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친구
나여루가 큰귀를 돌아보았다. 큰귀가 손을 흔들었다.
“산아. 큰귀는 좋은 사람이야?”
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좋은 사람이야?”
“큰귀는 숲을 넘어오는 바람소리를 들어.”
“그건 나도 알아.”
“도토리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
“그런 거 말고.”
“큰귀는… 큰귀는….”
“그만 뜸들이고 어서 말해 봐. 큰귀가 왜 좋은 사람이야?”
“나여루가 말할 때 귀를 기울여.”
“뭐?”
나여루가 당황하여 그만 얼굴이 빨개졌다.
그때였다.
“나여루! 산!”
“산아!”
떠들썩하게 둘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여루와 산이 돌아보기도 전에 큰귀와 검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갈호치!”
“범영!”
“무연!”
나여루의 얼굴이 급격히 밝아졌다. 산이의 말에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범족 아이들 덕에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어서 와.”
나여루가 두 팔을 번쩍 들고 반겼다. 산이는 수레를 끌고 밀며 아시벌로 들어서는 범족의 무리를 바라보았다. 갈호치, 범영, 무연이 전력질주로 아시벌을 가로지르며 산이와 나여루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산이는 달려오는 친구들을 보니 심장이 콩콩 뛰고, 막 솟은 해처럼 얼굴이 밝아졌다.
“우아, 산이도 막집을 짓는 거야?”
범영이 산이를 덥썩 끌어안으며 말했다. 범영은 여성이면서도 갈호치 못지 않은 사냥바치였다. 범영은 덩치도 크고 힘도 좋아 남성 사냥바치들이 쓰는 석검과 돌도끼 둘 다 허리춤에 차고 다니며 휙휙 잘도 쓴다. 물론 활도 잘 쏜다. 산이는 숨이 컥컥 막혀 가까스로 인사를 했다.
“안녕. 숨 막혀.”
“하하하! 미안미안.”
범영이 큰소리로 웃었다. 무영이 부드럽게 산이를 안으며 잘 지냈냐고 물었다. 갈호치는 아스라인들의 전통방식대로 손바닥을 펼쳐 들고 인사를 청했다. 산이가 얼른 갈호치 손바닥에 자신의 손바닥을 대고 인사를 받았다.
“자, 자. 인사를 그만하고 일단 막집부터 빨리 짓자고.”
대충 서로서로 인사가 끝나자 나여루가 모여든 사람들을 밀어냈다.
“그게 좋겠어. 우선 여기 짓던 거부터 같이 끝내고 우리 막집을 짓자고.”
범영이 팔을 걷어부치고 산이네가 짓던 나무를 가지러 갔다. 무연과 갈호치 또한 나무와 줄을 가지고 후다닥 막집을 짓기 시작했다.
아스라의 벌에 머무는 날은 보름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에겐 집이 필요했다. 봄이 온 들판은 온통 초록이었고, 갓 피어난 들꽃들은 별처럼 반짝였지만 종종 하늘은 비를 내렸고, 동틀녘 바람은 찼다. 아스라 네 부족은 봄제의를 하는 동안 함께 막집을 짓고 함께 먹거리를 준비하고 함께 모닥불을 피우고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늘 가까운 곳에 사는 곰족이 가장 먼저 막집을 지었고, 범족과 매족, 마록족은 도착하는 대로 자리를 잡고 막집을 지었다. 막집들은 아시더기를 바라보며 둥글게 반원을 그리며 세웠다.
막집 중 단그리들의 거처는 크고 넓게 지었다.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중요한 의논을 할 때면 여럿이 모여 앉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단그리들의 막집은 바닥에 둥근 원을 그리고 원을 따라 나무기둥을 박은 뒤에 기다란 작대기를 나무기둥 위로 올려 끈으로 묶었다. 기다란 장대들은 한가운데서 다시 묶어 세우고 그 위에 사슴 가죽이나 소가죽을 이어 만든 천막을 덮어 완성했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지었다. 일반 부족민들이 묵는 막집은 기다란 장대 끝을 모아 묶어 원뿔 모양이 되게 한 뒤, 사슴 가죽이나 소가죽으로 덮어 끈으로 고정하면 끝이었다. 간단하고 쉬웠다. 한나절 만에 아스라의 벌은 네 부족의 막집으로 가득 찼다.
산이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슬쩍 자리를 피했다. 아직은 수백의 사람이 모인 자리에 있는 게 어색하고 힘들었다. 산이는 아스라의 벌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커다란 나무 위에 올라가 사람들이 움직이고 소리치는 것을 구경했다.
아시더기 3단 원형 제단 주변에는 단그리들과 곁들이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제단 맨 위, 그러니까 3단에는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우주 기둥이 서 있는데, 색색의 천을 새로 묶어 사방으로 펼쳐 묶었다. 2단에는 흙으로 만든 다섯 신을 새로 세웠다. 맨 아래 1단에는 각 신들에게 바치는 음식들이 전통에 따라 진설되었다. 원형제단 둘레에는 여타 신들을 상징하는 나무기둥들이 새로 세워졌다.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을 빙 둘러 땅북들이 놓여져 있었다. 곧 다섯 부족의 사냥바치들이 와서 가죽을 씌울 것이다. 땅북은 흙을 빚어 구운 원통북인데, 빛살, 물살, 나뭇잎살 등 아름다운 문양이 그려져 있다. 모양도 아름답거니와 두드리면 땅의 기운이 울려 소리가 깊고 그윽했다. 제의가 시작되면 천지의 모든 신들이 사냥바치들의 북 소리에 깨어날 것이다.
산이는 땅북 소리를 좋아했다. 북소리를 듣고 있으면 심장이 덩달아 박자 맞춰 뛰는 것 같았다.