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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Jun 17. 2024

외국에서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게 쉽지 않아요

120 짧은 여행후기


9월 재취업을 앞두고 백수 마지막 휴가를 위해 태국에 다녀왔다. 6월은 우기라 습도가 높지만 더운 날씨는 피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떠났지만, 실제로 도착해 보니 습도는 상상 이상으로 높았고 뜨거움 또한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태양이 너무너무너무너무 뜨거웠다. 우기라는 말이 사실은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몸의 모든 구멍에서 땀이 줄줄 쏟아져 나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땀이 비 오듯 난다는 것을 실제로 경험한 일주일이었다.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여행 동안 아주 잘 먹고 잘 지냈지만 2kg가 빠져 돌아왔다. 그만큼 몸에서 수분이 많이 빠져나간 것 같다.


이번 여행은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나의 고향 친구 K와 함께 떠났다. 대학교 때 1년 동안 함께 살았던 K는 지금은 멀리 살지만, 일 년에 한 번은 꼭 만나는 소중하고 고마운 친구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여행을 떠나보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는 말처럼, 우리는 처음에는 서로의 생각이 어긋날까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생각해 보면, K가 오히려 나를 더 많이 배려해 주었다. K는 직장 생활에서나 친구 관계에서도 매우 어른스러운 사람이라 본인이 손해를 보더라도 희생하고 먼저 사람들을 돕는 타입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본인이 영어를 잘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현지인들과의 의사소통은 전적으로 내게 맡겼다.


여행 내내 내가 웬만한 현지인들과의 의사소통을 담당했다. 태국 사람들은 독특한 그들만의 영어 억양을 가지고 있어 나와도 완벽하게 소통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손짓, 몸짓, 그리고 파파고짓으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4일째쯤 되었을 때, 현지에 와서 현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경험을 K에게도 해보도록 하고 싶은 마음에 남은 날동안은 K가 직접 의사소통을 해보도록 했다. K는 처음에는 두려워했지만, 이것도 좋은 경험이 되고 추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은근 설레어하는 K를 보며 나는 그녀를 완전히 믿고 의사소통을 맡겼다.




태국에서는 보통 '그랩'이나 '볼트'라는 택시 어플을 이용하면 원하는 곳까지 간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시간대에는 택시 어플로 택시를 잡기가 어려워 길거리에서 직접 잡아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오후 4시, 차가 가장 막히는 시간에 우리는 땡볕 아래 20분 동안 택시를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택시를 잡을 수가 없었다. 피부가 타들어가는 고통에 점점 지쳐갔다. K는 마침 건널목 신호에 멈춰 서 있던 택시를 발견하고는 택시를 잡아야 하는 의무감에 무작정 뛰어갔다. 그리고는 조급한 마음에 택시 문을 열자마자 큰 목소리로 외쳤다.


"How much?"


친구의 도발적인 질문.


목적지도 말하지 않고 무작정 택시에 타자마자 얼마냐고 묻는 친구의 패기에 택시기사님은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을 것이다. 친구의 뒤통수 옆으로 살짝 보이는 택시 기사님의 표정은 경악과 당황스러움으로 가득했다.

뭐지. 택시를 산다는 말인가.

역시 코리안 것들은 돈 잘 쓴다고는 들었지만 택시를 살 줄이야.

리치 코리안. 코쿤캅.


K는 아무렇게나 택시에 엉덩이를 촥 털어 넣고 앉은 채 "하우 마치?"라고 계속해서 물었다. 나는 K에게 주소를 알려주고 택시비를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 했더니 그제야 행선지를 말하지 않은 게 생각한 그녀는 파파고 번역기를 이용해 주소를 기사님께 보여주었다. 그러자 기사님은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인상으로 말씀하셨다.


"No"

안갑니다.

내리세요.



우리는 조용히 택시에서 내렸다.

그래도 K덕분에 5초 정도 택시 에어컨 바람을 쐬었다.





숙소를 옮겨 다음 호텔로 향했다. 이전 숙소들과는 달리 고오오오급 호텔을 예약했다. 택시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정문에 서 계신 직원분이 친절하게 택시 문을 열어주시고 캐리어까지 꺼내주셨다. 그리고는 우리의 캐리어를 호텔 프런트까지 끌어다 주셨다. 황송한 환대에 당황하면서도 감사했던 우리는 동시에 미안한 마음도 느꼈다. 체크인을 하니, 호텔 직원분이 같이 기다리셨다가 우리의 캐리어를 직접 방까지 끌어다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캐리어가 그다지 무겁지 않았기에 직접 끌고 가고 싶었던 K는 자신의 캐리어를 잡아든 남자분에게 본인이 직접 하겠다고 말하려고 했던 것 같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던 K는 "Me! Me!"라고 말했지만, K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직원분은 캐리어를 끌고 앞서 가려는 액션을 취했다. 급한 마음에 K는 상당히 큰 목소리로 외쳤다.


"I'm alone!"


혼자예요.

나 외로워요.


* I'm alone은 일반적으로 혼자 있는 상태나 외로운 감정을 표현하는 데 사용됩니다.

  

뜻밖의 코리안 플러팅에 놀란 직원분은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었다.

어쩌라고.

나는 결혼했시오. 관심 없습니다.


시험 성적에는 강하나 실전에는 약하다는 K의 영어실력에 또 한 번 놀란 순간이었다.

당황스러워하는 그의 손아귀에 있던 캐리어를 받아내서 조용히 캐리어를 끌고 방으로 갔다.





마사지삽으로 갔다. K와 나는 이미 한국인들에게 알려진 마사지샵보다는 현지 사람들만 찾는 찐 마사지집으로 골랐다. 가게 안은 어두운 조명 아래 조용한 태국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몇몇 태국 사람들이 발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모든 것을 친구에게 맡겼기 때문에 나는 K를 믿고 있었다. K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카운터로 다가가 발마사지 1시간 가격을 문의했다. 마사지사는 곧바로 계산기에 400이라는 숫자를 띄워 보여줬다. 환전해간 현금을 다 쓴 우리는 태국에서 사용하는 GLN 스캔으로 결제 가능하냐고 물으니 프런트직원이 가능하다면서, 그 뒷 문장으로 Ten minutes 어쩌고라 말했다. 대충 멀리서 들어보니 GLN은 자기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걸 확인하는데 10분 정도 걸린다는 말인 것 같았다.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마사지샵에서 10분 정도 기다리는 거 정도는 괜찮다 생각하고 있는데, K가 황당한 표정으로 나에게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야, 수수료 10퍼센트래."


...... 응?

10분이 수수료 10퍼센트가 되는 기적.


현금이 바로 결제되는 서비스라 수수료가 없는데 친구는 이래서 현금을 써야 한다면, 한국이나 태국이나 현금을 써야 가격이 저렴한 건 비슷하다며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마지막 비상금으로 남겨둔 1000밧을 꺼내서 결제했다. K에게는 수수료 10퍼센트가 큰 일인 것 같다. K를 믿고 맡겨도 될지 의심이 들기 시작한 시점이다.








끗.






+




다음 편 내용은 더 어마어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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