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메뉴는 닭곰탕이다. 1킬로그램짜리 닭 한 마리를 끓이면 우리 네 가족의 한 끼는 너끈하다. 잘 씻은 닭을 압력솥에 넣고, 먼저 물에 한 번 살짝 끓인 후 닭껍질과 기름을 제거한다. 누군가는 왜 아까운 껍질을 일일이 떼어내냐고 의심쩍은 눈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물컹한 닭껍질의 식감과 둥둥 떠다니는 기름을 싫어하는 아이들과 나는(남편은 껍질을 아깝게 생각하는 일인이다. 어쩌다 약간의 닭껍질이나 기타 확신이 안 서는 부산물이 보이면 전부 남편 차지가 된다) 살이 아닌 다른 부위는 먹지 않는다. 이렇게 껍질과 기름을 제거한 닭을 충분한 양의 물과 함께 20분 정도 끓이면 진하고 담백한 닭곰탕이 완성된다.
요리라고 하기에는, 껍질 벗기기가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작업인지라, 좀 민망한 측면이 있지만 이 음식에 대한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9점 정도는 되는 듯하다.
여기에 적당량의 소금과 후추, 쫑쫑 썰어낸 대파 정도를 얹어서 먹으면 제대로 보양이 되는 느낌까지 드니 이보다 가성비 좋은 음식이 또 있을까. 1킬로짜리 무항생제 통닭 한 마리가 할인 쿠폰 적용해서 6천 원도 안 되는 가격이다.
먹거리 물가가 너무 올라서 장보기를 해도 먹을 게 없다는 불평을 너나 할거 없이 하는 요즘 같은 때에 이건 너무 착한 가격 아닌가! 이 가격으로 네 식구 배불리 먹을, 비교적 건강하다고 생각되는, 한상이 가능하다는 게 내가 꾸역꾸역 집밥을 차릴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어, 뼈가 얼마 안 되네?
남은 곰탕 국물을 유리 용기에 담고 뼈를 정리해서 비닐봉지에 담는 걸 유심히 보던 남편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닭 한 마리 뼈가 원래 이렇게 적은가?“
”응, 그러네. 아마.. 골다공증에 걸린 닭이 아닐까..
끓이니까 전부 다 녹고 이것만 남았나 봐. 나중에는 물에 끓이면 뼈가 다 녹아서 사라지는 닭도 나오겠는데“
우리가 먹은 살의 양에 비해 뼈의 양이 정말 적게 느껴졌다. 이 정도의 뼈라면, 닭을 통째로 다 먹는다는 친구의 남편 같은 사람은 정말 뼈도 다 씹어먹을 수 있을 거 같다. 별생각 없이 ‘닭이 살은 많고 뼈는 얇고 적으면 먹기 편하고 좋지’ 했지만, 이런 닭에서 무슨 영양가를 기대할 수 있을까 싶었다.
친정집에 가면 팔순을 한참 넘긴 엄마는 대단한 보양식이라도 되는 양 암탉을 잡아 요리를 해 준다. 1주일에 2 닭은 먹는 우리집에야 흔하디 흔한 닭인데, 늙은 엄마에게는 사위에게만 대접하는 귀하디 귀한 닭이다. 이 닭의 다리는 돼지족인가 싶을 정도로 굵고 크다. 크고 작은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려있는 뱃속 주황색 알은 곧 태어날 생명을 범했다는 죄책감마저 들게 한다. 그 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부속물, 모래주머니, 간 등등, 이 섞여 있는데 하나같이 크기가 크다. 다리 한짝 혹은 가슴살 한쪽을 씹다 보면 배 부름을 채 느끼기도 전에 소화가 다 된 기분이 든다. 쫄깃하다 못해 질긴 토종닭의 특성상 씹는 맛은 있지만 저작근의 수고로움이크게 느껴진다. 이러니 옛날에는 형편이 넉넉한 집이라 한들 닭을 자주 먹을 수 있었을까 싶다.
엄마가 해준 닭요리를 먹을 때면, 속으로는 참 비효율적인 음식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마트에 가면 얼마 하지도 않는 손질된 닭을 손쉽게 살 수 있고, 또 이렇게 손질된 닭이 살도 연하고 뼈도 잘 발라지며 맛있을 텐데, 뭐 하러 이런 수고를 할까 싶은 생각이었다. 게다가 이 닭은 한 생명이 어떻게 식탁에 올려졌는지 그 과정을 한눈에 재현해 놓은 듯한 다소 야만적인 모습이지 않은가. 엄마의 정성에 대한 감사함보다 ‘굳이’ ‘뭐하러’라며 엄마의 닭요리를 달갑지 않게 생각했던 나였다.
그런데 오랜만에 먹은 가성비 좋은 마트닭이 남긴 한 줌의 뼈를 마주하며 닭은 닭인데 엄마의 밥상에 올려진 닭과는 전혀 다른 닭이구나 싶었다.
인스턴트 닭
조리하기 편하고 먹기 편한 닭,
버릴 건 적고 먹을 건 많은!!! 물에 넣고 끓여만 주세요!
숱하게 발견된 닭뼈 화석을 보며 미래의 인류는 지금의 인류를 어떻게 기록할까?
21세기 인류는 닭과 유사한 작은 조류를 주식으로 먹고 살았다.이 조류의 초기 형태는 현재의 닭과 유사했으나 점점 골격이 작아지고 뼈의 밀도는 낮아지고 가늘어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