
J와 나, 단둘 이만 보내던 일주일이 지나고 다른 친구 Y가 왔다. J와 Y, 그리고 나 셋이서 아사이볼 가게를 갔다. 토핑 할 과일을 고를 수 있었는데, 각자 좋아하는 과일을 하나씩 고르기로 했다. 나는 패션프루트를 골랐고 Y는 딸기를 골랐다. J가 딸기가 싫다고 말했는데도 말이다. 나는 Y가 오기 전부터 J가 딸기를 너무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아예 딸기를 선택지에서 제외했었다. 지금 딸기를 먹지 않으면 죽는 것도 아니었고, 다른 동남아 과일을 맛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아사이볼에는 딸기가 올라왔고 나는 J의 눈치가 조금 보였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J와 우리는 아사이볼을 맛있게 먹었다. 딸기는 나와 Y의 숟가락에만 올라갔고, J는 다른 과일을 곁들여 먹었다. 마찬가지였다. 딸기가 J에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었고, 토를 할 정도로 싫은 건 아니었기에 그녀도 그냥저냥 참고 먹을 수 있었다.
싫은 기억도 그냥저냥 참아지고 잊히는 것 같다고, Y는 나보다 덜 눈치를 보는 자기 욕구에 당당한 아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딸기를 봤을 뿐인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철이 지나기 전에 딸기를 먹어보고 싶었지만 한 대야에 15,000원이나 하는 딸기는 너무 비쌌다. 그러고선 봄맞이 하얀 스니커즈를 4만 원을 주고 샀다. 사실 딸기를 먹고 싶은 마음도 그냥저냥 참아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