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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May 09. 2024

털 많으면 미인이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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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부터 '털이 많으면 미인'이라는 엄마의 말을 늘 듣고 자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식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부모님의 거짓말이었나 보다. 원숭이로 태어난 딸아이가 속상해할까 봐, 친구들에게 놀림받을까 봐 '미인'이라는 듣기 달콤한 말로 나를 위로해 줬던 것 같다. 키도 털도 무럭무럭 자란 나는, 언제 미인이 되려나 기다렸지만 어른이 된 지금 여전히 털 많은 '美인' 대신 '毛인'이 되었다.(.... 아빠 부럽지?)


털이 많다고 해서 부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남들보다 두 배나 많은 시간을 들여 제모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귀찮을 뿐이다. 팔, 다리, 겨드랑이는 아무렇게 대충 쓱싹쓱싹 깎으면 되지만 첫인상을 좌우하는 눈썹털만큼은 손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우습게도 난 디자인과를 나왔지만 내 눈썹 하나 예쁘게 디자인 못하는 실력이다. 남들 눈썹은 마치 조각가가 깎아 만든 것처럼 정교하고 예쁘게 다듬어 줄 수 있는 반면에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눈썹 다듬는 것이 너무 고난도 스킬이 요구된다.


셀프눈썹제모에 자신이 없는 나는 항상 앞머리를 길러서 마치 커튼처럼 눈썹을 가리고 다닌다. 그래서인지 눈썹을 다듬어야 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버지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데 머리카락은 가뭄에 콩 나듯 비어있지만, 눈썹만큼은 송충이 한 마리 붙어있는 듯 덥수룩하게 자라 있었던 것이다. 중국 사극에 나오는 술주정뱅이  毛지리 같은.. 혹시나 내 얼굴도 저렇게 보일까나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눈썹을 예쁘게 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며칠 전, 눈썹 왁싱을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왁싱 맛집을 소개받아 찾아갔다. 가게는 새로 생긴 곳이라서 전반적으로 깔끔했고, 한쪽벽 한가득 자리를 차지한 원장님의 화려한 수상 경력은 나의 기대감을 더욱 부풀렸다. 이 사람이라면 나의 털을 믿고 맡겨도 될 것 같은 털신앙심이 생겼다. 원하는 디자인이 있냐는 질문에, 나는 원장님의 실력을 전폭적으로 믿고 얼굴형을 보고 알아서 해달라는 주문을 하고는 편안히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수술용 라텍스 장갑을 끼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나의 눈썹 변신이 시작되었다.


소독약의 시원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고,  '조금 뜨겁습니다'하는 원장님의 말과 함께 곧 따뜻하고 끈적끈적한 뭔가가 눈썹 위에 발라지는 느낌이었다. 왁싱이란 뜨거운 왁스를 발라 굳힌 후 털까지 같이 떼어내는 제모 방법이다. 쉽게 말해, 뜨거운 촛농을 얼굴에 발라 굳힌 다음 잽싸게 떼어내는 신종 고문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친구를 통해 왁싱이 따끔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도대체 어느 정도의 고통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미 심장은 두근거리고 있었고, 곧 다가올 고통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감이 뒤섞여 가슴속을 설레게 했다.



'이제 때겠습니다. 따끔'이라는 말과 함께,



쩌어어어ㅓㅓ억



이잌

이것 봐라,

 아픈데?




처음이라 아플 수 있다는 원장님의 말을 믿고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만 참아보자. 예뻐지는 데는 고통이 따르는 법이다. 쌩털을 잡아 뜯는 일인데 이 정도 고통은 예상한 바로다. 이번에는 눈썹 윗부분에 왁스가 발라지는 느낌이 왔다. 아까보다는 면적이 넓어서인지, 더 길고 넓게 뜨거운 왁스가 눈썹 위에 고스란히 발라졌다. 뜨거운 왁스가 피부에 닿는 순간 찌르르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다.



"자, 따아끔."



쩌어어어ㅓㅓ억


으잌


아파

아프다고.


아까보다 더 아픈데?

아플걸 알아도 아프다. 

잡초도 이렇게는 안 잡아뜯겠다.



원장님, 혹시 제 이마에 총을 쐈나요?

고작 눈썹 털을 잡아 뜯는 것이 이 정도의 고통이라면 겨드랑이 제모는 고문 수준이겠구나 싶었다.

눈썹 위쪽 털을 깔끔하게 정리하고는, 순서대로 눈썹 아래쪽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원장님은 눈두덩이 쪽은 살이 연해서 아까보다 쬐에에금 더 아플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살인예고.




"따아ㅏㅏ끔"



으에엑

오 마이 아이즈 my eyes

아파

너무 아파.



아프고 따갑다.

원장님, 혹시 제 눈에 불이 붙었나요.

눈을 뜰 수가 없어요. 캔 낫 오픈 마이 아이즈.

백수로 오래 쉬었더니 피부가 신생아가 되었나 보다.



그리고 기분 나쁜 따끔거림의 고통이 계속되었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며 주먹을 꽉 쥐고 참았다. 이 정도 고문이면 없는 비밀을 만들어서라도 털어놔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번의 왁싱을 더 한 뒤, 관자놀이 잔털까지 싹 정리해 주시고 손거울을 건네주셨다. 거울 속 나의 눈두덩이는 벌에 쏘인 것처럼 뻘겋게 달아올라있었다.




"혹시 털대신 신경세포를 뜯으셨나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나의 입에서 칭찬 퍼레이드가 나오길 기대하는 원장님의 화려한 상장만큼 빛나는 눈빛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뻘게진 피부에서 시선을 떼고 뒤늦게 다듬어진 눈썹을 보니 세상에 마상에. 너무 깔아아알끔 해졌다. 눈썹이 정갈해지니 눈도 커 보이고 인상도 환해진 것 같았다.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앞선 모든 고통을 다 잊게 할 정도였으니까. '역시 유명한 집은 이유가 있구나' 싶은 마음과 동시에 일어나려고 허리를 세우려 했는데 원장님이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살며시 짓누르면서 말씀하셨다.





"이제는 왼쪽 하겠습니다."

처 누우세요.





아 맞다.

나, 눈 두 개지.

ㅣㅣ발.

 





















+

벌에 쏘인 거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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