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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승원 Apr 23. 2024

로스차일드, 화폐 그리고 대공황

박문환(샤프슈터) 동양종금증권 강남프라임지점 팀장

-화폐의 탄생


민간인으로 시작해서 가장 막대한 부를 쌓은 첫 번째 부자가 메디치 가문이라면 자본주의의 왕조를 최초로 구축한 사람은 역시 로스차일드 가문이 될 것이다.

이 가문의 창시자인 암셀 로스차일드는 유럽 여러 나라의 왕조들을 상대로 시작부터 두터운 신뢰를 쌓게 되었다.


아무래도 올망졸망 모여 있는 유럽 대륙은 인간의 악마적 본성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고 언제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왕실이나 제후들은 영원한 부를 원했지만 너무나 잦은 전쟁으로 인해 그 부가 보장되지 않았었고 그들은 어렵게 만들어진 부를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암셀 로스차일드는 이런 막강한 권력을 가진 특별한 고객들의 니즈에 맞는 상품을 개발했다. 바로, 보관증이다.


당시에 부는 그저 금화나 은화가 고작이었는데 이것을 어디 쌓아둘 곳도 마땅치 않았다. 전쟁이 나서 피난이라도 가야한다면 그 무거운 금 은 보화를 들고 다닐 수도 없었다.


그 때 유럽의 부호들은 다른 곳으로 피난을 가게 될 경우에 금이나 은화를 로스차일드 상회에게 맡기고 대신 보관증을 받았다.


로스차일드는 이 보관증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반드시 고객에게 돌려주었는데 이게 점차 세월이 흘러 엄청난 신뢰가 쌓이게 되었고 유럽의 부호들은 너 나 없이 로스차일드를 찾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로스차일드의 싸인이 있는 귀금속 보관증은 그대로 금화와 바꿀 수 있는 가치가 인정되었으며 이는 획기적 부의 저장수단이 되었다.


금화처럼 무겁지도 않았고 보관도 간편했다.


물론 당시에 영란은행에서 발행한 지폐가 있었지만 로스차일드의 신뢰를 이겨내지 못했다.


이처럼 로스차일드는 시작부터 두터운 신뢰를 무기로 한 은행이었다. 지금도 언론에 결코 나타나는 일은 없고 또한 증시에 상장하는 일은 없지만 수많은 전쟁이나 사회적 변혁 속에서도 단 한 번의 위기에 빠지지 않고 고객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얻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부가 축적된 로스차일드 가문은 나탄 로스차일드에 이르러서 드디어 일생 일대의 거대한 도박을 하게 되고 워털루 전쟁을 이용한 희대의 “작전”을 통해 세계 부의 대부분을 거머쥐게 되는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이렇게 전세계의 거의 대부분의 부를 거머쥔 로스차일드는 당시 영란은행을 장악해서 1833년에 금본위제를 채택하도록 압력을 넣었고 그 외 다른 은행들도 하나 둘 금 본위제에 동참하게 되면서 오늘날의 제 1세대의 화폐 체제가 만들어졌다.


이후로 세계 화폐의 주도권은 유태인들의 손아귀에 언제나 있었으며 그 기득권을 빼앗긴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지금은 달러화에 대해 유로화가 도전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도 결국 프랑크프루트에서 시작된 것이며 유태자금이 깊숙하게 개입되어 있다.


즉, 유태인들은 적어도 화폐와 관련해서는 애시당초 그들이 통제권을 쥐고 있었다.


-볼세비키에서 1907의 대공황까지


이후로 유태인들은 금권을 이용해서 많은 나라들의 권력의 중심부에 깊숙하게 침투하게 된다. 때로는 숙주로서 때로는 사냥감으로서 세상은 그들의 무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커다란 사냥감 중에 하나가 로마노프 황실의 붕괴, 즉 볼세비키 혁명을 통해 붕괴된 재정러시아였다.


당시 감독은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했고 주연은 이 가문의 에이전트인 야콥시프와 1913년 FRB를 탄생시키는데 주역을 맡았던 폴 워버그의 동생 페릭스 워버그 등이 맡았다.


그들은 일명 “아슈케나지” 계열의 유태인 들이었다.(유태인들의 고난의 역사에 대해서는 시장이 좋아지면 다시 거론하기로 하자. 여기에서 아슈케나지 계열이라고 하는 것은 유태인의 두 가지 대 부류 중에 하나를 말한다.)


사실 오늘 날 일본은 역사적으로 무척 우월감에 빠져 있다.


사국(師國 )이었던 조선을 침탈했고 나아가서는 러일전쟁과 청일전쟁에서 당대 최고의 건달들을 넉아웃 시켰다는 점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웃기는 일이다.


러일전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조금은 다르게 전개되었었다. 사실 시작하자마자 일본은 박살이 났다.


박살이나 마나 싸울만한 기술력도 없었다. 어찌 재래식 딱총과 통통배로 무적 발틱함대를 이겨낼 수 있었겠는가?


이 말도 안되는 싸움에 자금을 대서 승리로 이끌었던 장본인은 바로 로스차일드 가문이었다.


당시 야콥시프는 1000만 파운드(지금 시세로 따지면 20조는 족히 넘을 것으로 보인다)에 달하는 엄청난 공채를 발행하게 해서 그것을 매입해주었다.


초전에 다 박살이 나버려서 변변한 군수품의 수송선 조차 없었던 일본은 그 돈으로 영국의 함대를 임차한다. 이제 대포를 붙인 전함끼리 싸움이 가능했고 이것으로 러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된다.



물론 전쟁이 끝난 이후에 야콥시프는 국빈자격으로 일본에 초청이 되어 천황에게 작위를 수여받게 된다.


당시에 일본이 이겼다고 해서 일본이 용감하게 싸워서 이긴 것도 아니다. 단지 일본은 밖에서 북치고 두드렸을 뿐이고 사실 은밀한 전쟁은 러시아 내부에서 있었다.


역시 당시 유대인 출신의 레온 트로츠키를 지원해서 혁명을 일으키게 했었고 러시아는 내환으로 이미 크로키 상태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1904년부터 러일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사실 러시아 내부에서는 1904년에 1차 혁명이 동시에 시작된다. 보통 전쟁이 나면 국민들은 똘똘 뭉치는 것이 일반적인데 오히려 혁명이라니...


아무튼 내우외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약체였던 일본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 망신살이 뻗친 러시아는 이때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결국 1917년 3월, 러시아는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게 된다. 300년 동안 탄탄한 권력을 유지해왔던 왕조가 결국 돈의 힘에 무너지게 된 것이다.


볼세비키 혁명을 성공적으로 일궈낸 주역인 야콥시프는 임무를 무사하게 완수하고 그로부터 3년 후에 죽지만 러시아 정부는 그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쿤뢰브 은행에 6억 루불을 예치하기도 했다.


이제는 미국으로 가보자.


러시아에서 1차 혁명이 났었던 1904년 이후 3년 후에 미국에서도 아주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바로 금융자본의 보이지 않는 공격이었다.


사실 그 이전에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화폐에 대한 권리를 찾기 위해서 8년간 지루한 전투를 했었다. 그만큼 미국은 자국의 화폐에 대한 갈망이 남달랐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뒤집기 위해서는 상당한 반전이 필요했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중앙은행 시스템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뼈에 남을 만큼의 고통스럽고 위험한 상황이 전개되어야만 했다.


바로 미국을 한방에 보내버린 1907년의 대공황은 그런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졌다.


우리는 흔히 1929년의 대공황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미국의 금융전반이 유태인에게 넘어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1907년의 대공황을 통해 가능했었다.


당시에는 앞서 말을 했었던 금 본위제가 시행되던 시기였다.


화폐라는 것이 고작 금을 쌓아 두고 그에 대한 교환권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화폐량에 대한 조절능력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은행들은 대출에 대출을 해주게 되고 급기야는 버블을 만들게 된다.


자기 자본의 100배까지 레버리지가 실린 은행들은 이제 시한 폭탄이었다. 이 때 모건은 은밀한 독을 퍼뜨리게 된다.


버블을 만들고 은밀한 독을 퍼뜨리는 것은 2007년의 금융공황과 아주 흡사한 부분이었다. (이전 글 참조)


지금이야 10만 달러까지는 예금 보험공사에서 보증을 해주니까 덜하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제도적 뒷받침이 전혀 없었던 시절이라서 은행이 부도가 난다면 동시에 나의 자산도 사라지게 되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예금의 인출사태가 빠르게 확산되었고 부도를 막고자 은행들은 대출을 회수하게 되는 과정에서 무려 8000여개의 회사가 도산을 하게 된다.


이 때 미국의 시민들은 절망을 넘어 공포 국면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사방이 불구덩이로 변한 건물에 연기만 자욱한 상황에 비견될 수 있는 절대절명의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소방관의 헤드라이트를 보았다면 이 위기에 빠진 사람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사태가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그 사태를 해결해주는 소방관에게 더 큰 고마움을 느끼듯이 이후에 미국 시장에 나타난 특급 소방수 모건은 오히려 이 위기를 통해서 시장에 절대적인 신뢰를 구축할 수 있었다.


방화범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이 불을 끈 사람이 누구인가에 시민들은 집중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상황은 아무리 신용도가 높은 기업이라도 100%가 넘는 이자율로도 돈을 구할 수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죽어 나자빠지는 회사들이 즐비했다.


심지어는 증권 거래소 마저도 폐업 위기까지 갔었고 공무원들도 제 때에 임금을 받지 못하는 형편에 이르게 되었다.


그야말로 금융시스템은 붕괴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완전히 죽은 줄 알았던 금융 시스템은 모건에 의해 빠른 속도로 부활하기 시작했다. 모건은 돈을 무한대로 뿌리기 시작했고 모건의 개입이 시작된 이후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시장은 꿈틀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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