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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Apr 08. 2024

그 어려운 탁구를, 제가 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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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나를 창조하실 때 문제 해결 능력과 예리한 눈치, 그리고 멀티태스킹을 소화할 능력을 부여해 주셨지만, 유독 탁구 실력만은 아껴주신 것 같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피구왕 김통키'라 불릴 만큼 강한 스파이크 실력으로 친구 여럿을 울렸고 줄넘기로 북한까지 다이렉트로 공중부양을 해서 날아갈 수 있을 만큼 무한동력의 근본이었던 나는 나름 운동은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믿음이 오늘로써 깨져버렸다.


겨울잠에서 막 깨운 곰처럼 맥없이 지내던 나의 눈에 동네 주민센터 탁구 프로그램이 들어왔다. 3개월에 5만 원이라니! 배드민턴과 테니스는 처 본 적 있으나 탁구는 난생처음이라 궁금했다. 어차피 둥근 채로 공을 상대방 쪽으로 넘기면 되는 비슷한 운동이겠거니 쉽게 생각했다. 제2의 현정화가 될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에 첫 수업날, 가장 먼저 교실에 도착했다. 주민센터 수업이다 보니 프로그램이 10분 간격으로 빡빡하게 이뤄져 있다. 탁구 전에 힐링요가 수업이 있는데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동네 어르신들이 다 바닥에 누워서 데굴데굴 구르고 계셨다.


'역시 탁구를 선택하길 잘했어.'


요가와 탁구을 놓고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젊다 보니 조금 더 활동적인걸 해야 에너지도 돌고 살도 빠질 것 같아 탁구를 선택했는데, 힐링요가 회원님들의 연세를 보니 내가 속할 곳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탁구 수업에는 젊은 사람들이 있겠지?

여기서 이상형을 만나, 서로 첫눈에 반해 결혼까지 골인하는 거 아니야?  

그렇다면 부케대신 탁구채 다발을 들고 입장해야지.


설레는 마음으로 다른 회원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5분 뒤, 교실 문이 열리더니 70대 어르신 두 분이 들어오셨다. 지각한 요가 회원님이신가. 힐링요가수업은 10분 전에 끝났는뎁쇼.


그리고 또 60대 아버님이 들어오셨고 곧이어 70대 할머님도 오셨다. 내가 교실을 잘못 찾아왔나 갈팡질팡하는 순간 그분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한쪽으로 치워져 있던 탁구대를 합심하여 착착 조립하셨고, 다들 나를 힐끔힐끔 곁눈질을 하는 게 느껴졌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입을 떼야할지 조심스러웠다.


어찌할 바를 몰라 고민하던 중, 1층에서 단체로 10명 이상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오셨다. 한눈에 봐도 평균 연령이 69.999세는 되어 보였다. 재활 치료 수업인가, 힐링 캠프인가 싶었지만, 나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던 순간, 빨간색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은 60대 여성분이 탁구 수업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말씀하셨다. 

아. 내가 맞게 온 게 맞네.


오늘이 첫 수업인 나와 60대 어머님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기존 탁구 멤버들이라고 소개받았다. 강사님은 앞으로 많이 도와줄 테니 친하게 지내라는 말을 덧붙이고 다른 고수 분들은 자유롭게 훈련하도록 하시고, 초보자인 우리 둘에게 집중하기로 선포하셨다. 탁구채를 난생처음 잡아본 나와 10년 전에 잠깐 쳐봤다는 아주머니는 초보자로 분리되어 강사님과 함께 큰 거울 앞에 서서 가장 기본자세를 배우기 시작했다. 기마 자세로 무릎을 살짝 굽힌 다음,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오른손을 90도로 꺾고 요술봉 흔들듯 탁구채를 휘리릭 뿅뿅.


탁구 경력자 초보 아주머니는 연습 도중, 강사님의 부름에 탁구대 앞에 설 기회를 부여받았다. 오랜만에 탁구채를 잡아본다고 하셨지만 몸이 기억을 하는지 강사님이 서브해 주는 공을 잘 받아치시며 칭찬을 들으셨다. 보기에는 쉬워 보였다. 내 차례가 되었고 매의 눈으로 공을 쳐다봤다.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다. 동체가 몽골인이 된 것처럼 날아오는 공이 선명하게 보였고, 나는 탁구채를 쥔 오른손을 어깨 뒤쪽으로 한껏 넘긴 다음, 정확하게 공을 날렸다.


슛!


야구방망이 흔들듯 제대로 탁구공을 처냈는데 문제는 공이 너무 높이 쳐올라 강사님의 오른쪽 뺨을 처버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탁구공이 가벼워 아프지는 않았지만 강사님의 얼굴이 0.0001초 정도 찌 부려지는 걸 난 분명히 봤다. 강사님은 손을 꺽지 말고 밀어내듯 공을 넘기라고 주문하셨다. 초보자들은 처음에 다 공을 높게 띄우는 실수를 한다고 하며, 앞서 배운 자세를 잊지 말고 집중하라고 말씀하셨다.


알겠습니다.

밀듯 처내겠습니다.

입술을 굳게 꾹 다물고 다시 한번 공에 집중하여 처냈다.


슛!

강사님 입술에 또 슛!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에휴 죄송합니다.


안절부절못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강사님은 화를 꾹꾹 누르며 말씀하셨다.

"아니 그러니까, 하아..  분주씨. 그러니까 손을 그렇게 확 꺾어서 치지 말고 이르케 이르케 가슴 앞쪽에서 이르케 부드럽게 앞으로 밀듯 해보세요."


강사님의 짜증 5% 섞인 가르침에 살짝 주눅 들었지만 잘 보이고 싶어 괜히 헛스윙을 몇 번 하고는 '이렇게, 이렇게' 혼잣말까지 곁들었다.


내 이번에는 기필코 제대로 치리라.

슨생님, 이르케 이르케 쳐보겠습니다.


강사님은 웃음끼가 싹 사라진 강시 같은 표정으로 공을 넘겨주셨고,


이번에도

그다음에도

또또 그다음에도 나는,



강사님 얼굴을 4번이나 더 맞춰버렸다.

스윙 6번에 대역죄인이 되었다. 저 년의 손목을 매우 쳐라.

죄수번호 4687, 강사님 얼굴 강타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강사님은 탁구채를 탁구대 위에 탁 내려놓으셨다. 무거워진 공기, 싸늘한 눈빛. 민망할 때는 자학이 최고다. 나는 그 자리에서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아 왜 이러지. 쓰읍. 바보인가. 왜 자꾸 저쪽으로 가지. 으이고 으이고. 머리가 바본가'


1자학 1눈치.

강사님이 나에게 다가오시더니 어깨에 손을 올리시고는 따뜻하지만 잔인하게 말씀하셨다.


"분주씨는, 지금은 공이 먼저가 아니야. 가서 자세연습 더 하고와."


낙천되셨습니다.

강등.


자세가 아주 중요하니 다시 가서 자세연습을 하라고 했다. 이미 1시간을 했는데, 더 하라고 하셨다. 원래 자세연습만 1년을 해야 공을 칠수있다고 위로같지 않은 위로를 하셨다. 정확히 7분전의 그 자리로 돌아가 엉거주춤 자세로 스윙 연습을 이어갔다.


나의 뒤에서는 어르신들이 자기들끼리 팀을 이뤄 게임을 하며 하하호호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무조건 연습만이 살길이지만 조금 부끄러웠다. 나이 곧 40살에 생각하는 의자에 혼자 앉아 반성하는것 처럼 이게 뭐야. 안되겠다. 싸워야겠다.

거울 속 나 자신과의 싸움.

거울 속 나 년의 탁구폼이 꼴뵈기 싫긴 하네. 자세가 이상해.


혼자 거울을 보며 기계처럼 팔만 휘두루고 있는게 지루하고 민망하고 재미없고 부끄럽고 나는 누구인가 왜 이러고 있는가... 생각했다. 내가 있어야 할곳은 이곳이 아닌 힐링요가 수업인것을 늦게 깨달았다. 나도 차라리 바닥을 뒹굴고 싶었다. 하지만 탁구채를 비싸게 주고 샀다. 포기할 수도 없다. 역시 금융 치료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생각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혼자서 38분동안 거울을 보며 자세연습을 하고 있는데, 그런 내 모습에 감동한 강사님은 나에게로 오셔서 젊은 사람이 끈기있게 너어어어어어무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이 예쁘고 기특하다고 칭찬해주셨다. 그리고는 얼마나 자세가 나아졌는지 집에가기전에 공을 한번 처보자고 했다.


예 슨생님

제가 40분동안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결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연습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습니다. 행동으로 보이겠습니다.


머리속으로 수백번 되뇌였던 '자세는 숙이고 팔은 90도, 그리고 공을 야구처럼 확-치지말고 앞으로 살짝 밀어준다'를 다시 생각하며 비장한 표정으로 강사님을 보고 고개를 한번 까닥 흔들었다. 나의 시작 싸인을 보고는 강사님이 기대하는 표정으로 공을 탁- 쳐서 넘겨주셨다. 그리고는 믿을수 없는 일이 있어났다.

연습을 더 하니 아까보다 확실히 실력이 좋아진것이다.


명!중!

양궁으로 치면 10점짜리 정중앙 명중이요.


아까보다 더 정확하게! 더 파워풀하게!

강사님 눈과 눈 사이의 미간을 정확하게 명중시켰다.



그리고는 강사님을 아무 말씀 안하시고 수업을 종료하셨다.

난 정말 탁구에 소질이 없나보다.














+

언제 탁구왕이 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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